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신굿이란 ?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에 마을신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대체로 마을 제사는 제물을 차려 놓고 축문을 읽고 제관이 절을 하며 소지를 올리는 유교식(儒敎式)으로 지냅니다. 우리조상들은 매년 똑같은 음식을 차려 놓고 똑같은 방법으로 마을 제사를 지내면 마을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하여 3ㆍ5ㆍ7년에 한번씩 특별히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별신굿이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신(神)을 즐겁게 해 주면 복(福)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별신굿 때 마을신을 모셔서 기쁘게 했습니다. 2. 전하는 곳 이 별신굿은 안동
2010-07-29
우리민속이야기 (37건)
1. 이야기가 전하는 곳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산 일대 2. 전하는 이야기 조선조 순조 때 영양군 청기면 당동에는 우씨 성을 가진 젊은 청년이 일찍 홀몸이 된 어머니를 모시고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러 받은 오두막집과 얼마 되지 않은 땅마지기만으로 농사를 지으며 오직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찬 우씨 청년은 이웃 마을의 평해황씨의 마음씨 고운 처녀와 혼인하고, 외롭게 자라온 지난날을 생각하며 아내를 극진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귀여운 아들과 딸 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행
2010-07-22
1. 영등신이란? 영등신은 우리 지역에서는 영등할매라고 합니다. 일기가 불순하면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일기가 순조로우면 풍작을 바랄 수 있었는데 영등할매는 바람과 농작의 풍흉과 관계 되는 농신(農神)의 성격을 가집니다. 또한 영등할매가 지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거센 바람이 일어 난파선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부들은 이 기간 동안은 출어를 삼가며 일을 쉽니다. 2. 영등할매는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 영등할매는 바람을 일으키는 신으로, 천계에 살고 있다가 2월 초하루에 지상에 내려와서 20일에 다시 천상으로 올라간다고
2010-07-12
1. 기자의례란? 우리 민족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가계를 이어갈 아들을 희구하는 기자속과 기자신앙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없는 부녀자들이 자식, 특히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비는 것을 기자의례라고 하는데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또한 집안에 따라 전국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자의례는 자식 얻기를 기원하는 주체자의 행위에 따라 분류되며, 일반적으로 치성기자, 주술기자, 주물기자 등으로 대별됩니다. 2. 치성기자 먼저 치성기자는 초월적인 존재나 또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자연물에 치성을 드리는 유형으로 기원대상
2009-12-17
문경새재에 아담한 초가집 한 채가 첩첩 산중에 홀로 서 있었는데, 이 집은 재를 넘는 행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습니다. 이 집에 송씨라는 젊은 남자가 꽃같이 아름다운 여인과 단란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송씨는 한양을 떠나 이곳에 내려와서 살고 있었는데 글도 잘하고 아는 것이 많은 선비였으나 이제는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낙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새벽에 돌아오거나 이튿날 아침까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니 한양에서 낙향할 때 가져온 재산도 거의 다 밑바닥이 드러나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내
2009-12-10
정탁의 자(字)는 자정(子精), 호(號)는 약포(藥圃)입니다. 조식(南溟 曺植), 이황(退溪 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사(經史), 지리(地理), 병서(兵書)에 밝고, 믿음과 지조가 높아 50여 년간 벼슬길에 올랐으며, 5조판서(五曹判書)와 좌?우의정(左,右議政)을 지낸 명재상으로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등 명장(名將)을 천거하여 나라를 구하게 하였으며, 특히 충무공(忠武公)을 사형 직전에 구하여 백의종군(白衣從軍)케 한 뒤 명량대첩의 큰 공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사후(死後) 1613년(광해군 5) 위성공신(衛星功
2009-09-11
반변천이 굽이치는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입암면 연당1동 앞에 거울같이 맑은 물 위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기암절벽의 선바위와 입암면 산사동 냇가의 남이포에 얽힌 남이 장군의 전설이 있습니다. 조선조 세조 때 지금의 연당1리(蓮塘一里 : 옛 석백리(石白里)의 속칭 돌백리) 석백지(石白地) 가에 아룡(阿龍)과 자룡(子龍)이라는 형제가 살았습니다. 이 두 형제는 큰 도둑떼의 두목으로 영양고을을 주름잡으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을 원은 군사들을 보내어 이들 형제들을 잡으려고 했으나 워낙 재주가 뛰어나서 잡기는커
2009-08-20
명칭 :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지 정 일 : 1975.12.30 소 재 지 :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63 기능보유자 : 배분령(裵粉令 : 1906년생) 안동지역에서 제작된 대마포로서 삼베라고도 한다. 안동은 기후와 토질이 삼베재배에 적합하고 베짜는 기술이 우수하여 조선시대에는 궁중진상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으로부터 베짜기까지 8과정으로 나뉜다. 우선 재배를 해서 7월에 수확을 하는데 수확한 삼베는 물에 불려서 껍질을 벗긴 후 말린다. 말린 삼껍질을 물로 적셔서 손과 삼톱으로 째고 훑어내려 가닥(실
2009-08-06
왕모산성은 공민왕의 어머니가 머물렀던 산성이라 전해지는 곳으로 원천 마을 뒤 왕모산에 있다. 1361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 왔을 때 안전을 위해 그 어머니를 이곳 원천 부근에 머물게 하고 만일을 대비하여 산성을 쌓았다고 전한다. 이 산성은 흙과 돌로 축성하였는데 서쪽에는 자연석으로 된 석성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공민왕의 어머니가 안동으로 와서 임동을 거처 낙동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이곳에 자리 잡고 피난을 했다고 한다. 적의 공세가 강하여 부득이 목적지인 청량산을 향해 왕의 행차가 왕모산성 우측 낙동강을
2009-07-09
이 이야기가 전하는 곳은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이며 이야기의 주인공 별동(別洞) 윤상(尹祥, 1373~1455)선생은 조선시대 초기의 문신이며 대학자인데 그에 대한 일화(逸話)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미호리에는 조선 세종 때 대사성(大司成)까지 역임하고 유림(儒林)의 종장(宗匠)으로 추앙(推仰)받은 윤별동(尹別洞)선생을 모신 사당(祠堂)은 미호리에 있으며, 마을 앞을 흐르는 내성천(乃城川)은 낙동강(洛東江)의 상류(上流)로 맑고 넓은 백사장(白沙場)이 명사십리(明沙十里) 펼쳐 있는 미호유원지(眉湖遊園地)로 인근의 등산
200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