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속이야기 - 자연에 빌어서 아기를 얻고자 했던 기자의례(祈子儀禮)
1. 기자의례란?
우리 민족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가계를 이어갈 아들을 희구하는 기자속과 기자신앙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없는 부녀자들이 자식, 특히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비는 것을 기자의례라고 하는데 이러한 의례는 지역에 따라 또한 집안에 따라 전국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자의례는 자식 얻기를 기원하는 주체자의 행위에 따라 분류되며, 일반적으로 치성기자, 주술기자, 주물기자 등으로 대별됩니다.
2. 치성기자
먼저 치성기자는 초월적인 존재나 또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자연물에 치성을 드리는 유형으로 기원대상은 산신, 용신, 삼신, 칠성 등의 신(神)과 기암거석, 거목 등의 자연물입니다. 의례방법은 촛불을 켜놓고 정화수를 떠놓고 손을 비비는 비손형식으로 이른 새벽에 은밀히 빕니다. 안동지역에서 치성기자의례가 많이 행해진 곳은 영남산 절골 샘, 서악사, 구안동군청 당나무, 봉황사 기자바위, 와룡 서지리의 자웅석 등이 있습니다. 영남산 절골의 천지 우물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서악사는 불교가 전래된 이후 부처님의 영험으로 아들을 점지 받는다고 믿는 곳입니다. 구안동군청의 당나무는 나무자체에 비는 치성가자 보다는 정월대보름 새벽에 안동부사가 제사를 지내고 나면 그 음식을 남몰래 먼저 먹으면 아들을 점지 받는다고 합니다. 봉황사 기자석은 임동 수곡리 봉황사 절 앞에 있는데 엄마바위와 아빠바위가 있었으나 엄마바위는 과수원 밭에 묻혀 있고, 아빠바위는 길가에 있습니다. 아빠바위는 남근 형태를 갖추고 있고, 엄마바위는 평평한 바위 중앙에 움푹하게 파인 형태입니다. 이곳에서 기자의례는 아빠바위와 엄마바위의 거리가 10보쯤 되었는데 아빠바위에서 약간 움푹하게 파인 엄마바위에 돌을 던져서 합니다. 이 때 돌이 엄마바위에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웅석은 안동에서 와룡 방면으로 가다가 서지리를 지나 고개를 넘어 500m 정도 가면 도로 왼쪽에는 아들바위가 있고 오른쪽에는 치마바위가 있습니다. 아들바위는 자연석에 남근 모양의 돌을 올려놓았고, 치마바위는 커다란 암벽이 넓게 펼쳐져 있어 치마형상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예전에 자식이 없는 어떤 부자(富者)가 치성을 드려서 옥동자를 얻었는데 그 후 많은 아낙들이 여기서 치성을 드렸다고 합니다.
3. 주술기자
주술기자는 특정한 약물이나 음식을 먹는 유형입니다. 아들을 낳은 산모에게 첫국밥을 해주고 그 집에서 준비해 두었던 것을 먹기도 하고, 금줄에 달려있는 고추를 몰래 가져와 달여 먹기도 합니다. 또한 석불의 코를 깎아 갈아 마시기도 하고, 동쪽으로 뻗은 뽕나무 가지의 오디를 먹기도 합니다.
4. 주물기자
주물기자는 특정한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은밀한 장소에 숨겨두는 유형입니다.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베개 속에 두기도 하고, 아들을 많이 낳은 집의 식칼을 훔쳐다가 작은 도끼를 만들어 몸에 지니기도 합니다. 또 아들을 낳은 산모의 피 묻은 고쟁이를 몰래 가져다 입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주술기자와 주물기자는 대체로 은밀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민간에서 널리 행해졌지만 그 광경을 목격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기자의례는 생명을 존중하고 생산력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나 가부장적 권위가 강화되었던 조선시대에 남아선호사상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폐단을 낳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자의례에 담긴 여인들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정성과 절박한 염원, 그리고 생명체에 대하여 지녔던 존엄성 등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중요한 정신적 맥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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