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두 건의 일이 겹친다. 사교육에 정진하고 있는 딸아이를 학원까지 모셔야 할 시간과 연탄 모임 신년교례회가 같은 시간에 잡혔다. 전날 늦게 귀가한 죄가 있어 당연히 딸아이를 모시는 일을 우선으로 했다. 급히 내려주고 굽이굽이 고갯길로 된 도로를 타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심한 경사가 반복되는 도로라 과속 방지턱도 많고 편도 1차선 길의 바깥쪽에는 차들이 길게 주차되어있는 도로라 속도를 40 km 정도로 해서 달렸다. 뒤에 차 한 대가 따라오는데 신경이 좀 쓰인다. 그 차량 운전자가 보면 내 운전이 매우 답답할 수도 있다는
2009-01-29
안동에 사노라면 (82건)
지난 12월 29일 안동과 나주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4대강 정비사업 기공식이 열렸다. 나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니 안동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 몇 마디 적어본다. 4대강 정비 사업이 안동에서 시작된 데는 정부와 안동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동은 한반도 운하 구간에 있지 않아 4대강 정비 사업과 한반도 운하사업의 관련성 논란을 피하기 좋은 위치다. 여기에다 ‘녹색 뉴딜정책’이라는 이름의 최근 경기 부양책을 받쳐주는 배경도 가지고 있다. 이 사업은 원래 안동시가 추진하던 ‘낙동강 70리 생태공원 조성사업’과
2009-01-22
이 문중의 독립운동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8312 를 참조하는 것이 좋다. 안동의 독립운동 관련은 안동독립운동기념관 홈페이지(http://www.815andong.or.kr/)에 들어가보면 된다. >> 1895년 12월 7일(음력) 작성된 안동 의병 지휘부 조직 및 명단, 색으로 표시된 사람들이 청계 후손들 >> 내앞 마을에 세워진 협동학교 1회 졸업장 주인공 김성로는 김대락의 종손자로 김대락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기지건설 및 군
2009-01-15
의성김씨 청계공파 문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학봉 김성일이 될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당파 싸움의 폐단을 이야기할 때 자주 예를 들기도 해서 우리 세대에게는 그리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지는 않은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가 임진왜란 때 경상 우감사로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는 아니지만 전장에서 병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임금님 모시고 의주로 함께 도망가던 관료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안동에서는 다른 의미로 중요한 인물이다. 퇴계학파의 다섯 봉우리 중 두 번째 봉우리가 되는 성리학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2009-01-08
내앞 마을의 의성 김문은 청계(靑溪) 김진(金璡,1500~1580)을 중흥조로 하는 문중이다. 고려말 청계 김진의 6대조인 김거두(金居斗)가 풍산 우릉골에 자리를 잡은 후 율세동을 거쳐 청계 김진의 조부 김만근(金萬謹) 때 내앞 마을에 정착했다. 청계 김진은 부친 김예범(金禮範)과 모친 영해 신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계 자신은 벼슬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가세를 일으키고 아들 다섯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면서 가문을 중흥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 아들 중 김극일, 김성일(학봉 김성일은 뒤에 별도로 소개), 김복일이
2008-12-18
안동에서 도산서원을 가다보면 왼편에 국학진흥원(http://www.koreastudy.or.kr/)이란 곳을 만나게 된다. 대개의 관광객들은 별 생각 없이 지나치지만 이 국학진흥원은 조선시대 영남 지역 문헌자료의 보고라 할 정도로 중요한 곳으로 서울로 치면 규장각에 해당하는 곳이다. 국학진흥원의 본 건물 중 가운데 건물은 영남지역의 각 문중들로부터 기탁 받은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인데 과거 각 문중에서 보관해오던 문헌자료들은 화재와 습기에 취약해 지속적인 보관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학진흥원이 이 보관 시설을 마련함으로써 각 문중에서는
2008-12-11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행사가 있었으니 바로 불주사다. 오늘 불주사 맞는 날이라는 소문이 돌면 교실은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다. 주사에 대한 공포가 남들보다 심한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아프다거나 하는 핑계로 주사를 맞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고, 울상을 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주사 자체만으로도 겁을 먹게 되어있는데 눈앞에서 주사기를 알콜 램프의 불꽃에 댄 후에 주사를 놓으니 공포는 배가 된다. 4학년 전후의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였던 나는 그날 두려움을 참고 용감한 소년의
2008-12-03
몇 번 만나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조금 아는 것이 있으면 적당히 부풀려서 유식한 척 하는 것이 내 특기 중 한 가지다. 아직 아들은 내가 하는 말의 진위 여부를 가리지 못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상당히 진지한 자세로 내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지만 한 때 잡학박사라고 불러주던 마누라는 요즘은 잘 속지 않고 거의 사기꾼 대하듯 한다. 금요일, ‘나쁜 사마리아인’ 독서 후기에 낯선 방문객의 댓글이 달렸다. 내용인즉 어느 출판사 관계자인데 조만간 신간을 출간할 예정이고, 원한다면 증정본을 한 권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이런 내
2008-11-26
주왕산의 이름은 주왕(周王)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주왕이 머물다 간 산이란 뜻이다. 주왕산 곳곳에는 주왕의 전설과 관련된 자연물들과 유적이 존재한다. 그럼 주왕은 누구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전설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 당나라 때의 주도(周鍍)는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당나라 수도 장안을 공격했으나 안록산의 난을 평정한 곽자의(郭子儀)장군에게 패하여 요동으로 도망쳐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사람을 주왕(周王)이라고 한다. 주왕은 반란이 실패하자 멀리 한반도의 석병산(石屛山, 현재의 주왕산)으로 피신했
2008-11-20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산행을 한다. 주로 토요일 오후 근무를 마치고 가까운 곳의 낮은 산으로 가서 두 시간 정도 산행을 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정도니 산행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까운 행사다. 이번 가을에는 주왕산에 가기로 했다. 산행 행사는 당직자와 개인 사정이 있는 사람은 빠질 수 있는 비공식 행사이므로 직원들 중 참가자는 2/3가 좀 못 된다. 대신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는 임상병리사들이 참석하므로 대략 20명 정도가 참석하고 아이들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어 아이들이 4~5명 된다. 토요일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
200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