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선율의 기타리스트 권희경

person 황지영기자
schedule 송고 : 2007-07-18 11:32

비오는 날 밤, 고요히 듣는 클래식 기타의 그 편안하면서도 유려한 선율은 단숨에 사람의 귀와 마음을 매혹해버린다.
그럼에도 어감에서 오는 선입견으로 선뜻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은 장르, 특히 클래식 기타의 불모지인 지역에서 십 수 년 동안 개척자로의 역할을 자처 하며 살아가는 이가 있어 그(권희경 기타교습소 원장)를 찾아가봤다.

안동에 이런 클래식기타 교습소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 시내 몇 군데나 있나?
내가 알기로는 통기타를 가르치는 곳은 몇 군데 있지만 클래식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은 우리 학원밖에 없는 걸로 안다.

학원운영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는가? 수강생은 좀 있는 편인가?
햇수로 3년 째 접어들었는데, (잠시 생각)... 학원 운영을 하기 몇 년 전부터 안동에서 의욕적으로 클래식기타를 배우고자 하는 몇몇 이를 위해 안동대 동아리 방을 빌려선 대구에서 선생님을 모셔와 수업을 받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내 꿈이 아이들도 가르치면서, 연습할 수 있는 자그마한 학원하나 갖고 싶은 거란 걸 알고 있던 남편이 어느 날 학원 자리를 구하고, 수리까지 직접 해서 열어 준 것이다.
수강생은.(머쓱한 표정). 첫 해엔 딱 2명뿐이었는데, 작년엔 5명으로 늘었고, 지금은 15명 정도 된다.

그 정도면 솔직히 학원 운영이 어려운거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래서 처음엔 그만 두고 싶은 마음도 불쑥 생겨나기도 했는데, 그때 마다 남편이 말렸다. 지금까지 운영해온 것도 남편이 벌어다 준 수입 덕택이다. 이젠 점점 수강생이 늘것으로 기대한다.(머쓱한 표정)
그 뿐만 아니라 학원을 열면서 합주단도 함께 결성을 했는데 초창기 멤버는 남편과 나, 그리고 후배 한명 뿐이었다. 그래서 연습하는 횟수보다 술 마시는 횟수가 더 많은 적도 있었는데,(웃음) 이젠 그 수가 7명으로 늘었다.

합주단이 있으면 연주회를 가진 적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연주회 기회가 자주 있다. 특히 다른 지역에선 내 실력을 인정해주는 편이라 주로 초청 받아서 가는 경우가 많다. 올해에도 몇 번 초청을 받았는데, 아직 우리 합주단의 실력이 탄탄한 편은 아니라서(머쓱한 웃음) 주로 나 혼자 하는 독주나 이중주가 주를 이루는데, 그럴 경우는 작은 공간의 실내공연이 제격이다 보니, 야외공연에는 망설일 때가 많다.
합주단의 정기 공연은 적어도 일 년에 한번은 한다. 작년에도 분위기가 참 좋았다. 특히 두 명의 어린이가 했던 이중주 연주가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웃음) 올해도 늦가을 쯤 정기연주회 계획을 가지고 있고, 이번에도 어린이 합주단을 좀 더 참가 시킬 생각이다.

대부분의 경우 통기타와 클래식기타의 구분를 잘 하지 못한다. 쉽게 차이점을 설명한다면?
그냥 쉽게 생각해서 오르겐과 피아노의 차이? 또는 전통 반주법과 째즈반주법의 차이?
결국 다 연주를 하기 위한 것인데, 그 중에서 예술성을 강조하는 것이 클래식기타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보니 좀 더 테크닉적이고 화려한 편이다. 아무래도 음악이나 곡의 선율에 중점을 두려한다면 클래식 기타가 적당할 것이다.

클래식기타란 분야가 아직까지도 대중적이진 못하다. 어떤 연유로 처음 관심을 갖게 됐는가?
중학교 때쯤인가 무심코 우리집에 자취를 하고 있던 대학생 오빠가 치는 기타소리에 귀 기울인 적이 있었는데, 기존에 많이 듣던 통기타소리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되었다.(웃음)
그 날로 몇날 며칠을 엄마 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기타 사달라고 졸랐지만, 엄마 입장에선 턱도 없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옆에서 보다 못한 할머니께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오래된 기타 하나를 내게 건네주셨다. 그야 말로 고물 그 자체인 기타도 나에겐 보물이었고, 그걸 들고 어깨 넘어 들은 풍월로 계이름 연습을 했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대학 들어가면서 기타동아리에 들어가면서였는데, 그 당시에는 밤마다 연습하다가 새벽 3~4시를 훌쩍 넘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타를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머쓱한 웃음)
 
십 수 년을 한 가지에 매달리는 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한 것 같다.
남편 되는 분도 기타의 상당한 실력을 가진 걸로 알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안동에 기타동호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보다 오래 전부터 기타를 쳤고, 실력도 나보다 훨씬 나았다. 하지만 결혼 조건도 그러했고, 우리 스승님께 했던 약속- 권희경을 훌륭한 기타리스트로 만들어놓겠다는- 때문에 자신의 꿈을 잠시 미룬 채, 지금까지도 나에게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고 있다.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남편도 마음껏 기타를 칠 수 있도록 내조를 해 줄 생각이다.

결국 부부의 인연에 기타가 중매 역할을 한 것 같다(웃음) 부부가 예술적 감각이 아이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텐데, 어떠한가?
자식 자랑 같긴 하지만(멋쩍은 표정), 환경의 영향 탓인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음감이나 학습 능력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지금은 아직 어려서 놀이삼아 가르쳐주고 있는데, 나이가  들고 나서도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후원해줄 생각이다.

음악하는 이라면 대부분 그러하듯이, 자식만큼 유난히 아끼는 악기 하나쯤 있을 법 한데?
몇 해 전 지인이 선물한 기타가 있다. 시가로도 피아노 한 대보다 더 비싸기도 하지만, 나에겐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지인 한 분(안동을 대표하는 시인 안** 선생)께서 술이 거하게 취하셔서는 그 기타를 가지고 연주한답시고, 몸통을 마구 두드리는 바람에 흠이 몇 군데 내놓은 것이 아닌가. 바로 앞에서 그걸 지켜보는 심정은 그야말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쓴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막연한 계획은 클래식기타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고, 지역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은데, 그렇더라도 지금과 다름없이 내 발 폭대로 조금씩 그 꿈을 향해 나가고 싶다.
현실적으로는 음... 2004년에 콩쿠르에 아마추어 부분으로 나가 대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심사위원이나 주위 여러분들이 일반부 대상 감이라고 아쉬워했었다. 다시 도전해볼 요량에 요즘도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다면 어린이 수강생이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오히려 음감의 폭도 훨씬 더 크고, 순발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보니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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