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국보, 보물 문화재 연이어 지정!!

person 문경시청
schedule 송고 : 2010-01-04 10:50
국 보 승 격 문화재 :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 (국보 315호)
보물지정예고 문화재 :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문경 김용사 영산회괘불도

문경에 국보 1점과 보물 2점이 한꺼번에 연이어 지정과 지정예고가 각각 되었다. 지난 11월 4일 국보로 승격예고 되었던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가 한달간의 예고기간을 거쳐 2010년 1월 4일자로 국보 315호로 지정된다. 또한 2007년부터 추진한 경북지역 258개 사찰소장 10,390점의 불교 문화재들에 대한 ‘불교문화재 일제조사’사업의 결과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된 31건 41점에 대해 현지조사를 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12월 30일 보물 지정예고가 결정 되었다.

이 중 우리 문경에는 대승사 극락전에 모셔진 “대승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일괄”, 그리고 현재 도 유형문화재인 “문경 김용사 영산회괘불도”가 함께 보물로 지정예고가 되었다. 지정예고기간은 1개월간 진행되며, 이 후 문화재 위원회를 통해 지정고시 도리 예정이다.

지금까지 문경에는 국보가 1점도 없어 문화재적 가치 위상을 높이지 못했으나 지증대사적조탑비의 국보 승격으로 인해 문경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한 껏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현재 국내에는 고려시대 불상 중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원래는 서산 부석사에 있다가 지금은 일본 쓰시마섬 관음사에 가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1330년)과 1333년 무렵 조성한 것으로 생각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금동대세지보살입상 정도밖에 없어 이번에 지정예고 되는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의 경우 고려시대 불상 연구의 연대나 양식 등을 추정하는 기준작이 될 만한 우수한 가치를 지닌 불상으로 판명되었다.

이외에도 『임하당 신후명 고문서』가 지방문화재인 유형문화재로 지정예고 되었으며, 『문경 김용사 대성암 금당』, 『문경류은하가옥』이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로 지정예고 되었다. 또한 우리지역 최고의 산성인 『고모산성』이 지방문화재인 기념물로 가결 된 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승격 신청된 상태이다.

(참고자료)

□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碑)
  ㅇ 지정현황 : 국보 315호
  ㅇ 소유자(관리자) : 봉암사
  ㅇ 수    량 : 1점
  ㅇ 조성연대 : 고려후기(14세기 초)
  ㅇ 현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보물 제138호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를 국보 제315호로 승격 지정했다. 국보 제315호로 지정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이다.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비의 비문은 신라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것으로 그가 지은 다른 비문들인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郎慧和尙白月?光塔碑, 국보 제8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일찍이 그 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됐다.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 - 쌍봉(雙峰) - 법랑(法朗) - 신행(愼行) - 준범(遵範) - 혜은(慧隱) - 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신라 하대의 불교사, 그중에서도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또한,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와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비문을 쓴 저자 최치원은 여타 전기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의 일생과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육이(六異)〕과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육시(六是)〕으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또한, 이 비문은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우선 신라의 왕토사상(王土思想) 및 사원에 토지를 기진(寄進; 기증)하는 절차를 알려준다. 또한 신라 말 선종 산문의 개창이 지방 유력자의 후원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고 건립의 후원자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으며 사원 운영의 주체인 사직(寺職)의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는 신라 유일의 비라는 점도 의의가 크다. 특히 이 비문에는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제 소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이와 같이 이 비는 1,085년 전에 세워진 고비(古碑)로, 지증대사의 전기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선종사, 서예사, 한문학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갖는 탑비로 평가된다.

□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聞慶 大乘寺 金銅阿彌陀如來坐像 及 腹藏遺物)

  (1)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ㅇ 지정현황 : 비지정
  ㅇ 소유자(관리자) : 대승사
  ㅇ 수    량 : 1구
  ㅇ 규격(㎝) : 높이 87.5, 무릎폭 63
  ㅇ 재    질 : 금동
  ㅇ 조성연대 : 고려후기(14세기 초)
  ㅇ 현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의 과학적 조사(성분분석, X-ray)를 하던 중 불상  두부에서 “大德五年辛丑五月二十日 」宮闕都監錄事別將丁承說印出」”의 묵서가 적힌 기록이 발견되어 연대는 1301년에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 일체보협인다라니(1292년)와 태장경만다라에도 연대가 있었고, 묵서가 적힌 향낭 등도 출토되었다. 이 다라니를 포함한 복장물은 처음 불상을 제작하였을 때에 납입한 것으로 추정되어 이 아미타여래좌상이 14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엑스레이 촬영 결과 정상계주 역시 신체와 같은 동으로 제작되었음이 밝혀져 현재 상태의 정상계주 표현이 원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도 확인된다. 대체로 13세기말 14세기의 고려불상이 원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 불상 계통이 개성지역에서 유행하였던 것에 비해 이 문경의 대승사 불상은 그 이전 시기인 고려중기 불상의 전통을 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리고 이 전통은 역시 14세기로 추정되는 서울 수국사의 아미타불상이나 청양 장곡사의 불상으로 전개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으로 평가된다.

이 불상은 묵서명 다라니를 통해 1301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려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특히 이 시기 유행한 금동불상 중에서 조형적 완성도가 비교적 높고 보존 상태 또한 양호하므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었다.

  (2)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복장유물
  ㅇ 지정현황 : 비지정
  ㅇ 소유자(관리자) : 대승사
  ㅇ 수    량 : 4건 13점
  ㅇ 규격(㎝) : 아래 표 참조
  ㅇ 재    질 : 종이, 천 등
  ㅇ 조성연대 : 고려후기(아래 표 참조)
  ㅇ 현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불좌상 복장유물>

순번

명  칭

수량

연 대

크 기

(세로× 가로㎝)

비 고

1

아미타삼존다라니

阿彌陀三尊陀羅尼

1

충렬왕27년

(1301)

33× 34.5

印本 다라니로서 ‘大德五年(1301)辛丑五月二十日宮闕都監綠事別將丁承說印出’의 墨書가 있음.

2

금강계만다라

金剛界曼茶羅

8

충렬왕18년

(1292)刻 

37.5× 34

印本 다라니. 至元 29年(1292) 僧齋色開板의 간기와‘張?’의 묵서있음

3

아자범자원상태장계만다라

阿字梵字圓相胎藏界曼茶羅

3

 고려후기

33× 35.5

印本다라니로서 ‘同願戒淸’, ‘同願僧鳳’의 施主者묵서
 
있음.    

4

향낭

1

고려후기

길이 7.9

향낭 표면에 묵서가 있음.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복장에서 수습된 다라니 12매는 고려 충렬왕 27년(1301)경에 판각 또는 인출되어 금동아미타불조성시에 불복장에 納入되어진 것으로 ‘大德五年五月二十日 宮闕都監綠事別將 丁承說 印出’의 묵서명은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의 조성연대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아미타불조성에 있어서 필수적인 다라니로서 흩어져있는 불복장 일괄유물을 체계화시키는데 보완이 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므로 불상과 함께 지정하여야 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 문경 김용사 영산회괘불도(聞慶 金龍寺 靈山會掛佛圖)

  ㅇ 지정현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3호
  ㅇ 소유자(관리자) : 김룡사
  ㅇ 수    량 : 1폭
  ㅇ 규격(㎝) : 873.2×660
  ㅇ 재    질 : 삼베에 채색
  ㅇ 조성연대 : 1703년
  ㅇ 현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410번지
 
1703년에 수원(守源)을 비롯한 6명의 화원이 제작한 괘불도로, 오른손을 내리고 서있는 석가모니와 그를 둘러싼 많은 권속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한 모습은 당시 상주, 문경 등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괘불도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많은 인물들을 배치하면서도 불격(佛格)에 따라 크기에 차이를 두어 표현함으로써 권속 간의 위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본존과 멀어질수록 크기를 작게 하여 본존을 더욱 돋보이게끔 하였다. 불, 보살을 제외한 인물은 바림질기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10대 제자와 사천왕, 팔금강은 세밀하고 능숙한 필치가 돋보인다.

이 괘불도는 17세기 경상도 지역의 괘불도 양식을 계승하는 한편, 이후 봉정사 괘불도(1710년), 상주 남장사 괘불도(1788년)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영남지역의 영산회괘불도의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유려하면서도 세련된 필치와 정연한 구도, 적색과 녹색의 안정감이 있는 색감 등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었다. 


· 임하당 신후명 고문서(林下堂 申厚命 古文書)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 신청된 고문서는 17세기 후반의 문신이었던 신후명과 관련된 簡札, 敎旨, 祿牌, 戶口單子, 分財記, 諭書, 敎書, 有旨, 解由文書 등 一括 문서이다. 申厚命(1638~1701)의 본관은 平山이며, 1666년(현종 7)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副正字를 거쳐 호조참판, 충청감사, 경상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신후명과 관련된 이들 고문서 가운데 특히 경기방어사, 평안도병마절도사, 나주목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할 때 국왕이 내린 敎書, 諭書를 비롯하여 簡札, 戶口單子, 分財記 그리고 평안도병마절도사 재직 시 썼던 日記 등은 사료적 가치가 있다. 그리고 고문서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敎旨도 신후명 개인의 宦歷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 더구나 평산신씨 문경 입향 및 그 후손과 관련한 고문서가 이와 같이 잘 보존된 사례가 없으므로 신후명과 관련된 고문서를 一括하여 有形文化財 指定對象으로 선정한다.

· 문경 김용사 대성암 금당
대성암 금당은 한 지붕 아래 예불하는 큰 방에 승방기능과 부엌을 갖추고 주변의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누마루까지 둔 집약적 복합건물이란 점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본채와 요사의 창호구성 등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비록 인근 본사인 김용사에서 이건하기는 했지만 19세기 후반 중창 때 당시 시대적 변화에 따라 나타난 대방 사찰의 조영법을 반영하여 상당 부분을 고쳐 지은 흔치 않은 건물로 19세기 이후의 사찰건축 변천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판단되어 문화재자료로 지정대상 선정하기로 한다.

· 문경 류은하가옥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18세기 후기의 농촌 반가(班家)로 안채와 사랑채가 이자형(二字型)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점, 조선시대 후기의 상류주택 건축수법과 차별화된 가옥형태의 변천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현 거주자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후기 농촌 반가의 주생활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전통 한옥에서 그 치목수법이나 결구수법 등 독특한 건축적 특징은 찾아볼 수 없으나 전통건축의 주생활 변천사의 자료적 의미를 부여하여 문화재자료로 지정대상 선정하기로 한다.   

· 문경 고모산성
문경 고모산성(姑母山城)은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 30-3(임) 일대의 고모산(해발 231m)에 위치하는 둘레 1,300m 규모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내외협축(內外夾築)의 수법으로 석축하였고, 동서남북의 안부(鞍部)에 성문을 만들고 2곳에 곡성(曲城)을, 가장 낮은 서쪽 계곡 중앙에 2개의 배수구를 만들었다. 주변의 신현리 고분군에 대한 2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가 낙동강 상류유역으로 진출하였던 5세기 후반 경에 축성되었으며,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에 있어 소백산맥 이남의 전진기지로서 거점성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모산성(姑母山城)은 점정(占定)위치의 중요성과 역사성을 감안하여 그 유례가 드문 확실한 고대 성곽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 신청하기로 한다.

 >>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碑)

 

 

 

 

 

 

 

 

 

 

 

 

 

 

 

 

 

 

 

 

 

 >>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聞慶 大乘寺 金銅阿彌陀如來坐像 及 腹藏遺物

 

 

 

 

 

 >> 문경 김용사 영산회괘불도(聞慶 金龍寺 靈山會掛佛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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