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붉은 집(시집)
지난주 출근을 하니 책상 위에 시집 한 권이 놓여져 있었다. ‘능소화 붉은 집’이라는 제목에 ‘권세홍시집’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표지를 넘기니 ‘아, 벌써 나왔네.’ 어떤 제목으로 나올지는 몰랐지만 이 시집이 곧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표지를 넘기니 ‘OOO兄께’라고 저자의 증정 표시가 되어있었다. 책을 증정할 땐 후배에게도 형이라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표제시를 보자.
능소화 붉은 집
낯선 골목에서 만난
한 때 살았던 것 같은 그 집
원이엄마 편지 행간을 물들인
능소화 붉은 꽃그늘처럼
서까래나 아자문살에
경어체 옛말이 묻어나는 집
반쯤 열어둔 대문으로
바람이 들락거려도 짖지 않는
늙은 개가 사는 집
주인이 집 비운 사이
노을이 회벽에 마음껏 덧칠해도
능소화처럼 잠시 붉어지기만 하는
그 집
시인은 이 시에서 ‘능소화 붉은 집’은 안동사람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농암종택이 지금처럼 제자리를 잡기 전, 긍구당과 안채만이 지금의 자리에 있을 때의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얻은 시를 고쳐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경어체 옛말이 묻어나는 집’, ‘반쯤 열어둔 대문으로 바람이 들락거려도 짖지 않는 개’, ‘주인이 집 비운 사이 회벽에 마음껏 덧칠해도 능소화처럼 잠시 붉어지기만 하는 그 집’이란 표현들에서 안동사람다운 안동사람의 이미지가 다가온다.
친구에게조차 완전한 반말보다는 살짝 높여주는 듯한 말투, 마음의 문을 닫지 않으면서도 노골적으로 마음을 내어놓지 않는 심성, 그래서 개조차 주인을 닮아 함부로 짖지 않고, 집을 비운 사이 노을이 회벽에 마음껏 덧칠해도 잠시 붉어지기만 하는 여유는 시인이 본 안동사람다운 안동사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시인 자신이 추구하는 심성이기도 할 것 같다. 능소화가 양반가에서만 심을 수 있었던 양반의 꽃이라고 하니 안동 양반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양반이란 말이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일컫는 의미로도 쓰이기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능소화를 시어로 채택한 이유일 것 같기도 하다.
짖지 않는 개는 농암종택의 ‘진돌이’를 생각나게 만든다. 가송리 농암종택에 가면 대문에 “진돌이는 순한 개이니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진돌이는 제법 덩치가 큰 진돗개다. 이런 진돌이가 나타나면 관광객들이 놀라거나 긴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종손이 이런 안내문을 붙여둔 것이다. 어쩌면 관광객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놀란 행동을 보여 진돌이가 더 놀랄까봐 걱정되어 붙여놓은 안내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이 안내문을 볼 때쯤이면 진돌이가 슬그머니 나타나 관광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같이 간다. 시인은 이 농암종택의 종손과 절친한 사이다. 이 표현은 그 집 진돌이에서 소재를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 권세홍은 현재 안동병원 영상의학과에 근무하는 의사다. 그러면서도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시를 써왔고, 1989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도 했다. 꾸준히 시를 써왔지만 어쩌다보니 기회를 놓치고 아직 시집을 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올초 모친상을 당한 후부터 그를 아끼는 지인들이 시집을 내라는 권유를 많이 했다고 한다. 사양하는 그에게 지인들은 “시집을 내지 않으면 시들이 흩어진다. 시들에게도 머물 집을 마련해줘야 한다.”라고 강권을 했고,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시집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시집에는 20여 년 전 안동에 온 후 쓴 시 50여 편을 모았다.
이제 시인을 선배로 부르기로 한다. 내게는 시인으로보다는 선배로 각인되어 있다. 이 선배가 시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시집이 나오기 전에 나는 이 선배의 시를 대한 적이 없다. 선배와의 첫 만남은 몇 년 전 개업을 하고 있던 선배가 개업을 접고 안동병원에 다시 들어오게 되면서다. 인사차 병원을 돌던 선배는 나를 발견하고는 “어이, 김선생, 나 다시 여기서 근무하기로 했네. 김선생 글은 잘 읽고 있어.” 하고 인사를 건넸다. 이 만남 전에 나는 이 선배를 만난 일이 없다.
다만 몇 차례 원고를 낸 ‘향토 문화의 사랑방’ 편집위원장으로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첫 만남을 이렇게 시원스레 장식한 것이다. 상당히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그 후 몇 차례 만남을 통해 선배의 성격이 호방하다는 생각을 굳혀갔다. 어느 술자리에서는 기독교 장로인 이 선배와 동석한 스님과의 말장난으로 배꼽을 잡은 일도 있다. 그런데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이 선배의 섬세한 성격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시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도 조금씩 눈치를 채게 되었다. 호방함과 섬세함을 모두 갖추었다는 나의 표현 대신, 선배를 잘 아는 시인들은 사물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균형 감각의 소유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다.
소리 한 상
부정기 배편처럼 돌아와 지침 몸을 매던 어머니 곁, 그 곁이 사라진 빈 집의 잠은 차라리 하룻밤 체벌이다 징징 보채는 냉장고, 우두둑 장롱과 식탁이 번갈아 늙은 관절 꺾는 소리, 주인의 무게를 기억하며 마룻장은 곰삭은 울음 밤새 삐걱거린다 생전에 기르시던 소리들 하룻밤 代哭하고 있다
자박자박 자르르
희붐하니 얕은 새벽잠 흔드는 소리,
몽돌밭에 물드는가, 아니
어머니 쌀 씻으신다
맏상주 허한 속 채워주시려
생전처럼 정성스레 아침 한 상,
소리로 차려 주시나보다
여러 가지 소재로 쓴 시들이지만 나는 늘 사람을 소재로 한 시에 관심이 간다. 선배는 올 초 어머니를 잃었다. 이 시집을 낼 생각을 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라고 한다. 위의 시는 아마도 어머니 상을 당한 후에 쓴 시로 생각된다. 어머니 떠난 집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어머니와 연결된다. 그 소리들마저 어머니의 돌아가심을 슬퍼하고 있다고 느끼는 선배는 천상 시인이다. 소음이 그림이 되고 시가 되었다. 밥을 짓던 어머니의 쌀 씻는 소리가 그립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꿈에서도 가을해는
가을이 몽당 빗자루만큼 남았든지 꿈에서도 귀뚜리 비브라토로 울었다 이쪽 방엔 술자리 노래 추렴 이어지는데 누군가 차례 되어 바위고개 언덕 혼자 넘다가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박자 음정 엇갈려 안타까운데 문득 미닫이 저쪽 청아한 소리 허덕이는 고갯길 잡아주었다 마흔 아홉 고갤 쉬엄쉬엄 넘는 임병호 시인이었다 미닫이 너머 가을빛 이내 스러졌다
2003년 세상을 떠난 안동의 임병호 시인을 만난 이야기로 생각된다. 김용락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가끔 신발을 신고 다녔고 많은 시간 맨발로 다녔다 그는 가끔씩 맨정신이었고 많은 시간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酩酊(명정, 술이 취해 인사불성이 된 상태)이란 시를 스스로 대표작으로 생각하던 시인은 현대사의 비극과도 관련이 있다. 언제 이루어진 만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흔 아홉 고개가 나이를 의미한다면 2003년 5월 1일에 돌아가신 분이니 1995년쯤의 만남인지도 모르겠다. 소리 허덕이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창단 단원이면서 음악성 뛰어나기로 유명한 선배 자신이라면 상당한 반어법이다.
늙은 아버지를 변호함
밤마다 처녀를 꾀어내던
바람둥이 가설극장처럼
월요일 밤 열 시 TV 앞에
노인들 불러앉히는 가요무대
뉘엿한 조명 아래 눅눅한 무대
구부정 야윈 그림자가 하나 둘
노인들의 망가진 달팽이관을 밟아
먼지 덮인 기억의 회로로 내려갈 즈음
아래 위층 인터폰이 울려댄다
이 청승과 촌티의 소음 어쩐 일이냐고,
이 세상에 이민 왔다 곧 돌아갈 목숨들
같이 늙어가는 노래와 더불어
주 일회 목청 한번 돋우기로서니
열린 음악회 보시다가 아버지 촌평하신다
- 저 사람 조만간 가요무대 서겠는데
- 노래는 잘 하는데 경륜이 좀…
아들이 옆에서 거든다
선배는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요즘 안동에 홀아버지를 모시고와서 같이 지낸다. 이 시가 언제 이야기를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최근의 이야기일 것같은 생각이 든다. 열린 음악회를 같이 시청하며 의견을 나누는 부자의 모습이 정겹다. 선배 부친의 젊은 시절을 조금 들어서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젊은 시절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내겐 이런 기억이 없어 이 시가 눈에 들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괘종시계를 추억함
1
댕댕
시간이 늪처럼 흐르지 않던 시절
우리 청춘의 저음부를 울리던
그 늙은 괘종소리
댕댕댕
대청을 밟아 섬돌을 내려
골목 어귀까지 따라오던
느린 이명의 소리
2
한때 시간의 성에는
목관 속에 노인 한 분 계셨지
해종일 두 팔 돌리면서
밥 달라고 칭얼대던 그 치매노인
언제부터 그 노인 보이지 않고
시간은 손자에게 맡겨졌다
이제 밥을 주지 않아도 가는 시간
자주 태엽을 감아주어야 돌아가던 괘종시계가 집집마다 달려있던 시절이 있었다. 정말 그때는 시간이 느리게 갔다. 괘종시계가 없어지면서 시간이 제멋대로 가는 모양이다. '해종일 두 팔 돌리면서 밥 달라고 칭얼대던 목관 속의 치매노인'이란 표현에 자꾸 눈길이 간다. 밥 드시다 가셨고 이제 밥 드실 일 없는 내 아버지.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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