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서정의 정치인 - 정홍식

person 황지영기자
schedule 송고 : 2007-05-21 11:06

안동시의회에 젊고 푸른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가까운 이웃같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정홍식 의원을 만나봤다.
인터뷰 당일,  일정에 쫓기다보니 식사할 시간도 없었다기에 어느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장소에 나갔을 때 이미 먼저 와 있다가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으로 맞이해준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취재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말에 오히려 구태의연한 질문은 사양한다는 말로 대신하는가 하면, 인터뷰 도중에 야한(?) 농담까지도 서슴없이 하는 바람에 필자의 얼굴을 붉히게 할 정도로 편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이렇게 일정에 쫓기다보면 스케쥴 관리며 시정질의문 등 의정활동에 필요한 자료준비에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물론 개인 사무실이 있고, 그 일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전문가도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사무실을 운영하는 비용이 만만찮다. 그렇다보니 솔직히 어떨 때는 약속을 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갈 때도 종종 생긴다. (머쓱한 웃음)
 시정질문, 예결산심의 자료 같은 것도 혼자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의회전문위원에게도 자문을 구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렇다보니 소위 안동지역의 씽크탱크(분야별전문가)에 속하는 이들을 직접 발로 찾아다니는 편이다.

- 93년도에 총학생회 부회장이었던 걸로 안다. 당시 상황에선 학생회 활동이 바로 학생운동과 연결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를 회고한다면?
 맞다, 내 삶에 가장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가장 힘들고 외롭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때는 신념이 있어서 행복했고, 그 신념이 부여한 역할이 있어서 당당했다. 그 힘은 나뿐만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야 했던 80년대의 모든 청년들에게 요구되던 시대적 사명과 삶의 철학에서 나온 힘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은 생활 속에서도  철저한 자기 절제와 관리, 그리고 도덕성이 요구되던 시기였기도 하다.  나 역시 나름대로의 원칙 속에서 그 원칙들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오죽하면 학교 다니는 동안 연애 한 번 하지 않았을 정도였는데, 남녀 간의 연애감정들이 때론 학생 운동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머쓱한 웃음)
그 무렵엔 졸업 후에도 운동을 하려고 하는 이들은 농촌이든, 공장이든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 양상이었고, 내 경우엔 제도 정치권이라는 현장을 선택해서 진출한 것이다. 많은 선후배들이 그런 나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한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들과 함께 했고 그 시대와 더불어 다짐했던 철학이나 사상, 시대적 사명 같은 것들은 여전히 건재하여 내 가슴에 살아 있고 오늘을 살게 하는 내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젊은 나이긴 하지만 정치 활동 경력은 상당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요즘 시의원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는가?
 당연히 도움이 된다. 햇수로 따지면 12년이란 세월을 제도정치권에 복무하며 살아온 경력이다. 그간의 경력 덕에 정치적 안목을 제법 넓히게 됐다.
하지만 솔직히 체질적으로는 정치인과는 맞지 않다. 그러면서 왜 정치를 했냐고 묻는다면,  음...(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어떤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사람이 일에 끌려 다니게 되면 결국 그 일에 휘둘리고 치이다가 지치게 마련이지만, 일을 주도해나갈 때는 성취감이나 또 다른 일에 대한 원동력이 생겨나지 않는가? 나에게 정치가 그러한 것이었고, 막상 선택한 이상 그것에 끌려가기 싫기 때문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 정의원의 홈페이지(jhs.or.kr)에서 “나는 배가 고픕니다.”라는 공지글을 본적이 있다. 당시 상황에서 인간적인 절실함이 묻어 있어 짠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배가 고픈가?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웃음)
그 당시에 다짐했던 몇 가지 - 당당하고 싶다. 반듯하게 처신하겠다, 거짓말하지 않겠다, 이권에 개입치 않겠다,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겠다. - 를 늘 가슴에 담고 산다.
정치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그 다짐을 지켜나갈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간의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던 특권의식을 버리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지 못한 현실 때문에 스스로 부대낄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정치인들이 가지려 하기 보다는 비워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니 여전히 배가 고프다.(머쓱한 웃음)

-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진 느낌이 든다. 분위기 전환 겸해서 일상에서의 정의원 이야기를 듣고 싶다.  평상시 관심 갖는 분야나 직접 활동을 하고 있는 동호회가 있는가?
잘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꽃 보존회 회원으로서 얼마 전 전시회 때 작품을 내기도 했었다.
다도(茶道) 공부도 했었고, 일 년에 몇 번 밖에 참석 못하지만 인라인동호회원이기도 하다.
 문학적 감수성도 내 재산 중 하나라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문학 동아리 활동도 해 왔었다. 내 인생 60즈음엔 시집도 하나 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다. 낭만과 서정을 아는 정치인으로 불리고 싶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웃음)


- 바쁜 일정에 쫓기다보면 개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 할 것 같다. 어떻게 활용하는가?
 지난해 5.31 선거준비하면서부터 습관이 되어버린 것 중에 하나가 있는데, 그 전날 몇 시에 잠들었건 간에 새벽 5시만 되면 눈이 떠진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살아오신 세월만큼 나도 그만치 살아와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새벽시간에 나는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꺼내 완결하고, 밀린 일상의 일들 -청소, 빨래-도 하고, 컴퓨터를 켜서 웹서핑을 하는 등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아참, 인터넷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최근에 자주 생각하는 것이 젊은 시의원답게 네티즌들에게 세상의 귀를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내 공식홈페이지나 싸이 홈피를 적극 활용할 계획을 하고 있다.

- 살면서 표본으로 삼고 싶은 인물이거나 철학이 있는가?
물론 있다. 특정 인물이라기보다는 삶의 화두처럼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것이 있는데, 살면서 어떤 목표를 성취해서  훌륭해지거나 존경받는 이도 있지만, 성취한 것과 채워져 있는 것을 버리고 비워 낼 줄 알아서 더 훌륭하신 분도 있다. 스스로 버리고 비울 줄 아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시의원으로서는 ‘젊은’ 이란 수식어가 늘 붙지만, 아직까지 미혼인 점에선 혼기를 훌쩍 넘긴 나이다보니, 왜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터인데, 결혼에 관심이 있기는 한가?
요즘 개인적인 관심사 중에 하나가 결혼이다. 그래서 소개팅이나 선도 몇 번 보기도 했지만  그런 만남이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결국 인연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말을 하면 눈이 너무 높아서나 까다로운 건 아닌가하는 질문이 또 들어오는데,
그런 건 아니고, 살면서 사랑의 아픔을 두어 번 겪으면서 그러한 감정에 대해 무덤덤해진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다.(웃음)

- 혼자 생활하는 것으로 안다. 이쯤에서 당연히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집안일은 어떻게 해결하는가? 할 줄 아는 음식이 있는가?
내 취미가 손빨래이고, 주특기가 다림질일 정도다. 이불빨래도 직접 발로 밟아가며 빤다.   음식도 웬만한 것은 다 만들 줄 아는 편이다.
예를 든다면 개인적으로 맑은 국을 좋아하는데, 즐겨 끓이는 국이 무국, 콩나물국, 들깨가루를 넣은 미역국 등이다. 이정도면 증명되지 않는가? (웃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난 시민들에게 물감처럼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원하는 색이 되어주고 싶다. 대신 얼마나 아름다운 색감을 만들어 칠하느냐는 시민들의 몫이자 시민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난 기꺼이 그들이 원하고 요구하는 색의 원재료가 되어 줄 것이다. 그들이 칠하고자 하는 곳이 진정 의롭고 당당한 곳이며 내가 칠해져서 빛을 내고 색을 내야 하는 곳이라면 난 기꺼이 그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바탕색과 빛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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