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이야기 - 영양 가곡리 야성정씨 일헌종가, 권혜랑 여사

person 경북미래문화재단
schedule 송고 : 2010-04-28 15:37

1. 종가소개

 야성정씨 일헌종가 전경

우리집은 학자(學者)도 아니고 벼슬이 높은 것도 아니지만 충신의 집입니다.
영양읍에서 반변천을 따라 31번 국도로 10여분 북쪽으로 달리면 일월산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영조 4년(1728년) 이인좌 난(李麟佐─亂) 때 오삼달 장군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장군천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918번 지방도를 따라 4㎞ 지점에 이르면 아득한 농촌 마을이 보이고 이 곳에 고색창연한 고택이 서너 채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야성 정씨 동성마을이다. 이 중 가장 첫 번째 홍살문이 높이 솟은 집이 바로 임진왜란 때 김제 군수로 전라도 웅치전에서 순국하신 정참판 정담 장군의 15대 종손이 살고 있는 일헌종택이다. 정참판은 울진군 사동리에서 출생하였으나 그 자손은 영해 인량리에서 200여년 동안 살다가 1800년에 이 곳 가곡으로 왔고 그 후손들이 현재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 “우리집은 학자의 집안도 아니고 벼슬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라에 목숨을 바친 충신(忠臣)의 집이라 할 수 있지요.”라며 종부는 종가부터 소개하기 시작했다.

일헌 종가는 선조 16년(1583년) 36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청주목사(淸州牧使)로 부임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김제군수로 제수되었고 의병장 황박과 나주판관 이복남 등과 연합하여 전주를 방어하다가 웅치에서 전사한 일헌 정담(鄭湛)선생의 종가이다. 왜적도 공의 충절에 감복하여 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忠肝義膽)이라는 표서를 세울 정도였다 한다. 1593년에 “가선대부 병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 兵曹參判 兼 同知義禁府事)로 추증되었으며 순조시에는 장렬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현재 이 장렬공 사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7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사당 옆에 일헌 종가가 위치하고 있다.

 야성정씨종가부계회도



 야성정씨종가일산


2. 종부 이야기

그 당시에는 노처녀래도 나이가 많은 노처녀랬지요...
6.25전쟁이 끝난 지 8년이 지난 1961년, 전쟁 끝에 모든 것이 피폐해진 때에 민심도 흉흉했지만 종부가 살던 영해 관어대는 유난히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이들의 대립이 심했다. 이들의 대립 속에 어느 곳에도 들지 않았던 종부의 아버지는 당시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세련된 신사였다. 이 신사의 맏딸, 그러니까 종부는 나이 스물넷에 일헌 종택의 종손을 만나 혼인을 했다. “아이구~ 노처녀래도 나이가 많은 노처녀랬지요. 그 당시에 스물 넷이면 뭐...”, 단촐하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만이 생활하던 핵가족 사회에서 자랐던 종부는 종가가 무엇인지, 종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집을 왔었다고 한다. “시집 온지 사흘만에 사당에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깜짝 놀랬지... 내가” 이제는 종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 매일 만나게 되는 사당이지만 핵가족 속에서 생활하던 새색시가 처음 본 사당과 그 예법은 많이 놀라웠다.

시집을 오니 막내 시동생이 네 살, 함께 지내는 가족만도 열명을 훨씬 넘었던 데다 열 네번의 제사와 어려웠던 시댁의 살림살이는 종부를 지치게 만들었다. 종부의 삶이 힘들어 때로는 한숨도 쉬었지만 “내가 편하고 편리하려면 제사는 안 지내는 게 낫지요.” 종손 정재홍씨의 위엄 있는 말 한마디에 “다 어렸을 때부터 하던 예법인 걸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든 거 아니겠어요.”라며 수줍게 웃어 보인다. 처음 시집올 때 열네 번이던 제사가 길사(吉祭)를 두 번이나 지내고 나니 아홉 번으로 줄어들었고 세상도 많이 바뀌었지만 한 번도 떡을 사서 제사를 지내 본 일은 없었다.
 
내 이 집에 시집와서 쌀바가지 한 번도 피해보지는 못했어요.
요즘도 영양 읍내에 나가면 사람들이 일헌 종가의 종부를 보고 사람들은 ‘양반집 아지매’라고 한다. 종부가 접빈객이나 봉제사를 위해 쌀을 찧으러 가면 모든 사람들이 그 양을 보고는 떡집 한 번 해보지 그러냐고 권할 정도로 자주 떡을 할뿐더러 ‘웃기’라고 하는 잔편이 여섯, 일곱 가지씩 올리는 것을 보면 그 엄청난 양에 사람들이 구경을 올 정도다.

너나없이 다 어렵던 시절, 종부가 처음 일헌 종가로 시집을 왔을 때 종가의 살림도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았다. 종가를 찾아오시는 손님에게는 보리쌀밥이나마 대접하고자 애쓰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50년 세월이 흘렀다며 웃으시는 종부, 그래도 새며느리가 물을 이고 오는 걸 보면 안쓰러워 아들에게 대신 물지게 지라고 시키는 시아버지가 계셨고, 평생 아내만 바라보며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어 든든했다고 한다.

“우리 사랑어른이 참, 나를 세상없는 며느리로 사랑을 해줬어요. 겨울에는 꼭 솜 넣은 명주바지를 해 입는 꼿꼿한 양반이셨지만 며느리 사랑은 남달랐지요. 넉넉지도 못한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예법 이외에는 입 밖에 낼 수도 없고 그렇게 평생 살았지요. 이제 돌아가신 지 벌써 20여년이 되었는데 제대로 효성 드리지 못한 게 한스럽지요”

친정에서 낳은 첫아들, 시댁에서 낳은 둘째, 셋째아들... 차이가 많이 났지요. 
현재 종부에게는 아들만 삼형제가 있다. 딸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첫아들 낳았을 때가 종부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을 때였다고 한다. 첫아들은 혼인 후 묵신행을 할 때 친정에서 낳았다. 혼례를 치르자마자 아이가 생겨서 처음에는 부끄럽기만 했다는 종부, 그래도 임신과 출산을 친정에서 할 수 있어서 그 마음만은 편하고 풍성했었다한다. 3년 뒤 둘째 아들, 2년 뒤에 셋째 아들은 시댁에서 낳았는데 삼칠일을 쉬었지만 친정에서 출산했을 때와는 마음이 많이 달랐단다.

이제 삼형제는 장성해서 다 혼인을 하고 며느리도 셋이나 있어 행복하다는 종부, “우리 애들이 이제 들어와서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바뀐 세상에 다 맞출 수도 없고, 너무 옛날 것만 고집해서도 안되고, 그래 적당히 잘 해야지요.”

어른들 있는 집에 아이들 잔치는 안되... 돌잔치 없는 집
일헌 종가에는 예부터 돌잔치가 없다. 어른들 있는 집에 아이들 잔치는 예의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아직도 아흔 넷이신 시어머니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칠순 잔치도 손자들의 돌잔치도 안했다는 종손과 종부다.

종부는 늘 자신을 말할 때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 만나뵈었을 때도 “이래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찾아와줘서 내가 고맙지요.”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시며 진하게 끓인 대추차를 내주셨다. 종부가 살아온 50년의 세월, 꼭 종부가 내 온 진하디 진한 대추차와 비슷했다.

 야성정씨 일헌종가 종부 권혜랑 여사

3. 종가의 특별 음식

음식의 유래

* 밥식혜
일헌종택은 원래 영해 인량에서 수백년 살다가 1800년도에 영양으로 이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해지방 명문(名門)들과 통혼(通婚)하다보니 영해의 음식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이 곳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밥식혜’가 바로 그것인데 현재 종가가 있는 영양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음식으로 영해와 같은 해안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일헌종택에서는 약 200여년 전부터 이 ‘밥식혜’를 사용하고 있다.
- 제조법
재료 - 찹쌀, 무, 생선, 엿기름, 생강, 마늘, 소금
① 쌀로 고두밥을 쪄서 더운 기운이 없도록 식힌다.
② 무를 채썰어 준비하고 생선을 1㎝ 크기로 썰고 생강과 마늘 다진 것과 함께 엿기름과 배합한다.
③ 소금간을 하고 버무려서 항아리에 넣은 후 2~3일 정도 숙성시키면 된다.

4. 문화재 지정 현황

- 장렬공 사당 :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 77호
- 정담정려비 [鄭湛旌閭碑]  :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 380호
정여(旌閭)는 난후(亂後) 선조년간(宣祖年間)에 거론된 적이 있으나 숙종(肅宗) 16년(1690)에 교지(敎旨)가 비로소 내렸다. 처음에는 인량촌(仁良村) 마을 가운데에 목비(木碑)로 세웠다. 세 차례나 목비를 세웠으나 퇴락함에 정조(正祖) 5년(1782) 마을 앞 길가에 중건하여 석비(石碑)를 세웠다.
- 일산(日傘)
참판공께서 1583년 무과에 급제하실 때 하사받은 것으로 당시 일산이 현재까지 보존된 것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한다.
*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 계회도(契會圖)
참판공께서 1586년 함경도 경원판관시 두만강 어귀 25간성 장수들이 모임에서 그린 것이다.
* 모든 문적류가 1592년 전 것은 귀하다고 하나 이 계회도는 서울 근교에서의 계회도가 아니라 함경도 변방에서 그린 것으로 희귀한 것이라고 한다.(한국국학진흥원 소장)

※ 야성정씨 일헌종가 찾아가는 법

- 주소 : 경북 영양군 일월면 가곡리 263번지
경부고속-신갈IC-영동고속-원주IC-중앙고속-서안동IC-영덕방향-진보-영양-가곡초등학교 앞에서 청기, 봉화 갈림길에서 100m 정도 전방에 위치

<약도>

(집필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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