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910건)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이현보의 자는 비중(?仲), 호는 농암(聾巖), 본관은 영천이니 인제현감을 지낸 흠(欽)과 안동 권씨의 아들로 세조 13년 1467년 7월 29일, 현 안동군 도산면 분천동에서 태어났다. 영천에서 안동으로 이거한 후의 그 직계는 다음과 같다.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 헌(軒) 의흥현감(義興縣監) 파(坡) 통예문봉예(通禮門奉禮) 효손(孝孫) 인제현감(麟蹄縣監) 흠(欽) 현보(賢輔) 농암은 태어나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골상이 비범하였다. 특히 사냥을 좋아하고 학문에는 힘쓰지 않았는데, 19세에 향교에 가게 되어 이때부터 발분, 20세에는
2008-06-18

'가족헌법' 1조, 우리집은 골동품 공화국이다
▲ 21년된 선풍기 버튼이 여럿이지만 잃어버린 기능이 더 많다. 흰 얼룩 부분은 지금은 성년이 된 아이들이 어릴 적에 붙인 스티커 자국이다. ⓒ 장호철 한낮 날씨가 더워지면서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냈다. 선풍기는 모두 세 대다. 둘은 이태 전과 오륙 년 전에 각각 산 놈이니 아직 생생한 편이지만, 나머지 하나는 연륜이 만만찮다. 그게 언제쯤 산 건가, 가만 있자, 산 시기가 너무 까마득하다. 초임교인 경주 인근의 여학교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전세 120만원, 단칸방에서 3년을 살다 방 두 개에 입식부엌이 있던 양옥으로 옮기고 산 놈이
2008-06-17

우왕좌왕 생존일어(8) - 요요기 공원 앞 젊은이들, 마무리
신궁을 나와 요요기 공원 입구에 오니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애들 노는 것도 관광자원이 될 수 있구나. 저녁에는 시부야에 갔다. 가는 길에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시부야역까지가 아닌 환승역인 신주쿠역까지의 표를 끊은 실수였다. 이번에는 그 표로 시부야역까지 가서 역무원에게 갔다. “いいだばし えきから しんじゅくえきまえの きっぷですが......” (이이다바시 역에서 신주쿠까지 표입니다만......) “じゅうえん @$#%(^&^#$^%&” '10엔씩 더 내라는 이야기인 모양이군.' 세 식구(아들은
2008-06-12

펜화, 마음 끝에 스치는 사경(寫經)의 철필소리
▲ 김영택의 펜화기행 지식의 숲, 2007년 12월 ⓒ 장호철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사진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듯하다. 더러 풍경이나 사물을 담기도 했지만 전 시대의 필름 카메라는 주로 사람을 찍는 데 한정되었으니 그것은 만만찮은 비용 때문이다. 필름 구입에서부터 현상과 인화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큰돈은 아니지만 줄곧 비용이 드는 걸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디카'의 등장은 그런 여가 문화를 일거에 바꾸어 놓았다. 이름난 유적지나 명승지에선 디카를 들고 풍경이나 유적을 담는 사람들로 붐빈다. 필름
2008-06-09

퇴계(退溪) 이황(李滉)
이황은 사림이 훈구의 공신 세력으로부터 심한 수난을 겪었던 조선중기인 연산군 7(1501)년 12월 25일 안동 도산 온계동에서 태어났다. 공의 휘는 황(滉)이며 자는 경호(景浩)이다. 아호는 향리의 시내 이름을 따서 퇴계(退溪)라 하였으나 이외에도 도옹(陶翁), 계옹(溪翁) 등 여러 가지로 불리었다. 이황의 본관은 진보(眞寶) 곧 진성(眞城)이다. 이 진보 이씨는 고려말에 입문한 씨족이다. 진보 이씨의 시조는 석(碩)으로 밀직부사를 지냈으며 2세 자수(子脩)는 홍건적 토벌로 공을 세워 송안군으로 봉작을 받으신 분이다. 3세 현후(
2008-06-04

우왕좌왕 생존일어(7) - 메이지 신궁
다음은 요요기 공원에 있는 메이지 신궁을 찾아야 한다. 여행 정보에서 메이지 신궁은 요요기역이 아닌 하라주쿠역에서 가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므로 별 문제는 없겠다. 지도를 보니 역 뒤편으로 있는데 신주쿠 방향으로 요요기 공원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 그 방향으로 한참을 가도 요요기 공원 입구가 나타나지 않는다. 몇 차례 길을 물어서 찾아갔더니 요요기 공원 입구가 바로 하라주쿠역 옆에 있다. 요요기 공원 입구는 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있는데 우리가 다케시타토오리로 바로 내려갔기 때문에 그 입구를 보지 못하고 반대 방향에
2008-06-04

북녘동포와 우리집 밥상 함께 살리는 '통일 쌀'
▲ 통일쌀로 맺을 모 이 모가 그 빛깔만큼이나 싱그럽고 튼실하게 알곡으로 익어 북녘 동포에게 전해진다면 그것은 겨레의 화해와 상생으로 이어지리라. ⓒ 장호철 5월 중순을 넘기면서 경북 안동시 외곽의 논밭에도 모내기가 한창이다. 안동시 송하동 '솔밤다리’(송야교)에서 봉정사로 들어가는 송야천 옆 왕버들 고목 그늘에 하얀 찔레꽃이 소담스레 피고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2시 이 나무그늘에 인근의 농민·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자리 잡은 농민들은 드럼통을 잘라 만든 숯불화덕 위에다 철망을 얹고 이날 잡았다는 돼지고기를 수
2008-06-03

도자기 주전자展 개최
안동공예사업협동조합 소속 도자기 작가 7명이 첫번째 테마전시 형식으로 다양한 '주전자'를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용기로서의 주전자, 오브제 작품 등 다양한 작품이 선보일 예정.. 안동에서 작업활동을 하는 참가 작가들은 그동안 안동지역을 제외한 타지역에서 전시회를 개최해 왔지만 정작 우리지역에서의 전시활동이 다소 미온적인것이 사실입니다.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전시회를 통해 안동의 도자기작가를 자연스레 소개하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앞으로 2회, 3회 테마전을 통해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지역작가들
2008-06-03

우왕좌왕 생존일어(6) - 도쿄도청, 하라주쿠
토요일. 신주쿠의 도쿄도청, 하라주쿠의서 메이지신궁, 시부야를 돌아볼 목표로 출발했다. 이제 전철을 타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다. 호텔 인근의 이이다바시 역에서 신주쿠에 이르는 주오센 역들의 이름이 재미있다. 신주쿠 방향으로 가면서 첫 역이 이치가야(市ヶ谷) 역이고 두 역을 지나면 센다가야(千?ヶ谷)역이다. ヶ谷을 가야로 읽는다. 안동 인근에도 가야라는 지명의 마을이 있고 경산의 외가 옆 마을 지명도 가야였다. 가야의 원래 의미가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을 의미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국가 가야 연맹체의 각 가야의
2008-05-29

우린 왜 '고장말'을 잊지 못할까?
▲ 우리 집의 무말랭이김치 '오그락지'. ⓒ 장호철 '골짠지'라고 들어 보셨는가. 골짠지는 안동과 예천 등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무말랭이김치'를 이르는 말이다. '짠지'는 '무를 소금으로 짜게 절여 만든 김치'인데 여기서 '골'은 '속이 물크러져 상하다'는 의미를 가진 '곯다'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잘게 썰어서 말린 무는 곯아서 뒤틀리고 홀쭉해져 있으니 골짠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선 아무도 그걸 골짠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 식구들은 골짠지 대신 '오그락지'라는 이름을 쓴다. 이는 내가 나고 자란 경상북도 남부지방
2008-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