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거기 가셨나요
지금쯤 어머님은 만나 보셨겠지요. 어떠세요. 선생님께서 그리도 염원하시던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곳에 계시던가요? 슬픔도 고통도 싸움도 없는 나라에 살고 계시던가요? 그렇다면 저희도 안심입니다만, 무엇보다도 오줌 받아내는 보따리를 차지 않아서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정말 가실 때 뵈니 그렇더군요. 이젠 배에 난 구멍만 아물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지면 어머니 손잡고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신 청송 화목 근처 외삼촌 살던 칠배골도 가보시고, 안동 장터 어디 자장면도 마음 놓고 많이 드시길 바래요. 모든 것을 어린이들에게 주고 가셨지만, 어머니 모실 차비랑 자장면 사드릴 돈은 그래도 좀 가지고 가셨겠지요? 저런, 얼굴이 빨개지셨네요. 뒤춤에 감추신 거 다 알아요. 걱정 마세요. 거기선 선생님도 어머니 손을 잡은 어린이가 분명할 텐데, 뭐 어때요.
부모 살아생전 효자 별로 없고, 죽은 뒤엔 불효자 드문 게 인생인 거 같아요. 선생님 가시고 나니 이렇게 효자인 척 하는 제 꼴 좀 보세요. 마치 선생님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호상을 맡아 일사천리 장례를 치르고 무슨 공치사를 바라는 양 이러고 있음을 용서해 주세요. 생전에, 선생님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뭘 좀 해드릴까요 하면 다 물리치시고는 오직 한 가지 “그케 해주고 싶은 게 있으만 내 대신 아파주기나 해라. 쯧쯧. 거 봐라. 그것도 못 하믄서 뭘 자꾸 해 준다꼬 그노” 라고 말씀하셨지요. 이젠 그런 핀잔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네요.
선생님. 이젠 하늘나라를 생각하면 든든합니다. 그동안 우리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슬프고 아프고 해도 참 무심한 하느님들이 많으셨는데, 이젠 선생님께서 가 계시니 뭐가 걱정이겠어요. 이젠 시간만 나면 그런 어린이들을 찾아가셔서 위로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텐데 말이에요. 선생님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불경이고 성경이며, 그래요, 이미 아이들을 위한 경전이 되어 있으니 하느님 역할만 해 주시면 되겠네요. 선생님이 그리신 착한 하느님 말이에요. 아니, 평소 착하기만 해서는 못 쓴다고 하셨으니, 착한 마음을 몸으로 움직이는 하느님이면 좋겠네요. 마음이 바쁘시겠지만 서두르진 마세요. 우선 어머님하고 좀 지내시면서 맛난 것 많이 드시고 몸도 돋운 다음에 하세요. 괜히 성치 않는 몸으로 과로하여 거기서도 오줌보 차고 계시면 큰일 나잖아요. 오줌보 찬 하느님은 좀 그렇잖아요.
참, 이번에 선생님 누나, 동생, 조카들이 다 오셨어요. 반가웠죠? 모두들 많이 슬퍼했어요. 특히 조카들이 많이 안타까워했답니다. 생전에 누구에게나 찾아오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조카들에게도 그러셨나보죠? 그것은 남에게 피해 끼치기 꺼리는 선생님 성품인데, 그걸 모르고 많이 섭섭했던 것 같아요.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그것이 오해였다는 걸 알고 무척 가슴 아파했답니다. 평소 가족들이 선생님 챙기지 않는다고 섭섭하게 생각한 우리들의 마음도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풀었답니다.
5월입니다. 10년 전 이맘때쯤 내 아버지 저기 가셨는데, 올해는 또 찔레꽃 길을 따라 선생님도 저기 가셨습니다. 선생님 뿌려진 부모님 무덤 중에 유독 어머니 봉분에만 뻐꾸기 울 때 핀다는 뻐꾹채 한 송이 환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건 선생님이 달아 주신 거죠? 시치미 떼지 마세요. 다 알아요. 너무 어머니만 챙기지 마시고 슬픈 아버지도 좀 챙겨 주세요. 아셨죠, 아부지. 참, 진짜 아부지 되시려면 유언장에서처럼 건강한 남자가 되어 연애해서 장가 꼭 가세요. 꼭요.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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