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8월 2일, 엉겁결에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원폭투하지)을 방문하게 되었다. 직장의 CEO를 포함한 네 사람이 1박2일의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다. 금요일 출발해서 토요일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휴가를 내지 않고도 1박을 더 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혼자 남아 1박을 더 하게 되었다. 교토, 오사카 일대는 네 번 정도 갔으니 다른 곳을 택해야 했다. 토요일 오후 일행과 떨어져 일요일 12시 50분에 오사카에서 부산으로 오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히로시마로 갔다. 원래의 계획은 평화공원과 미야지마란 섬을 보는 것이었지만 히로시마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나니 저녁 8시, 저녁을 먹고 나니 9시, 어딘가를 돌아다니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할 수 없이 아침 6시에 일어나 평화공원만 둘러보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오는 짧은 일정이었다. 여행 중에 겪은 일, 생각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원폭
8월 6일은 64년 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인류 최초로 핵무기가 실전에 사용된 날이기도 하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히로시마의 원폭투하가 일본의 패전과 해방으로 이어졌다는 인식하에 원폭투하에 대한 반감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일본의 패전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히로시마에 있던 조선인 10만 명을 포함해 그렇게 많은 민간인을 죽이지 않고도 미국은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지점에 평화공원을 만들어 원자폭탄이 떨어진 사실을 쉬지 않고 되새기고 있다. 올해도 유엔총회 의장이 평화공원에 헌화를 했다고 한다. 평화공원은 내게 항상 양가감정으로 다가온다. 다시는 그런 재앙을 초래해서는 안 되겠다는 공식적 입장에는 공감하면서도,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숨기고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부각시키려는 숨겨진 의도에 대한 반감은 어쩔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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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 유리에서 본, 복구작업 중으로 짐작되는 사진 |
2. 마일리지
일행과 헤어진 직후 일요일 한국으로 돌아올 항공편을 알아보니 대한항공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있었다. 표를 예약하려고 하니 돈이 75만원 정도가 된다. 습도가 높아 원래 땀이 나고 있었는데 비행기 요금 소리를 듣고 갑자기 온 몸에서 땀이 쏟아진다. 75만원이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는, 왕복 항공료, 호텔, 관광비용이 포함된 패키지여행 경비에 해당한다. 그 일본인 직원이 일본에서 끊으면 원래 비싸다고 하길래 한국에서 예약하면 얼마냐고 물으니 왕복 55만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편도라고 더 싼 것도 아니란다. 이 비행기를 타지 않으려면 인천이나 김포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그러면 일요일 저녁에 잡혀있는 식사 약속을 지킬 수가 없다. 방법은 후쿠오카로 가서 부산행 배를 타는 것인데 그런 일정이라면 기차를 타는 일 외에 일본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 하루 더 남은 것은 아니다. 눈 질끈 감고 그 표를 예약했다. 표를 예약하고 히로시마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려는데 갑자기 마일리지 생각이 났다. 전번 직장에서 외국 출장을 몇 차례 가고, 가족 여행도 몇 번 가면서 마일리지가 제법 쌓여있었다. 할인이라도 될지 모른다. 다시 공항으로 헐레벌떡 쫓아가서 창구에 물어보니 마일리지로 무료로 끊을 수 있고 세금만 내면 된단다. Olleh!
3. 신칸센
도쿄에서 히로시마까지는 신칸센이 연결되어 있다. 일단 신칸센을 타보기로 했다. 신오사카역까지 하루카를 타고 나가서 신칸센으로 갈아타야 한다. JR 패스를 끊어서 타면 더 싸게 먹힐지도 모르지만 비행기표 끊는데 시간을 많이 썼으므로 그럴 시간도 없고, 하루 여행에 뭐 더 싸겠냐하는 생각도 들어 바로 표를 끊었다. 으악! 요금이 12만원이 넘는다. 간사이 공항에서 탄 하루카 요금까지 합하면 편도에 15만원이다. 기어이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패스를 끊었으면 얼마나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비싸다. 그리고 가장 빠른 노조미로 1시간 40분을 가야한다니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구 거리는 되는 모양이다. 일본이 혼슈만 해도 엄청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신칸센 노선을 보면 거의 혼슈 남쪽에 치우쳐 있다. 일본도 지역 편차가 제법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농촌 마을을 가려면 다른 섬이나 혼슈 중에서는 서북쪽의 지방들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신칸센을 달리는 열차의 이름은 등급에 따라 노조미(望)와 히카리(光) 그리고 고다마란 차종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노조미와 히카리 두 종류의 열차 이름은 과거 부산에서 봉천까지 가던 열차의 이름들이란다. 쩝. 좋게 생각하면 대륙과 연결시키고 싶은 일본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현해탄을 넘어 대륙 철도와 연결시키고 싶기도 하겠지.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일본이 아직 식민지를 경영하던 시절의 향수를 가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열차 이름이 우리에겐 찜찜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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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 역에서 대기중인 신칸센 열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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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공원의 위령탑 |
나가다보니 한쪽 구석에 큰 비석 하나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효상 각하 휘호'라는 큰 글씨가 보인다.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다. 이 위령비를 만들 때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효상씨가 글씨를 쓴 모양이다. 속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피해자들이 이곳에 끌려와 죽음에 이르게 된 사연이나 그들의 이름을 써도 비석 하나로는 모자랄 텐데 한 면을 통째로 휘호를 쓴 사람을 알리는 데 할애를 했다. 다른 나라 사람이 보면 한국을 비웃을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 휘호의 주인공은 모교 동창회장이었다. 어느 행사에 축사를 하러 왔는데 축사 내용 몇 가지가 기억난다. 자신이 당시 공화당 당의장 서리였던 박준규씨에게 전화를 해서 모교 체육관 예산을 배정하도록 했다는 이야기, 모교 출신 국회의원 수가 상당히 많아서 같은 고등학교 출신 국회의원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영국의 이튼보다 더 많다고, 그래서 모교가 세계 최고의 명문이라고 했던 이야기 들이다. 물론 당시 국회의원 1/3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뽑는 유정회 국회의원이란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외국에서 본 동문 선배의 이름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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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위령탑, 무슨 의미의 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북이 위의 천은 없는 것만 못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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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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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혹 전후의 건물 모습 |
7.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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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와 병원 현관에 있는 김태균 선생의 글씨로 만든 병풍(해독 사능한 분 해석 부탁합니다.) |

도착하는 날 접대 받은 음식 중 한 가지. 묶여있는 연잎을 풀어보니 이런 모양이 나왔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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