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예술 간담회: 현대거리예술의 발전과정

person 김영호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10-01-11 10:07

3년간 지속해오던 청계천거리예술가 프로젝트가 서울거리예술가로 거듭난다. 아직 시기 상조인 감은 있으나 서울 거리가 다양한 장르의 거리예술가 들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면 분명 행복한 도시 만들기에 일조할 것이라 봅니다.

아래의 글은 2007년 1월 말 대학로중앙대학교 영상예술원에서 블란서 세르쥬쇼미에 교수를 모셔 놓고 발표한 내용을 요약했습니다만, 그리 참신하지는 않습니다.

사전에 준비된 세미나가 아니라 급조되어 진행된 내음을 흠뻑 만끽했습니다.

.....DVD.....관람...

공연을 축약된 영상으로 본다는 것은 언제나 실망스럽다. 방금 본 DVD의 제작의도는 거리극의 계통 및 기원과 관련된 미학이다. 간략하게 말해 거리극은 최초의 연극이었고 고대 그리스연극은 거리극이었다. 고전 연극의 뿌리는 점차적으로 실내로 들어갔고, 종교적이고 의식적인 성격이 강했던 중세연극도 야외에서 벌어졌다. ‘그리스 연극이 거리극이다’라는 관점은 어쩌면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연극과 현대연극의 역사적인 지속성 없이 단절된 기간이 길었고, 두 연극의 텍스트나 컨텍스트에서 너무 많은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고대연극보다는 현대 거리극과 근접한 사례를 얘기하겠다.

거리극의 3가지 기원에 대해 얘기하겠다. 먼저 첫 번째는 자주 언급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프랑스연극의 지역분권의 기원과 관련된 것이다. 근대 연극의 창시자들은 19세기에 존재했던 다음 두 가지의 연극 장르를 거부하려고 시도했다. 첫 번째는 오락을 위한 부르조와연극(theatre bourgeois)이며 두 번째는 상업연극(boite a theatre)과 통속극(boulevard du Crime)을 포함한 서민연극이다.

위에 언급한 19세기의 두 가지 연극경향에 반하여 로망 롤랑(Roman Rolland)같은 사람은 서민연극을 서민을 위한 엄격한 연극형식으로 이론화했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민주화(democratisation)의 영향과 양질의 문화를 사회에 공급한다는 서민교육(education populaire)의 정신이 지배적이었다. 민주화의 정신을 넘어, 예술가들이 일반인들에게 연극에 대한 순수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관중을 만나고자 하는 이런 시도는 자끄 꼬뽀(Jacques Copeau)와 장 빌라(Jean Vilar)에 의해 20세기 초까지 진행되었다. 거리극의 영향 없이 실내공연을 야외로 끌어냈는데, 이 시기에는 이미 몰리에르(Moliere)의 간이무대(treteau)와 도시를 순회하는 이동공연들이 존재했었다. 실내공연과 야외공연이 공존하였으며, 실내극과 거리극의 대립은 없었다. 예술가가 두 장르를 시기와 프로젝트에 따라 함께 병행하였다. 또한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Stanislavski)처럼 사회전복이나 정치적인 행동을 위한 보다 정치적이 연극들도 야외에서 공연되었다.

이런 계통은 두 번째 시기인 6-70년대 전세계적인 운동인 혁명적인 선동가(provocateur)시기에 의해 좀 가려져 있습니다. 60년대는 새로운 관중을 위한 민주화의 개념을 넘어, 지나가는 행인을 바로 공연에 참여시켜 놀라움을 주고자 했다. 단순하게 공연장이나 광장으로 관중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거리의 사람들을 공연의 관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원래는 관객이 아닌 보행자를 공연에 참여시킴으로서 거리예술의 특징 중 하나인 무료공연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하나의 사례로 최초의 이런 시도를 감행한 떼아트르 드 뤼니떼(theatre de l'unite)극단은 공공의 질서를 깨뜨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구조는 아니지만 이 때부터 실내극과 거리극의 상호 적대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또 다른 중요한 극단은 미국 뉴욕의 리빙 씨어터(Living theater)극단으로 낭시(Nancy)와 아비뇽에서 공연하여 많은 충격을 주었다. 또한 이태리의 로마, 열린 도시(Rome, ville ouverte)행사 같은 축제를 통해서 거리극이 많이 알려지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당시 주로 좌파를 중심으로 한민주화의 열망을 기반으로 연극이 사회변화의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겨났고, 이런 생각은 사회의 금기적인 가치, 성, 정치, 종교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제기해왔다.

또 다른 현상중의 하나는 공간에 대한 개념으로 시민들이 대중공간을 다시 소유하여 도시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대표적 사례를 몇 가지 들자면, 한국에서도 공연한 일로토피(ilotopie)극단의 PLM(Palais a Loyer Modere)이란 공연이다. 프랑스에 HLM(Habitat a Loyer Modere)이란 영세민 임대주택 제도가 있는데 이 공간에 배우들이 들어가서 붉은 카펫을 깔고 주민들에게 아침식사를 대접하며 마치 고급호텔에 와있는 듯한 공연을 펼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보행자를 관객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례는 르 퓬(Le Phun)이란 극단이다. 극단의 배우들은 밤새 도심의 한 공간에 흙을 나르고 야채를 심어 시골풍경으로 변화시키고, 다음날 배우들은 밭일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세 번째 사례는 최근에 창작된 공연으로 데꼬 쏘노르(Decor Sonore)라는 극단이 소리를 연구하여 도심의 건축물, 구조물을 활용하여 소리를 만들어 낸다. 즉 시각적인 건축물과 구조물을 청각적으로 접근하여 보는 건축물이 아닌 듣는 건축물을 통해 도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지난 30년 동안 거리극 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문가와 아마추어에 대한 구분, 창작과 배급(action culturelle)등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5년 오리악(Aurillac)축제, 2006년 샬롱(Chalon)축제가 각각 20주년을 맞이하는 등 지난 20년 동안 일년에 며칠간 작품들이 집결하면서 축제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여 많은 흥미로운 사실을 만들었지만 반대로 일년 중 단 몇 일간의 일시적인 효과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축제라는 공간에서 더 이상 사람들이 우연히 공연을 접하기가 어렵고, 다른 지역의 관광객이나 매니아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축제를 방문한다. 보행자를 관객으로 바꾸는 활력을 볼 수 없으며 공연장을 찾지 않는 대중들을 공연에 초대할 수 없다. 하지만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축제의 일차적인 목적이 뒤바뀌기도 한다. 또한 과장되어 말하면 축제가 도시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 마치 홍보수단이 되기도 한다.

세 번째 범주는 15년 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일시적으로 활력을 주는 자(animateur) 혹은 더 비판적으로는 오락거리 제공자(amuseur)라는 개념이다. 거리예술의 미학을 다룬 DVD에서 볼 수 있듯이 장터축제의 성향을 가진 작품들, 감각적이고 볼거리위주의, 축제성격에 맞는 공연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즉 축제의 분위기를 내기 위한 공연들이 만들어 지고, 축제를 지원하는 지자체에 의해 도시에 맞는 조금은 상업적인 맞춤형 공연들이 제작되는데 이는 본래의 거리극에서는 지양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카니발 같은 형식과 상업적인 목적이 들어간 장터극적인 형식으로 이는 초기 거리극이 지향하던 예술적인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축제의 흥을 돋우는 공연, 불꽃놀이와 같은 오락적인 요소가 많은 즐기기 위한 대중친화적인 성격이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 거리예술은 위에 제기한 예술적인 참여형식, 전복과 선동을 꾀하면서 관중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형식, 관중들의 요구에 맞춘 형식, 이 3가지 성격이 혼합된 형식이다. 이런 성격은 다분히 서로 모순된다. 거리예술은 이런 모순들을 혼합하고 다양한 창작의 풍성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재정을 지원하는데 문제가 있다. 프로그래머들은 대중의 취향을 따라 공연을 편성할 것인지 아니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재정지원자들도 어떤 선택이 사람들을 혹은 유권자들을 즐겁게 할 것인지 판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즉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딜레마는 점점 더 대중취향의 쉬운 공연과, 이와 반대로 소수를 위한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공연의 두 극단(極端)이 대립하게 된다는 점이다.

*김영호씨는 현재 (재)서울문화재단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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