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행복의 잣대, 그리고 꿈
아이들이 커갈 수록 같은 밥상에 앉아 얼굴을 맞대고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정을 나누는 시간이 자꾸만 줄어든다. 그래서일까 내 속으로 낳은 딸들이지만 요즘 들어서 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교육운동을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면서 내 아이가 갖고 있는 생각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지난 토요일, 모처럼 세 모녀가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아이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시원한 냉국수거리들을 장만했다. 같은 산등성이에 붙은 학교를 다니는 딸래미 둘이가 하교길에 만났다면서 정답게 같이 들어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오랜만에 세 모녀의 잡담들은 끝없이 이어졌다. 반 친구들이야기에서 남자친구이야기, 지난 번 치룬 중간고사 성적이야기 등 최근에 있었던 자기 주변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투듯이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앞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인지가 주제로 올랐다. 큰 아이가 갑자기 “나는 꼭 하고 싶은 것이 없어, 목표가 없으니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 큰 아이는 미술 쪽으로 상당히 재능이 많은 아이였다(이건 엄마의 주관적인 견해가 아니라 주변 모든 이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판단한 것임) 하지만 집안 사정들을 고려해서 미술을 포기하고 공부를 해줬으면 하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진로를 바꾼 뒤 아이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목표와 꿈이 없으니 공부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서 이제 목표를 정하려고 해. 그래서 내가 미술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학 분야 쪽을 택해서 연구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해”옳다구나 싶어 좋아하는 것과 직업은 다를 수도 있으니 니가 할 수 있는 것을 ! 택해 직업을 가진 뒤 다시 좋아하는 미술을 하면 된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건 내 꿈이 아니야. 그래서 그 직업 속에서의 나는 별로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아” 말똥하게 쳐다보던 둘째 아이가 “그건 맞아, 청소부를 하더라도 내가 원해서 한다면 행복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행복할 수가 없어”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자신의 꿈을 채워갈 수 없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세상의 행복관에 길들여진 내 사고에 비수가 되어 꽂혀졌다.
아이들이 원하는 미래와 행복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어른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일이고 직업이라 하더라도 세상 속에서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잣대로 아이들의 행복을 생각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다니면 인생은 행복하다고. 길들여진 어른들의 행복관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면서 따라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꿈과 희망을 키워나가야 할 학교교육이 숫자에 따라 경쟁하는 줄서기를 가르쳐도 현실을 내세워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끌려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호떡장수가 되어 맛있는 호떡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먹이고 싶다( 크면서 자꾸 변해왔지만)는 큰 아이의 유치원 시절의 꿈이나, 내가 치운 깨끗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청소부를 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둘째아이의 말에는 우리 어른들이 배워야할 가치관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교육이 가야할 내용과 방향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기들의 꿈을 이루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에 교육이 있다.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으면서 미래를 꿈꾸며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은 모든 학부모의 꿈이고 희망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꾸고 희망을 만들어가게 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해 참교육학부모회가 있다.
* 김태선 참교육학부모회 안동지회 부지회장, cafe.daum.net/adhakbumo
**이 글은 참교육학부모회 안동지회에서 발행하는 학부모소식61호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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