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정치학
아시안컵 축구경기에서 우리는 3위를 했다. 이라크에게 지고 일본에 이겼다. 이라크는 전쟁으로 황폐한 나라다. 일본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숙적이다. 나는 경기를 보면서 이라크에게 제발 지기를 바랐다. 전쟁은 그 당사자들에게 최악의 상황이다. 민중들은 고통에 시달리며 죽기보다 더 못한 상황을 견디어 가야한다. 이라크의 승리는 잠시나마 이라크 민중들에게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가뭄 속의 단비처럼 얼마나 달겠는가!
일제 치하에서 손기정 옹이 마라톤 우승을 했을 때 우리나라 민중들의 심정이 그러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지든 이기든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과 우리는 원래 그런 관계니까. 일희일비할 수 있으니까.
한 때 독재권력들이 우민화 정책으로 스포츠를 활용했다. 사람들은 근거 없는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자민족이 독재권력으로부터 박해받고 있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그 때의 스포츠는 스포츠맨십을 미덕으로 삼는 스포츠가 아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스포츠란 승부에 관계없이 얼마나 비열한가!
스포츠는 스포츠맨십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기장에서는 붉은 악마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응원하고 경기장을 나오는 순간 ‘아! 오늘은 졌지만 정말 화끈한 경기였어. 다음엔 꼭 이길 거야’ 하면서 삼삼오오 집으로 술자리로 흔쾌하게 갈 수 있는 정신. 그런 정신이야말로 스포츠를 삶의 활력으로 기능하게 할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스포츠는 전쟁과 다름없다. 전쟁은 오로지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스포츠도 그렇다. 스포츠와 전쟁의 변별점은 승부 이후에 있다. 전쟁은 지고나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스포츠는 져도 괜찮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게임이니까.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신자유주의의 한가운데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우리나라 민중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승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한다면 스포츠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여유야말로 우리민족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아시안컵 3~4위전에서 일본에게 이긴 기쁨도 좋다. 전쟁으로 사는 낙을 잃은 이라크에게 진 4강도 좋다. 그것이 스포츠였으면 좋겠다.
* 이 글을 쓴 피재현님은 시인이며 현재 나섬학교 교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영남일보 '문화산책'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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