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코끼리가 꿈인 꽁지머리 고경호

person 황지영기자
schedule 송고 : 2007-08-21 13:07

음향을 필요로 하는 행사장이라면 긴머리 휘날리며 어디든지 달려가는,
안동사람이라면 한 번 쯤 봤을 법한 음향무대설치가 고경호씨를 만나봤다.

머리가 많이 짧아졌다. 원래 허리까지 오는 긴머리가 트레이드마크가 아니었는가?
지난해 9월 몽고로 여행을 갔었는데, 울람바트라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들렀다가 그 마을의 촌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촌장의 말이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의 젊은이들이 돈의 개념을 알게 되고, 점점 거기에 길들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돈이 없을 때도 오순도순 잘 살았는데, 마음의 풍요가 더 중요한 것인데...하는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내 머리를 쿵 치고 지나갔다.
사실 내가 머리를 기르는 것은 하고 있는 일의 광고 효과, 더 엄밀히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안동에서 머리 긴 사람하면 먼저 나를 떠올릴 것이 아닌가?(멋쩍은 웃음)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스스로 정화하는 마음으로 잘라버린 것이다. 
이참에 예전부터 내 머리를 잘라보는 것이 소원인 이발사 한 분이 계셔서 소원성취를 해줬다(웃음)

머리를 기르면 관리하기가 힘들지 않나?
의외로 그렇지 않다. 특히 나의 경우는 머리를 기르는 것이 아니고 자르지 않을 뿐이라는 개념이기 때문에 미장원 한번 간 적이 없다. 대신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집사람이 화풀이를 내 머리카락에 하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면 한 뼘씩 잘려져 나가있곤 했다.(멋쩍은 웃음)
그런데 오히려 머리가 짧으니까, 손질하기가 더 불편해서 다시 자르지 않고 있는 중이다.

그전에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다고 들었는데?
어릴 적부터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내 꿈이 프로복서였는데, 그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동생 둘을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권투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술집 웨이터 일을 한 적고 있고. 방위시절에도 밤에는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86년 쯤, 아르바이트를 했던 당구장 사장님의 도움으로 안동대 앞에서 만화방을 열었는데, 그 즈음 사장님의 친구였던 안동MBC 카메라 기자가 평상시에 나를 눈여겨봤는지 찰영보조일을 제안해왔고, 그걸 인연으로 한 일 년 동안 그 일을 했었다.
경력이 쌓이면 카메라기자가 될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도 내 생리에 맞지 않다보니, 답답함을 느껴서 그만두게 됐다.

그럼 지금 하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는가?
카메라보조 일을 그만 두고 할 일을 찾고 있을 때, 마침 그 당시 악기도 판매하면서 기타강습소였던 ‘현악기’에서 기타 강사를 구하고 있었다. 자격증은 없어도 기타 실력은 꽤 되는 편이라 바로 취직을 할 수 있었고, 수강생도 금방 몇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러다가 1년 정도 지나서 어떠한 계기로 그것을 인수받게 됐는데, 얼마 안돼서 고발이 들어왔다. 무허가무면허로 기타강습소를 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자격은 음대를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법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학원을 그만두는 대신으로 생각해낸 것이 ‘음향기계 대여’였던 것이다.

수입은 괜찮은 편인가?
기본적으로 부지런한 성격에다가 장비도 지역에서는 가장 잘 갖추고 있는 편이라 섭외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솔직히 우리 분야의 일을 하려면, 특히나 지역 내에서는 인적네트워크가 중요하고 그것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대신 그 인맥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가려면 우선적으로 스스로 실력을 갖추어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서량이 상당하던데,  못 다한 학구열에 대한 보상심리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음... 한 20년 전 음악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어느 날 외국인 손님이 왔는데, 평상시에는 그렇게 영어발음을 유창히 하던 DJ들도 꽁무니를 빼고, 결국 사장님이 나와서 직접 대화를 나누는데,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이었다. 솔직히 사장님도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먹고살기 위해 바빴던 분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슬쩍 물었더니, 내가 하고 싶은 분야를 공부하는데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맘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적어도 무식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틈나는대로 일주일에 한권 정도는 읽었다. 시간이 이만큼 흐르고 나니 저절로 독서량이 쌓이게 된 것 뿐이다.
좀 부끄러운 이야긴데, 한동안은 조금 알고 있는 지식을 잘난 척 한답시고, 술자리에서 상대들에게 공격도 많이 했었다.

시민활동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임하댐탁대협’에도 참여하셨다고 들었는데?
2004년 임하댐 탁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하댐탁대협’ 집행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 각계각층의 단체들이 많이 참여를 했었는데, 그 중에는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단체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 사안을 가지고 로비를 하든, 이익을 위해 이용을 하든지 간에 그것은 그들의 양심에 문제이고, ‘임하댐탁대협’을 만든 원래 목적을 이루어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임하댐 물이 맑아졌고, 그러면 그걸로 된 것이다.

 

 

 잠깐 동안 ‘안동소식’이라는 신문사도 했었는데, 경영주로서 스스로 평가를 내린다면?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시기적인-지방선거 무렵- 부분이나 내용면에서 선거용기간지로 오해를 살 만큼의 소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들리는 쓴소리에 할 말이 없다.
어떤 일에든 변명이 있기 마련이듯, 나 역시 굳이 변명을 들자면 원래 취지나 운영면에서 그렇게 불순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는 떳떳하다.
또한 편집장이 친구였는데,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 친구를 신뢰하고, 그의 철학을 믿기 때문에 경영을 잘 하지 못한 내 탓으로 돌리고 싶다.

사실 안동넷은 진지한 이야기보다 연애담을 더 좋아한다.(웃음) 부인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처음 집사람을 봤을 때는 나보다 한참 어리게 봤기 때문에, 귀여운 동생쯤으로 여겼는데 다 나중에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걸 알고 놀랐었다.(웃음)  그 때는 서로 사귀는 사람이 있는 상태인데다가 직업도, 가정환경도 나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라 결혼 대상자로서 감히 상상조차 못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애감정보다는 편한 친구사이로 지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집사람도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그때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고는 결혼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긴 머리와 함께 오토바이도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 같다. 유독 오토바이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가?
난 차나 오토바이나 이동 수단의 도구로만 보기 때문에 큰 욕심이 없다. 단지 출퇴근이나 시내를 다닐 때는 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더 편리하다는 점에서 선호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말과 앞으로의 계획은 ?
음..난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본다. 동물의 세계는 철저히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에 초식동물은 늘 약자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육식동물이라더라도 몸집이 거대한 초식동물에게는 -예를 들어 코끼리 같은- 떼를 지어 공격하지 않은 한 웬만해선 달려들지 않는다. 사람도 동물이라 그러한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약빠르고 강한 동물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초식동물들은 스스로 거대해져야만 한다..참고로 난 거대한 코끼리를 꿈꾸는 초식동물이다.(웃음)

앞으로의 계획이라면,..(잠시 생각)...요즘 시민단체들을 보면 보조금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놓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민단체 스스로가 자정작용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기 돈을 내면서 활동할 수 있을 때 어떠한 사안을 보는 시각도 해결해나가는 방법도 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시민 스스로 주체적이 될 수 있는 모임들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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