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김C의 색즉시공 - 소통(疎通)
불과 얼마전까지 '소통'이란 단어는 내가 사용하는 단어중에는 없었던 단어이다. 그런 단어가 요즘은 난무하다시피 회자되고 있어 '소통'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소통'이 무언이간데 집나간 아이를 찾듯 돌아오라 난리이며 '불통'은 내쫒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지난 신문의 기사가 떠올라 정리를 해보니 '소통'을 목놓아 부르짓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통령이 만난 직업군중 기업인은 전체 소통의 21.9%이고 그 중에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2배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는 노동자 집단은 경제인과의 만남비율 대비 35%에 그치고 그것도 비상대책회의 및 오찬을 통한 소통이 전부이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대표격인 민주노총과의 접촉은 전무한 상태라한다.
정치권 역시 여당에 비해 야당과의 만남은 18%밖에 되지 않는다. 서민행보를 부르짓지만 여성계와의 만남은 오찬 1번이 유일하며 농민 2번, 영세상인 5번, 장애인 1번이다. 사회적 약자라는 묶음으로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환경미화원, 노점상, 장애인, 여성계 등등 모두를 합쳐도 전체 12.5%에 불과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평택상공엔 헬기가 최루액을 뿌리고 있을것이며 용산은 아직도 상복을 입고 있을것이다. 난 그들이 이해관계에 있는지 생존권에 있는지 자신있게 주장할만큼 잘 알지 못하지만 경찰과 용역깡패가 한편먹는 동맹은 잘못됨을 알고 있다. 용산과 평택에 경찰만 있는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사실관계를 그대로 전해줄 눈과 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논리비약이건 말꼬리잡기이건 다 짚어치우고 통계결과를 보더라도 불통은 분명하다.
한자(漢字)인 소통(疎通)의 글자 하나하나의 자전을 보면 모두가 통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정하지 않고 어떤 누구라도 막힘없이 잘 통하라는 의미는 아닐까? 전임 대통령때는 권위가 없다 가볍다하여 눈총을 받았었다. 소통을 하면 전임대통령의 망령이라도 되살아날까봐 그러는건지 높은곳으로 높은곳으로만 소통하고 아래로는 불통하는 위엄은 이제 그만 거두어야할 때가 아닌가.
세상이란 공간에 경계를 긋는다면 경계공간 위에는 공기로 가득하지만 경계선 아래에는 공기가 가득하지 못하다. 위에 가득한 공기처럼 채울필요까지는 없다. 물에 산소가 녹아있듯 아래에 숨쉴 수 있는 소통을 녹여라. 막힘이 발생하면 그곳에 구멍을 뻥 뚫어 호홉하게 하라. 그것이 소통이다. 그들 구단이 그토록 좋아하는 '미디어법'도 통과시켰고 고스톱은 헌재에 넘겨졌다. 지금이라도 평택과 용산에 소통의 빨대를 꼿아라 그것이 민생행보이다.
당신네들이 숨쉬는 공기가 아래로 전해지기에는 경계층이 너무도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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