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을 필요로 하는 행사장이라면 긴머리 휘날리며 어디든지 달려가는, 안동사람이라면 한 번 쯤 봤을 법한 음향무대설치가 고경호씨를 만나봤다. 머리가 많이 짧아졌다. 원래 허리까지 오는 긴머리가 트레이드마크가 아니었는가? 지난해 9월 몽고로 여행을 갔었는데, 울람바트라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들렀다가 그 마을의 촌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촌장의 말이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의 젊은이들이 돈의 개념을 알게 되고, 점점 거기에 길들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돈이 없을 때도 오순도순 잘 살았는데, 마음의 풍요가 더
2007-08-21
인터뷰/기고 (172건)
수채화가로 알려진 그는 거의 모든 작품을 현장에서 완성한다. 그가 왜 현장작업을 고집하는가의 이유는 바로 그가 왜 자연을 그리는가의 이유가 된다. 맨 처음 화가부터 수없이 많은 화가들과 그리고 이수창, 그는 왜 자연을 그리는가? 그것은 자연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빛을 등진 겨울나무의 앙상한 선에서도 압신처럼 누워 하얗게 빛을 반사하는 얼음강도, 심지어 거목에 기생하다 그 나무를 죽게 하는 겨우살이까지 제 몸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음을 화가의 눈은 발견한다. 20대 중반 이후 안동에서 40년 동안 그의 발길이 몇 번씩 닿지 않은
2007-08-20
안동시는 행정불만 해소와 시민에게 신뢰받는 행정 구현을 위해 매월 14일 시장실 문을 활짝열고 시민과의 대화에 나선 결과 민선 4기 1년 동안 방문객 904명과 직접대화를 통해 시민들의 삶의 현장과 시정 주요현안에 대한 불편사항을 파악, 이를 행정 서비스개선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월 14일 운영되고 있는 『시민과 대화의 날』은 지난 2003년 2월부터 지날달까지 총 45차례에 걸쳐 2,183명이 찾아 702건의 건의사항과 애로사항을 피력했다. 이는 민선지방자치단체에 많은 자치단체에서 다양한 시민눈높이 시책을 개발 추진하
2007-08-14
『오묘한 자연의 섭리』 솔뫼골에 찾아온 매서운 겨울바람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봄 햇살이 연구실 창틈으로 스며들고, 봄바람에 날려 오는 라일락 꽃냄새가 향기롭다. 매년 맞이하는 봄이지만 봄은 참으로 아름답다. 만물이 생기를 얻으며, 부드럽고 고운 빛깔이 산야를 수놓는다. 창작활동을 농사짓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해야 풍년을 기약할 수 있고 그렇지 아니하면 흉년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나는 요즈음 나의 게으름을 탓하고, 그간 돌보지 못한 나의 작품에 미안함을 느낀다.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붓을 놓고, 붓을
2007-08-13
옥동 대구은행 근처 홍어집이 한 곳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단 코를 찌르는 특유의 홍어 삭힌 냄새와 함께 저기 주방 쪽에서 “워쩐 일이여?”하는 높은 톤의 전라도 사투리가 귀에 와 닿는다. 곧이어 흔히 볼 수 있는 이웃 아줌마 같은 주인이 얼굴을 드러낸다. 이 사람이 바로 얼마 전 본지의 “번개 치면 팥죽 먹으러 오라” 기사에 실렸던 주인공이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 “화려한 휴가”의 실제 현장에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이다. 휴가철이라 손님이 좀 뜸할 것 같다. 어떤가? 당연하다. 이번 주에 유난히 손님이 없는 걸로
2007-08-09
천에 흰색과 검정 계열의 색조로 명암을 주어 ‘빛’을 나타내고 그 빛에서 삶과 예술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것이 섬유가 박순희(56)씨의 작업 방식이다. 그는 왜 빛에 천착하는가? “나의 빛은 실재의 빛처럼 한순간 변해버리는 순간적인 빛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빛이다” 바느질을 통해서 만들어진 수 만개의 주름들은 흐름과 율동이라는 다양함으로 표현되며 주름의 미묘한 선과 색의 번짐은 지극히 한국적이며 살아 숨쉬는 듯한 생명체로서 존재한다라고 작업노트에 설명한다. 원래 그의 전공은 시각디자인이지만 “섬유조형이란 장르를 접하게 되면서 천과
2007-08-06
내가 요즘 어떤 마을의 경노당에 답사 때문에 자주 가는데 처음엔 어색하다가 매주 가게 되니까 할머니들이랑 좀좀 친해졌다. 거기에 가면 항상 화투 치고 있는데 너무 열심히 치고 있어서 질문하기가 힘들다. 아마 매일 칠 텐데 매일 이렇게 열심히 신나게 치고 있는가? 내가 와서 더 화투에 집중하게 되는가? (그런 일은 없겠지만) 하여튼 나이가 들어도 힘있게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한 때는 거기서 밥을 얻어 먹을 수 있다. 어떤 할머니가 그때 있는 재료로 밥하고 모두 같이 식사를 한는데 나는 그 밥을 먹으면서 울을 뻔했을 때가 있
2007-08-03
20년 가까이 도자기 만드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정태호(우리도예)씨를 만나 젊은 도예가로서의 삶을 들어봤다. 말투가 안동 사투리랑 다른 것 같은데, 고향이 어딘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파주다. 아버님께서 직업 군인이셨기 때문에 여러 지방으로 전근이 잦았고, 덩달아 가족들로 여기저기 많이 옮겨 다녔어야 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안동으로 와서 그 후부터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여기서 다녔으니 안동이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어떤 연유로 도예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가? 어릴 적부터 소질이 엿보였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
2007-08-01
나의 미술의 시작은 아버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6-7세 경 만화를 열심히 보다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어느 날 선친께서 누런 장판지에 연필로 그린 내 그림을 보시고는 칭찬을 해주셨던 계기로 그때부터 틈만 나면 그림 그리기로 일관하였다. 친구들과 뛰노는 것보다는 따뜻한 곳에 홀로 앉아 작은 나무 막대기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생겼다.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교내사생대회에서 상장을 하나 받아 들게 되었다. 그때부터 미술부에 들어서 수업 마치고 방과 후 활동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며 미술실기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초
2007-07-30
마침 서울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져 24년간 살던 안동 땅을 떠난 지 2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대충 따져보니 안동 땅을 격주 단위로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엔 관심 가는 일이 있어 매주 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술 마실 기회가 와도 애써 피하는데, 안동에만 가면 속이 들끓어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만나는 많은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살아야 할 날이 새털처럼 많은 우리세대인데, 그들의 한탄을 함께 듣다보면 나또한 심한 자괴감에 빠져 들고 있습
2007-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