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세미의 궁상일기 - 기생수

person 쑤세미
schedule 송고 : 2007-08-09 11:03
내 안에.......너 있다

만화건 영화건 하드고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피가 난무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이 뭐가 좋아 본단 말인가.

고등학교 문화교실에서 본 <레비아탄 Leviathan>은 아직도 내게 문화적인 충격을 준 영화로 기억된다. 왜 문화교실을 그런 영화로 결정했는지 옆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생물선생에게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레비아탄은 공포/SF/스릴러로 구분되어 있지만 나는 저질/더티/오바이트로 구분할란다. 하여튼 그 영화를 본 이후로 방과 후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먹었던 달라스 햄버거를 한동안 멀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런 내가 빠닥빠닥한 질감의 애장판을 읽으며 잔인한 장면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은 만화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기생수 寄生獸>다.


고교생 신이치의 오른손에 기생수가 살게 된다. 기생수는 자신들의 생존본능을 위해 인간을 죽인다. 보통은 인간의 뇌를 점령하여 그 종을 말살하지만 신이치의 기생수인 ‘오른쪽이’는 오른손에 기생하여 신이치와 공존하게 된다. 한 육체 속에 두 개의 종이 살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죽이지 못하고 공존하며 오히려 서로를 닮아가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기까지 한다. 신이치는 인간을 해하는 기생수들을 죽이게 되지만, 기생수의 입장에서는 인간 또한 자신들 종족의 생존을 위해 다른 종을 해하는 종에 불과하다.


유약한 주인공이 강인한 인물로 변모했을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신이치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부터 급격히 변해간다. <터미네이터2>에서 지구의 미래와 아들을 위해 용사로 거듭난 엄마와, 문제아에서 지구의 미래를 책임지는 임무를 맡게 된 소년처럼,  자신의 신분과 형들의 암투를 알게 된 주몽이 ‘각성’하게 되는 것처럼 낯선 환경에 던져진 인간은 처음엔 벗어나려 몸부림치다 결국엔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그건 신화 속 주인공이 영웅으로 변하는 과정과 비슷해서 만화와 영화의 초반부 주인공 모습은 마지막 장면에서 어느덧 강인한 모습으로 변해있음을 알게 된다. 방학이 지나 깊어진 눈매와 날쌘 몸놀림을 가지게 된 신이치는 자신의 외적 변화와 내적 변화에 서서히 적응해나간다. 평범한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변모하게 되는 모습의 절정판을 보여주는 <기생수>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전개를 통해 진짜 공포/SF/스릴러를 보여주는 만화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존재를 고뇌하는 안드로이드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물음을 던지는 기생수. 세상을 살아가고자 세상을 파괴하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만화. 이 여름, 변덕인 날씨에 휴가도 못가고 열대야로 괴로워하시는 분들께 기생수를 권한다.(이렇게 말하니 무슨 음료 권하는 것 같다.) 8권을 쌓아놓고 보면 아마도 밤을 꼬박 새지 싶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고, <주온>의 감독 시미즈 다카시도 영화로 만들고 있다고 하니 그리 오래지 않아 극장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난 영화로는 절대 안 볼거다.


기생수/ 8권 애장판 완결/ 이와아키 히토시/ 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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