깨진 도자기라도 하나 주세요!!
장마가 오기전에 한 가마라도 더 구워내기 위해 6월 중순이면 어김없이 장작가마 불을 땐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숨이 턱에 차도록 불과 씨름를 하고 나면 어느새 나의 몸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
30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물과 소금과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가며 마지막 도자기에 대한 정열을 다 쏟아부어 버린다.
도자기를 흔히 '흙과 불의 예술' 이라 한다. 누가 처음 이 말을 생각했는지 참 존경스럽다.
좋은 점토를 찾아 산하를 누비고 좋은 도자기를 굽기위해 불과 씨름을 하는 일은 시작과 끝이 무한한 시간의 연속성에 어느것 하나 소홀함 없이 매 순간을 긴장하게 만드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도자기를 구워내는 일은 또한 흥분되는 일이다.
벌겋게 익어가는 도자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즐거움과, 탁탁 소리를 내며 장작이 타들어가는 청각을 자극하며, 좋은 도자기가 익어나오길 바라는 감성에 호소하는 작업이다.
마침내 30시간... 마지막 다섯번째칸까지 도자기가 익었다.
정말 길고도 힘든시간이었다. 어느덧 몸은 땀 범벅이고 쉬쉬한 냄새는 고사하고 온통 검뎅이로 그을린 얼굴을 씻는 일은 더 힘들다.
반사적으로 이불로 파고 들어간다.
끝없이 2분 간격으로 장작을 집어넣고 다음 장작을 준비하고 온통 체력을 쏟아버린 결과이리라!
정말이지 죽은듯이 20시간을 잤다. 꿈속에서도 나는 도자기와 대화를 한다.
부시시한 얼굴로 잠을 깨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도 못한채 다시금 가마터로 향한다.
가마에서는 연신 째쨍쨍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마가 식으면서 나는 자연의 소리다.
참으로 듣기에 좋은 소리다.
이번 가마는 어떻게 나올까! 정말로 좋은 도자기가 하나라도 나올 수 있을까!
흥분의 시간이 지나면 이틀 후 가마문을 허물어 도자기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직감적으로 잘 구워진 도자기는 어두운 가마 안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5칸 가마 도자기를 다 꺼내고 나면 운명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순간 저 도자기들은 자기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나하나 작품을 만져보고 뒤집어보며 색깔과 형태를 감상하기 시작한다.
이건 아니야! 이건 또 뭐가 색깔이 이래!
오! 이건 좀 좋아!
순전히 작가의 주관에 의해 선택되지 못한 도자기가 가마주위에 수북하다.
보통 장작가마에서 구워져 나오는 작품의 30%만 건지고 나머지 70%는 깨뜨려 버린다.
어느때는 한 가마 통째로 깨뜨려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순간 머리속이 하얘지기 시작한다.
큰일이다. 이제 또 세달동안 무얼먹고 살아야하나! 하는 원초적인 불안함이 엄습한다.
선택받지 못한 도자기의 무덤이다.
맛난 음식 한번 담아보지 못한채 그냥 잡초와 뒤엉켜 쌓아진 어긋난 운명이다.
가마를 꺼내는 날이면 몇몇 고객들과 지인들이 용케도 찾아온다.
'아! 선생님 그거 깨지말고 그냥 저주세요.'
'그냥 얻었다고만 할께요'
매번 반복되는 일이라 이골이 났을 법 하지만 참 난감한 상황이다.
분명 잘못된 작품을 유통시키면 후일 내려질 엄청난 비판을 비켜갈 방편으로 모조리 깨뜨려버려야만 하는 작품을 하나라도 가져가길 그들은 원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잘못 만든 케잌 하나 주세요. 잘못 그린 그림 하나 주세요. 잘못 지은 집 하나 주세요. 라는 말은 없는데 잘못 만든 도자기 하나만 주세요는 너무나도 당연스레 들린다.
왜그런걸까!
풋 하고 웃어버린다. 하늘 한번 쳐다본다.
.
.
.
.
.
.
.
.
순간 등뒤에서 애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깨진 도자기라도 하나 주세요'
*이 글을 쓴 김창호님은 안동에서 도연요를 운영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앞장서고 있는 직업작가입니다.
© 안동넷 & presstea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