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먼지 속에 발가벗고 달리는 아이들

person 배옥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7-06-19 09:58
서리와 천렵으로 긴 여름을 나고

친애하는 민(旻, 하늘 민, 제게는 여러분들이 하늘 이십니다 ^^*) 민의 성원에 힘입어 이렇게 배 옥이라는 이름에 대한 사연을 올립니다.

친애하는 민, 삼십여년 전쯤 될 겁니다. 제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그곳을 공굴다리라 불렀죠. 그 말이 콘크리트 다리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여름이 오기도 전인 유월 초부터 아이들은 빨간 고추를 내어놓고 공글다리에서 멱을 감았습니다. 사내놈들은 그나마 물이 깊은 곳에서 놀았고 계집애들은 물이 얕은 곳을 찾아 멱을 감았죠.

아스팔트길이라고는 사십여 리 떨어진 읍내까지 나가야 어쩌다 볼 수 있는 시절이라 어쩌다 버스라도 지나가면 뽀얀 흙먼지가 아이들을 덮치곤 했습니다. 제법 몸이 빠른 애들은 물속에 머리까지 넣고 버스 먼지가 지나도록 기다렸고, 개구진 아이들은 고추를 달랑 거리며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죠.

멱 감기가 시들해지면 아이들은 사과 서리를 모의합니다. 덜큰한 맛을 내는 인도사과가 아이들 조막만 하기 시작할 때 즈음인데 탱자나무 가시가 촘촘히 박인 울타리를 감히 넘보지는 못하지만 어디나 개구멍이 하나씩은 있었죠. 조금만 더 있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주먹보다 작은 빨간 국광이 신맛을 강하게 풍기며 아이들을 유혹할 것입니다.

아이들 몇은 익숙하게 탱자나무 밑에 개구멍을 내고 땅바닥을 기어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죠. 과수원 움막에서 멀리 떨어진 쪽이 가장 많이 뚫리는 개구멍이죠. 이미 탱자나무 한 두 그루를 낫으로 베어 위장해둔 길이라 어렵지 않게 길을 열고 들어간 아이들은 낮은 곳부터 사과를 공략해 비료부대에 부지런히 담습니다. 어느 정도 부대에 채워졌다고 판단이 되면 망설임 없이 개구멍으로 몸을 밀어 빠르게 헤쳐 나옵니다.

더러는 과수원집 아저씨에게 들켜 귀를 잡인 채로 집까지 끌려가는 수모와 하루종인 벌을 받는 고통을 겪기도 했죠. 또 모진 주인이라 만나면 1년 농사 절반을 물어주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서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리해온 사과는 헌세멘(오래된 시멘트 제방)이라 불리는 제방 옆 공터에 부어놓고 순식간에 해치웠습니다. 농약을 별로 안치는 과수원이라 검은 반바지 체육복에 한번 문지르는 것을 끝으로 아이들 입에서 작살났죠. 포만감을 느낀 아이들은 자갈돌을 배고 누워 낮잠을 즐기거나 두어시간 눈을 붙인 아이들은 다시 멱 감으로 강으로 뛰어들었죠.

사과 서리를 하지 않는 날에는 천렵을 했습니다. 커다란 바구니에 된장독 덮은 천을 벗겨와 덮고는 물고기 한 마리가 겨우 들어갈 수 있도록 구멍을 내고는 밥알과 된장을 버무려 놓으면 훌륭한 물고기 천렵 도구가 마련되죠. 준비가 끝난 아이들은 다시 한 두시간 물에서 물고기랑 놉니다. 시간이 지난 그릇을 꺼내보면 물 반 고기 반으로 득실거립니다. 능숙하게 아이들은 고기 배를 갈라 내장을 파내고 집에서 가져온 솥에 매운탕 거리를 준비해 온 것으로 탕을 끊여 냅니다.

잡은 물고기도 피리에서 각시피리, 수술메기, 참피리, 거의 1급수에서만 산다는 고기들이죠. 각시피리가 쉬리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이 물고기는 물 밖에 나오기만 하면 죽어버리는 성질 급한 고기라 제일 먼저 배를 가르는 영광을 주죠. 아이들 손바닥보다 큰 수술메기는 나중에까지 두었다가 다른 고기 배을 모두 가르고 마지막으로 가릅니다.

그 동안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고추나 마늘, 푸성귀를 서리해 옵니다. 한쪽에서는 집에서 가져온 솥을 걸고 밥을 하고, 매운탕이 익고 밥이 익어갈 즈음이면 콩서리를 해 오죠. 밥하는 불에 살짝 구워서 입술이 까맣게 타들어 가도록 먹어치웁니다. 더러는 밀서리도 하죠. 밀도 밥 김 내는 불에 넣어 까실한 부분이 그을러지기 무섭게 손바닥으로 비비고 속 만 입에 털어 넣고 오물거리면 껌같이 쫀득한 맛이 나면서 구수한 맛이 일품입니다.

그렇게 매운탕과 밥이 다 익으면 예닐곱 아이들이 달려들어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강변에 누워 별을 봅니다. 아직 별자리를 모르는 아이들은 별의 수를 세는 것이 익숙하기도 전에 수박 서리를 궁리하죠. 키가 작고 몸이 날쌘 아이 몇을 골라 수박밭을 찾아 낮은 자세로 다니며 수박통을 두드립니다. "통, 통" 소리가 싱싱한 놈 몇 놈을 골라 과수원 밖에 있을 아이들에게 넘기고 다시 찾으러 가고, 몇 번만 왔다갔다하면 예닐곱 통을 모아서 가시 강변에서 잔치를 합니다. 더러는 수박통을 머리로 깨겠다는 아이들에서부터, 돌로 때려서 깨는 아이들까지, 갈라진 수박은 아이들 주먹만큼 살점을 뜯겨나가고 어느새 수박은 아이들 뱃속으로 사라집니다.

숨도 쉬지 못하는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강변에서 강변살이를 합니다. 납작돌을 펴놓고. 그럴듯한 돌 이불을 만들어 놓으면 등을 맞대고 누워 오늘의 논공행상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초여름이라 모깃불을 피워놓고도 한 두방 씩 뜯기고 날 때쯤이면 천방 위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어른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때쯤입니다. 제게 아주 친한 친구 아버님이 여름철 만되면 유난히 까매진 저를 놀리시려고 별명을 하나 지어 주셨습니다. 까맣다 못해 반짝거리는 피부를 가진 제가 백옥같이 하얗다며 ‘백옥(白玉)’이라 하셨는데 시골어른이라 사투리같이 배옥이라 부르신거죠^^* 그래서 백옥이 배옥이 된 것입니다. 십여년전에 작고하신 어르신이 생각나 절 놀리시려고 부르신 이름이지만 잊을수 없어 배옥이라는 이름을 즐겨 쓰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민님

이젠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항상 못난 제 글에 관심 가져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배옥 자유기고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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