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person 김종규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9-07-30 10:59

책의 이력에서 보듯이 2006년에 30주년 기념판이 나왔으니 1997년에 처음 출판된 책이다. 현대의 생명과학계에서는 3년 전의 지식은 벌써 낡은 지식이다. 이런 생명과학계에서 30년도 넘은 책이 아직 팔린다면 대단한 일이다. 국내에서도 1993년에 초판 1쇄가 나온 후 개정판을 포함해 많은 인쇄 기록을 남기고 2006년 11월에 30주년 기념판을 찍었고, 2008년 11월에 14쇄로 이 책이 인쇄되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정도는 아니라도 대단한 역작임에는 틀림이 없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전담하는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직접 밝혔듯이 다윈주의자이다. 최근 ‘만들어진 신’이란 책을 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기적 유전자’란 책의 제목에서 저자 도킨스의 의도가 느껴진다. 의식이 있는 존재만이 이기적이 될 수 있으므로 저자는 유전자를 수동적 존재가 아닌 행위의 주체로 설정하려는 의도를 제목에서 내비친 것이다. 책의 전체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생명체의 본질은 자기 복제를 지속시키고 확대하고자 하는 ‘자기복제자’ 즉 유전자이고 생명체로서의 각 개체는 이 유전자를 전달하는 ‘전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을 배울 때 유전자의 중요성을 배우긴 하지만 유전자는 개체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자는 아마도 이런 개념이 유전자를 뒤늦게 발견한 인류가 범하는 ‘오류’로 인식하는 듯하다. 실제 저자는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이다. 만약 우주의 다른 곳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당신들은 진화를 발견했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라는 표현을 하였는데 이 표현 속에는 진화에 대한 제대로 된 발견이란 유전자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여기에서 잠시 유전자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야 한다. 유전자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DNA(일부 바이러스는 RNA를 가진 경우도 있다)라는 거대한 분자의 일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DNA는 뉴클레오티드라는 작은 단위가 연결된 고분자이다. 뉴클레오티드는 끝에 어떤 염기가 붙어있느냐에 따라 네 종류로 구성된다.

네 종류의 염기는 아네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이다. DNA 안에서 이 네 종류의 뉴클레오티드는 서로 섞여 배열되어 있는데 세 개의 뉴클레오티드의 배열은 한 개의 아미노산을 불러오도록 설계된 설계도이다. 각 뉴클레오티드에는 상응하는 RNA 뉴클레오티드가 붙는데 아데닌(A)에는 티민 대신 우라실(U), 티민(T)에는 아데닌(A), 구아닌(G)에는 시토신(C), 시토신(C)에는 구아닌(G)이 붙는다. 이 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현장 도면이 되어 단백질을 만든다. 가령 AUG 세 개로 된 뉴클레오티드는 메티오닌이란 아미노산을 불러서 단백질 합성을 시작하고, UCC 세 개로 된 뉴클레오티는 세린이란 아미노산을 불러온다는 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UAA(혹은 UAG나 UGA) 같은 세 개의 뉴클레오티드가 있으면 단백질 합성을 중단하라는 신호가 된다.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뉴클레오티드에서 단백질 합성을 마무리하는 뉴클레오티드까지 일련의 RNA를 붙도록 하는 DNA 부분이 유전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몸을 구성하는 성분이 되기도 하고 효소가 되어서 몸의 화학반응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런 유전자의 원리를 이해하면 도킨스가 생명체로서의 각 개체는 유전자의 설계도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으로 보는 시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유전자에 기록된 설계  대로 생명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각 개체가 유전자의 유지와 확대재생산을 위해 종사하는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불쾌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 있겠다. 또 많은 생명체가 자신이 아닌 다른 개체를 위해 종사하는 이타적인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인간의 의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타적인 행위로 대표적인 어미가 새끼를 위해 행하는 행위는 도킨스의 이론으로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새끼에게는 자신의 유전자의 1/2이 전달되어 있으므로 새끼가 살아남아 번성하는 것이 어미의 유전자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역시 자신의 유전자와 1/2이 동일한 형제에게도 이런 이타적 행위가 설명될 수 있다. 친족 관계가 멀어지면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질 확률은 떨어지지만 이타적 행위의 정도를 그 정도로 약화시키면 된다. 생명체의 행위는 비록 이타적으로 보일지라도 자신이 가진 유전자(도킨스의 이론대로라면 자신을 통제하는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가 확대재생산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수컷이 일찍 암컷과 새끼를 두고 떠나는 것은 자신이 떠나도 새끼가 살아남을 확률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암컷과 새끼를 떠나 다른 암컷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 확대에 유익하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암컷이 새끼를 같이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컷을 찾는 행위도 결국은 유전자의 확대재생산에 유리한 방량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도킨스는 일견 이타적 행위로 보이는 것도 이기적 행위일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사자를 발견한 영양이 높이 뛰어 위험을 알리는 행위는 자신을 사자에게 노출시키고 다른 영양들이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이타적 행위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병들거나 약한 영양을 노리는 사자에게 자신이 높이 뛸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서 잡기가 힘드니 다른 영양을 찾아보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 꿀벌이 침입자에게 침을 쏘므로 해서 자신이 죽는 이타적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도킨스는 꿀벌의 경우 생식 자체가 분화되어 있어 여왕벌만이 유전자를 확대재생산 할 수 있고 일벌은 생식능력이 없으므로 그 개체가 희생하더라도 유전자의 전달에는 손해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도킨스는 인간의 문화에 관해서 유전자(gene)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문화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로 밈(meme)이란 개념을 제시하는데 밈(meme)은 모방이라는 방식을 통해 뇌에서 뇌로 자기 복제를 하면서 번식한다고 설명한다. 가령 ‘하회탈춤’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소통을 통해 뇌에서 뇌로 복제된다. 유전자(gene)와 밈(meme)의 여러 차이 중 한 가지는 복제 중에 오류가 생길 확률이 gene에 비해 meme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인간의 유전적 변화의 진행보다 문화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도킨스는 밈(meme)과의 직접 연관성은 확인하기 힘들지만 선견능력이라는 인간의 독자적 특성에 주목한다. 이런 선견 능력으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할 힘을 갖추게 되었다고 본다. 이기적 유전자의 방향이 전체 인류의 파멸로 이어질 때 선견 능력을 통해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우려되는 바는 비록 도킨스가 밈(meme)이론으로 인간의 선견능력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유전자 결정론’이라 할 만한 입장에 서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선견 능력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결정론’적 입장은 인종 차별이나 계급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긴 하지만 유전자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이 거의 없는 점이 걸린다. 만일 인간의 내면적, 외면적 모든 장점을 갖춘 유전자를 가진 단일 남녀의 후손만이 존재한다면 일견 좋아보일지는 몰라도 특정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 있어 이는 인류의 멸절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바바나는 단일 품종이라고 한다. 이는 어떤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 발생하면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바나나가 멸종하게 된다는 의미다. 유전자의 다양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어떤 종의 지속을 위해 중요하다.

금세기에 들어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의해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다. 초기에 이 지도가 완성되면 모든 인간의 질병이 정복될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같은 유전자가 어떨 때는 작동하고 어떨 때는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적혈구를 제외한 내 몸의 모든 세포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지만 어떤 세포는 피부 세포로 기능하고 어떤 세포는 위장에서 염산을 분비하고 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다른 기능을 하게 되는지는 아직도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미개척 분야이다. 유전자가 생명체의 설계도임에는 틀림이 없고 그 설계도의 모습은 이해하지만 이 설계도에 따라 시공 도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유전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책의 마지막 장은 유전자가 자신의 개체를 넘어 다른 개체 혹은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유전자의 긴 팔’이라는 장이 나온다. 이는 이 책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후속 저서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비버가 댐을 만드는 것은 유전자의 표현에 따른 행위일 것이다. 비버의 유전자는 비버를 통해 몇 백 미터나 뻗어나 영향을 미친다. 도킨스는 많은 동물들의 예를 들며 확장된 표현형을 설명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인류의 문명이란 것도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일 수 있겠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유전자(gene)의 확장된 표현형일까 밈(meme)의 발현으로 인한 행위일까?

저자 :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역자 : 홍영남
출판 : (주)을유문화사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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