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차수차송고거(車去車來車復來 노을고개님의 댓글)

person 김종규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9-09-10 10:45

破車受車送古車, 가로수를 들이 받아 폐차를 시켰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낡은 차를 한 대 주었다. 나는 답례로 오래 끌던 자전거 한 대를 보냈다. 그가 얼마 전에 자전거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마침 내게 자전거가 두 대 있어서 그에게 한 대 준 것이었다. 말로 받고 되로 갚은 셈이다. 우격다짐으로 한시 형식을 빌려 쓰고 해석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한시의 형식과 내용, 문법과는 상관없는 희문(戱文)이다. 이 글은 나에게 중고차를 준 전 차주인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을 차운해서 쓴다. 조금만 인용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타던 차는 13년이 넘어가면서 여러 곳에 문제가 있어 남에게 팔기는 좀 뭣하고 14만 킬로미터도 달리지 않은 차를 폐차하자니 그것도 주저되었다. 마침 차를 잃고 뚜벅이로 지내던 지인이 내가 타던 차를 받을 생각이 있다기에 그 지인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 지인은 자전거가 두 대 있다고 그 중 한 대를 내게 줘서 나도 다시 자전거를 가지게 되었다. 13년이 지난 차를 주고 5년 정도 되어보이는 자전거를 얻었으니 나로서는 꽤 괜찮은 물물교환이었다.
위의 제목은 ‘거거차래거부래’로 읽어야 한다. 해석하면 ‘자전거는 가고 새 차가 왔는데 자전거도 다시 왔다.’ 정도가 되겠다.
- 사노라면. 「車去車來車復來」. (http://blog.daum.net/cordblood 부분)

지난 5월 2일 부처님 오신 날에 차를 한 대 해먹었다. 졸음(거의 숙면의 경지)운전을 하다 안전표지판과 가로수를 들이받아 폐차를 시켰다. 용하게도 내 몸은 폐차 직전에서 구제를 받았다. 구사일생, 절처봉생, 백척간두퇴일보였다. 까딱하면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울 곳으로 진일보할 뻔 했다. 부처님이 보우하사. 안동병원에 가서 가슴 사진을 찍어봤더니 골절은 없고 타박상이 심하다고 했다. 가슴은 깁스도 어려우니 별로 해 줄게 없다고 한다. 입원을 하든지 통원을 하든지 알아서 하라는 투였다. 약을 처방해 주겠다는데 손을 젓고는 돌아 나왔다.

내 차는 액스트렉(X-TREK)흰색, 수동, 2003년식, 당시 찻값 1700만 원 정도, 우여곡절(차마 말할 수 없는)끝에 사게 된 것이다. 600만 원 정도 선 지불하고 2년 무이자로 탔다. 그 후 3년을 꼬박꼬박 한 달에 38만원씩 개미허리 졸라가며 완불했다. 허리 좀 펴려나 싶었는데 1년도 못되어서 끝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한 2000만 원 해먹은 꼴이었다.   

차를 잃고 11번 뚜벅이로 견디고 있는데 지인(안동병원 의사)이 신차를 구입한다고 한다. 10년 넘은 차를 보상해 주는 기회가 있다고 오래 끌던 시에로(ciero. 하늘)를 내게 보내겠다는 것이다. 나는 두 말 않고 넙죽 챙길 의사를 표현했다. 대한민국 의사가 타던 차가 아닌가. 의사 정도 품위 유지를 하며 타던 차이니 그만하면 시인 품위도 별 손상을 입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하, 농담이다. 사실 얻어 타는 주제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신차가 나오고 한 달 정도 더 기다렸다. 부인이 오래된 차를 보내기 전에 운전 연수를 한다는 거였다.

사고가 난 지 46일 만인 6월 17일 안동시청에서 만나 이전수속을 마쳤다. 공시가격 30만원이었다. 등록세 1만원 내고 달랑 차가 한 대 생긴 것이다. 시청 주차장에서 차를 건네주며 그는 친절하게도 차의 장단점에 대해서 설명(아래에서 자세히 적겠다)을 해 주었다. 낡은 신차를 보며 그저 감읍할 따름이었다.

이 차의 장점은 단 한 가지다. 1996년 식에 비해 주행거리가 13만 킬로미터를 조금 넘긴 싱싱한 심장을 지녔다.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왕성하게 일을 할 장년 초입에 든 정도랄까. 폐차를 시킨 내 차가 6년 조금 못 되었는데 벌써 그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새 차도 그런 새 차가 없는 것이다. 단점을 일일이 짚어가며 설명해 주었지만 그저 사소한 농담 정도로만 들렸다.

두 달 가까이 차를 몰며 느낀 예의 사소한 단점을 농담처럼 주워섬기자면 이렇다.  

1. 에어컨디셔너: 결론부터 말하자면 1년에 한 번 가스를 주입해야 여름을 난다는 것이다. 정비업체에 진단을 받아 봐도 가스가 어디서 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불편함도 그냥 넘기는 성품의 소유자인 그는 별로 불편을 못 느꼈다고 한다. 그렇지만 손님이 들이닥쳐 안내를 하게 되면 가스를 주입하지 않고서는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지난해에도 잘 견디다가 여름 막판에 손님이 들이닥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넣었다고 한다. 그게 8월 중순 무렵이었는데 거금을 투자한 데 비해 얼마 사용도 못하고 시나브로 가을이 와서 덕을 못 봤다는 요지였다.

나는 그다지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지간하면 그냥 다니는 편이다. 그의 설명대로 역시 에어컨에서 미지근한 바람만 비집고 나왔다. 여차하면 여름을 그냥 날 태세였다. 그러나 차를 넘겨받은 지 열흘도 못 되어 내 각오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6월 27일 부산에서 손님이 들이닥쳤다. 점심을 먹고 병산서원을 가는데 핸들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날씨였다. 헉헉거리며 풍산에 이르렀을 때는 거의 바비큐가 될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읍내 정비공장에 들러 에어컨을 넣었다. 4만원 들었다.

속설에 대우차가 에어컨이 좋다는 말이 있다. 정말이지 조금 전의 차가 아니었다. 얼음바람이 빵빵하게 나와 차내는 삽시간에 냉골로 변했다.

지금까지 에어컨은 쾌적한 여행을 보장하고 있다. 그 후로도 손님을 여러 번 모셨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은 에어컨을 칭찬하기 바빴다. 차의 안과 밖의 겉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듯이 연신 에어컨 송풍구에 손을 갖다 대며 ‘죽인다’를 연발한다. 

2. 운전석 유리 승강개폐 원터치 기능: 버튼 접촉이 불량해서 가끔 작동이 수월하지 않다. 7월 10일 서울과 상해에서 손님이 왔다. 그날은 노무현대통령 49제가 있는 날이었다. 꿀꿀한 기분이었지만 손님맞이는 맞이인 것이다. 길안 묵계에 있는 만휴정으로 안내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정자 앞 폭포가 그럴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날은 무척 더웠다. 창문을 열고 가다가 에어콘을 틀고 창문을 올리려니 작동이 되지 않았다. 정자 아래 차를 세울 때까지도 말을 듣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열어둔 채 올라가야만 했다. 덕분에 짐을 모두 챙겨 가는 수고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진짜, 무척, 더웠다. 그 덕에 만휴정 계곡에 발을 담그고 마신 캔 맥주 맛이 어느 때보다 좋았다.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한 날이었다.

그날, 손님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차 주인이 전해준 차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배를 잡고 넘어갔다. 손님들이 대뜸 그 주인공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날, 전 차주는 불려나와 그들에게 오리지널 버전으로 차의 특성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신차설명회가 아니라 구차설명회였다. 그날 늦게까지 뒤풀이가 이어졌다.

지금도 가끔 작동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자주 씨름을 하다 보니 이젠 요령이 생겨 진땀을 흘리기까지는 않는다. 살살 달래는 것이 중요한 키포인트.

3, 조수석 잠금장치: 대개 운전석 키를 따면 전체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 차의 조수석은 말을 듣지 않는다. 손으로 버튼을 들어 올려도 어지간한 힘으로는 당겨지지도 않는다. 조수석에 한 번 앉은 사람은 꼼짝없이 납치신세가 되는 셈이다. 밖에서 키로 따주지 않으면 탈출하는 길을 단 한 가지, 창문을 열고 넘어가는 수밖에. 이런 특성을 그는 납치용이라고 재미있게 설명했지만 한 가지 추가사항을 나는 발견했다. 바로 귀빈용이다. 손님과 대동할 때는 조수석부터 열어주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자연 귀빈을 모시는 형상이 연출된다. 키를 따고 그냥 물러나기도 그러니까 문을 열어주는 것이 순서다. 문을 열어주기만 하기도 좀 그렇다. 다음 수순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손님이 좌정하기를 기다려 문을 닫아주는 서비스까지 완벽하게 할 수밖에 없다. 고장 덕분에 나는 매너 좋은 기사 소리를 듣는다.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4. 재떨이: 특이하게도 이 차는 재떨이와 담뱃불을 붙이는 초크가 한 지붕 두 가족이다. 뚜껑을 열면 꼭 암수같이 나란히 있다. 하나는 움푹하고 하나는 톡 튀어 나와 있다. 문제는 뚜껑이 잘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와라바시(나무젓가락)를 준비해 두었다가 버튼이 잘 작동이 되지 않을 시에는 떠들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재떨이와 초크, 둘이 잘 어울릴 것 같은 한 가족이지만 요즘은 좀 아닌 것 같다. 초크를 꽂는 곳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과 휴대전화 충전기 전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다용도로 바뀌었지 않은가. 애연가인 나로서는 못마땅한 구석이다. 아무리 담배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냄새나는 재떨이 뚜껑을 열어둔 채 내비나 충전기를 사용하기에는 어딘지 몰상식한 것 같아 찜찜하다. 덕분에 자주 재떨이를 비우는 버릇이 생겼다. 좋은 일이다.

5. 엔진 온도계: 계기판에 있는 것 중 온도계가 고장 났다. 주행 중에 가끔 바늘이 엔진 과열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놀라서 몇 번인가 카센터를 찾아갔지만 엔진의 결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도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니 계기판을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단종이 되어 부품을 찾기 어려우니 정비공장에 주문을 해두라는 안내를 친절하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그냥 타고 있다. 그가 그렇게 오래 타면서도 하지 않은 일을 내가 삽시간에 할 위인으로 봤다면 오산이다. 아마, 폐차 시킬 때까지 온도계는 시도 때도 없이 “엔진 과열” 경보를 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 것이 분명하다.

6. 안전벨트: 운전석 안전벨트가 잘 벗겨진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는 꼭 조수석에 끼우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느새 툭, 하고 빠졌다. 어쩌다 고속도로에 올라갔을 때였다. 그의 당부대로 조수석에 꽂았다. 또 다른 문제는 벨트가 목을 조이는 점이다. 목이 불편해서 벨트를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둘렀지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리콜 대상이어서 수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라고 받을 위인이 아니다. 이 또한 폐차 때까지 그냥 갈 이 차의 사양 중에 하나다.

7. 도어: 5도어이다. 전반적으로 잘 닫히지가 않는다. 세게 닫는다고 완벽하게 걸리는 것도 아니다. 남의 고급차에 탔을 때 이 차의 문을 닫는 식으로 하면 분명 핀잔을 들을 것이다. 뭐 이런 설명으로 나를 주의시켰다.

어쩌다 내 차를 타는 사람들은 고급차 문을 닫는 듯이 살살 밀면 100% 실패. 몇 번 시도하다가는 결국 쾅, 닫고 만다. 좀은 겸연쩍은 표정이 된다. 나도 이 버릇이 이젠 자연스러울 때가 되었다. 그런데 그 실수를 전 차주에게 하고 말았다. 그의 신차 로체(Lotze. 히말라야 봉우리)의 문을 그렇게 닫은 것이다. 그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나의 버릇을 꼬집었다.

 "이 차는 그렇게 세게 닫지 않아도 잘 닫기거든."

이상 전 차주가 전해준 1996년 식 시에로 주의사항을 내 경험에 곁들여 보았다. 차를 얻은 것도 감지덕지한 일이지만 이런 재미를 덤으로 준 그 차에게도 감읍할 따름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시에로를 검색해 보니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추억의 사진을 올려도 되나요?(시에로)’가 뜬다. 들어가 보니 자주색 시에로 사진을 올려 두었다. 추억의 팝송이 흘러나온다. 캡션을 달아 놓았다. ‘ 이 차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한 시에로라는 차입니다. 나올 당시에 잘 안 팔려서 보기 힘든 차네요.’

(이 글을 그의 블로그에 댓글로 올리려고 썼다. 하지만 댓글은 3000자 이상은 안 된다고 경고만 받고 퇴짜 맞았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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