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과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사촌마을

person 경북미래문화재단
schedule 송고 : 2010-03-31 17:44

일찍이 지사(地士)들이 말한 영남(嶺南) 8명기(名基)의 하나라고 하는 의성군 점곡면의 사촌(沙村)마을은 지형상 경북도 내에서도 가장 중앙이 되는 의성읍에서 북동 15km 지점에 위치한다. 의성에서 청송으로 뻗은 지방도를 따라 두 개의 고개를 넘어서 들어오는 길과 단촌면에서 동으로 훤히 트인 골을 따라 8km 가량의 포장된 군도, 안동시 길안면에서 좁은 골과 높은 재를 넘어 남서로 14km 되는 지점이다.

지세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편인데, 보현산(普賢山)과 황학산(黃鶴山)에서 발원한 물의 흐름이 급하여 넓은 하천부지를 형성하고, 토질은 사질양토로 배수가 잘 되어 과수 재배의 적지이다. 또한 이곳은 해발 160m로, 생산과 생활에 가장 적당한 지대이며, 낮과 밤의 일교차가 비교적 심하여, 여름에는 모기가 없어 무덥고 짧은 밤을 쾌적하게 숙면할 수 있다고도 한다. 

점곡면이라는 지명은 중국 춘추시대 공자의 고제(高弟) 증자(曾子)의 부친인 증점(曾點)의 점(點)자를 따라 점곡(點谷)이라 불리다가 후에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면 폐합에 따라 점곡면(點谷面)으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른다. 점곡면의 소재지권이기도 하는 사촌마을의 역사는 고운 최치원의 장인 나천업 정승이 살았다고 마을의 원로들에게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신라 중엽까지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마을에는 나정승의 묘라는 고총이 전해진다.

사촌이라는 마을지명은 충렬공 김방경의 5세손 김자첨공이 안동 회곡에서 이곳으로 이거하면서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따서 ‘사촌(沙村)’이라고 한 것을 유래로 한다. 후에 안동지방의 명문들과 혼인관계를 통하여 사촌의 안동김씨는 명문가로 성장하였고, 조선조말까지 대과급제자와 소과급제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사촌마을은 과거 대촌으로 ‘와해(瓦海)’라고 불렸을 만큼 기와집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세 번의 난을 겪으면서 옛날의 모습을 상실했기 때문인데, 그 가운데 특히 항일의병운동으로 인한 피해는 마을이 모두 화재로 불타서 없어질 만큼의 큰 고난이라고 할 수 있었다. 1895년 명성황후의 시해를 계기로 1896년 병신창의(丙申倡義) 당시 의성지역의 의병운동 중심지가 바로 사촌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운산 김상종(云山 金象鍾) 등의 의병장을 배출한 사촌마을은 1896년 3월 29일 일제의 마수에 의해 잿더미로 화했고, 그로인해 옛날의 ‘와해’라고 불렸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촌마을은 고려 중흥 공신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의 5세손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의 후손인 안동 김씨와 단종조 절의신 행정(杏亭) 권식(權軾)의 후손인 안동 권씨를 비롯하여 조선후기에는 조선중기의 명유(名儒) 겸암(謙菴) 류 운룡(柳雲龍)의 후손인 풍산 류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입향유래를 살펴보면 안동 권씨는 김자첨이 입향할 당시 사위로써 함께 들어왔으며, 풍산 류씨는 조선조 천사 김종덕에 이르러 병촌(屛村) 류태춘(柳泰春)이 천사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여 하회에서 처향인 사촌으로 이거할 때 동생인 류민춘과 함께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또한, 면 소재지에서 동남쪽 2km인 윤이실(尹谷)에는 학행과 절의로 이름난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의 후손 영양 남씨가, 동쪽 2km 지점 단애(丹厓)실에는 퇴계 문하의 고제 송고(松皐) 박윤함(朴允?)의 후예 반남 박씨, 서쪽 중리(中里)에는 1문 5종반의 충절로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의 공훈이 길이 빛나는 김치중(金致中)의사의 자손인 의성 김씨가 각각 터를 잡아 세거(世居)하면서 문맥(文脈)과 통혼으로 빈번히 인연을 맺고 교류하고 있다.

사촌마을은 문향(文鄕)으로도 이름이 높다. 옛날부터 학문으로써 향리를 빛낸 어른들이 많지만 벼슬로 나간 사람은 적고 학문과 수신을 미덕으로 삼은 인사가 많았다. 그러나 대소과(生員과 進士 및 文科, 武科)에 53명이 급제하여 조선조 사회에서 일단 각자의 지적 수준과 능력을 가름해 보고자 했음인지 자격을 인정받는데는 뒤지지 않았었다. 

마을주변에는 뛰어난 자연경관이나 유적과 유물 같은 것도 많이 산재하고 있다. 임진왜란때 김치중 의사의 전적지로 유명한 건마산성과 천연기념물 405호로 지정된 방풍림 가로숲, 송은 김광수의 강학처였던 영귀정(詠歸亭) 등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사가(私家)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알려져 있는 만취당(晩翠堂)은 1582년에 퇴계(退溪)의 고제 만취당 김사원(金士元)이 지은 집으로 규모가 웅혼하고 건축양식이 특이하다. 
 
사촌마을은 주요유적들과 마을사람들의 살림살이가 한데 붙어있어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동선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한 곳을 둘러보고 다른 곳으로 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추천 볼거리는 내용 별로 크게 네 가지 정도인데 첫 번째는 마을 안에 있는 사촌마을자료전시관이다. 

                               사촌마을자료전시관

사촌마을자료전시관은 유교문화권개발사업으로 건립된 것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곳에는 사촌마을의 유래와 민속, 출신 인물등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마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반드시 처음에 들려야 할 장소이다. 때에 따라 의성군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마을 소개 또는 마을에 대한 자료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사촌가로숲이다. 사촌가로숲은 안동김씨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의 5세손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이 입향할 때 마을 의 서쪽이 허하여 심었다고 전하는 방풍림이다. 길이가 1.2km가량 되는 규모를 사촌가로숲은 그 역사가 600년가량 되어 마을의 숲을 연구할 때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의성군의 군조인 왜가리가 서식하고 있는 서식지여서 왜가리 서식지 연구 자료이기도 하다.

                        사촌가로숲
이 곳 사촌가로숲에서 조선조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한다. 서애 류성룡의 아버이인 입암 류중영공에게 사촌마을 출신의 안동김씨부인이 시집을 갔다.

아이를 낳을때가 되자 친정인 사촌마을에서 자랄적에 들었던 세명의 정승이 태어난다는 전설을 기억하고 친정에 와서 아이를 낳고자 하였다.

그러나 친정아버지인 송은 김광수공이 안동김씨부인이 사촌마을에서 아이를 낳는 것을 반대하여 시댁인 하회마을로 가마를 타고 돌아가던 중 마을 입구인 사촌가로숲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낳자 사촌가로숲의 모든 나뭇잎 끝이 말라버렸다고 한다. 그 아이가 바로 서애 류성룡이라는 전설이다.


                                                  만취당 전경

세 번째는 마을의 주요유적들로 만취당과 후산정사를 들 수 있다. 만취당은 퇴계 이황의 고제인 만취당 김사원이 지은 것으로 현존하는 건축물 가운데 사가(私家)의 목조 건축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판은 석봉 한호가 썼으며, 만취당 앞의 작은 우물은 서애 류성룡의 어머니인 안동김씨부인에 대한 전설이 얽혀있고, 만취당 기둥과 기둥사이에 안동김씨부인이 타고 왔다고 하는 가마틀이 보관되어 있다. 만취당 옆에 는 안동김씨 도평의공파의 대종택이 있다. 만취당은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문수의 만취당기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후산정사

후산정사는 안동김씨문중에서 사용하는 제실이다. 병신창의 당시 모두 불타서 근래에 다시 지은 것이다. 후산정사의 옆에는 만취당 김사원의 사당이 있다.

그 외에도 풍산류씨 겸암파의 민산정, 안동김씨의 후송재, 영귀정 등 볼거리가 많다. 지금은 유자정이라는 정자가 복원 중에 있다. 이들 전통가옥에서 하룻밤 묶어가며 농촌의 전원풍경과 사촌마을 선비문화에 대해 체험할 수 있도록 의성군에서 준비중에 있다.

                                          상여집

네 번째는 상여집이다. 상여집은 장례에 쓰이는 상여와 용구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곳집이라고도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안동 일직면에 있는 상여집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다. 본래 마을의 바깥쪽에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으나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으로 외곽도로가 나면서 깊숙이 숨어있던 상여집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촌마을의 여러 사회조직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상여계인 공목계가 있어 현존하는 상여집 가운데 오래된 편에 속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어릴적에 친구들과 누군지도 모를 상여 뒤를 따라가 햇살이 따사하게 내리쬐는 잔디에서 놀기도 하고 밤에는 누가 혼자 상여집에 다녀올 수 있는지 담력을 겨루어 보기도 했었다. 돌아올 때는 귀신이 잡아당긴다는 소문 때문에 맨 뒤에 서는 것을 꺼렸었는데, 이곳에서 지금은 보기 힘든 큰 규모의 상여까지도 볼 수 있다.

아직 별도의 체험프로그램이나 투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 않지만 의성군에서 인근의 폐교된 학교를 이용해 수련원 형태의 숙박시설 건립과 고가체험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곧 복원되는 유자정과 교육관이 건립중인 민산정 등을 활용하면 숙박과 체험이 가능하다. 그래도 지금 해야한다면 마을 이장님께 말씀드리자. 시설 좋은 마을회관과 안동김씨종택, 후산정사 등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글, 사진 김태홍

연락처 : 의성군청 새마을문화과 (054-830-6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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