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세미의 궁상일기 - 별빛 속에

person 쑤세미
schedule 송고 : 2007-08-28 11:16
언제나 나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별

SF 러브 판타지 / SF 밀리터리.

책 홍보용 띠지에는 작가들이 원치 않을 문구가 많이 들어가 있다. 아마 그런 홍보용 문구를 직접 작성하는 작가는 없겠지? 게다가 이 국적불명의 ‘밀리터리’라는 장르는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뭐 ‘별빛 속에’는 정말 ‘SF 대 로망 서사시’ 정도는 불려도 될 것 같다.


학창시절 하교 후 꼭 들리는 만화방이 있었다. 여고 앞에 있었던지라 당연히 순정만화 일색이었고 간혹 어쩌다 누나 따라 들어온 남학생은 목숨을 부지하고 싶어 구석탱이에서 숨죽여 만화책을 보곤 했다. 그러나 비단 그 남학생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숨죽여 봤다. 혹시나 한권 값에 서로 돌려보진 않는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피는 호랑이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기관지가 안 좋았던지 가래를 자주 뱉어내곤 했다. 나는 그 뱉은 가래를 모은 깡통을 누군가에게 최고의 복수를 할 때 꼭 쓸 거라고 다짐했었다.(난감한 여고생이었다.)


한번은 친구가 강경옥의 ‘별빛 속에’를 빌려 독서실에 가져갔다가 잃어버린 사건이 생겼다. 호랑이 할아버지의 불호령을 생각하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만화책값을 물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갑자기 그러 돈이 생길 리가 없었다. 게다가 엄마 몰래 빌린 책이 아니던가. 때마침 내가 코리끼분식인지 하마분식인지에서 한 달간의 알바를 마치고 돈을 손에 쥐었는데 친구가 SOS를 요청했다. 그러나 목적이 있어 알바를 했던지라 나는 거절했다. 오래전 일인데도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꽤나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 그 친구를 만났는데 '별빛 속에' 영문판이 나왔다며 살 계획이라고 했다. 참 끈질긴 인연이구나 싶었다.


'별빛 속에'는 강경옥의 대표작이자 그녀의 글과 그림이 정점에 있을 때의 작품이라 생각된다. 아빠와 함께 집 뒷산에서 별을 보는 것이 취미인 천문학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 신혜가 우주행성인 카피온의 서열 1위 왕후인 ‘시이라젠느’임이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인형처럼 예쁘지 않은 그림체나 담백한 수묵화같은 분위기에 신비한 우주행성들이 등장하고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별빛 속에’는 지금도 애장판으로 나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나 또한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몇 번씩 담고 할인쿠폰까지 담아놨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구입을 포기했다.


오래전 부천만화정보센터 앞에서 사인회가 있었다. 강경옥에게 사인 받느라 줄을 서 있었는데 정말 거짓말 안보태고 성인은 나 혼자였다. 교복들 틈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친구가 얼른 나오라고 손짓했지만 그때 아니면 내가 언제 강경옥한테 직접 사인을 받는단 말인가. 강경옥의 사인지 밑에는 항상 이 말이 적혀 있었는데 정말 항상 그랬으면 좋겠다.

be happy!

사인지는 어딘가에 있을텐데 찾기 귀찮다.


강경옥/ 별빛속에/ 전8권 애장판 완결/ 애니북스 2005


쑤세미의 일상 Tip

1. 코렐 드로우에 능숙한 분은 연락바람. 하루 날 잡아 스파르따~ 식으로 교육해주시면 후사하겠음. 여기서 후사의 후는 뒷날 후이지만 아주 먼 뒷날을 말함.

2. 강경옥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두 사람이다’가 곧 개봉한다.

3. 사진은 윙크북스에서 나왔던 1997년 ‘별빛속에’. 원고분실과 인쇄사고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사히 디지털 복간되어 애장판으로 나왔음.

3. 남들 다 다녀오고 난 뒤의 뒤늦은 휴가땜에 들떠서 글 쓰는 걸 깜빡했다가 우모 이사의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얼굴이 떠올라 아침부터 급하게 자판을 두들김.


글/ 쑤세미

좋아하는 것은 용상동 훈제불닭집의 갈매기살, HY강M 서체,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 프로젝트 런웨이, 영화 Reality Bites, 패닉의 ‘미안해’, 봤던 거 또 보고 MP3 저장음악도 웬만해선 안 바뀌며 좀 후진 취향을 갖고 있으나 남에겐 들키지 않으려 하는 경향 있음. 비 오는 날 방구들에 엎드려 무한도전 재방을 틀어놓고 만화책 보며 뒹굴거리는 게 취미. 불의를 보면 꾹 참는 편이고, 불의를 보면 모른 체 하는 친구와 타협하는 친구를 두고 있음. 방학동안 말 안 듣는 조카들을 무한도전 실미도에 보내버리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조카들에게 천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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