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소재에 기반한 기하학적 작품을 만드는 작가 신동국
나의 미술의 시작은 아버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6-7세 경 만화를 열심히 보다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어느 날 선친께서 누런 장판지에 연필로 그린 내 그림을 보시고는 칭찬을 해주셨던 계기로 그때부터 틈만 나면 그림 그리기로 일관하였다.
친구들과 뛰노는 것보다는 따뜻한 곳에 홀로 앉아 작은 나무 막대기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생겼다.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교내사생대회에서 상장을 하나 받아 들게 되었다.
그때부터 미술부에 들어서 수업 마치고 방과 후 활동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며 미술실기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기하모형 연필 소묘를 했고, 중학교 2-3학년 때는 조소를 하였으며, 유화를 중 3때부터 그리기 시작했으니 상당히 조숙한 미술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런 연고로 미술을 하는 또래들 내에서는 열등의식을 느껴 본 적이 드물다.
개인전를 거듭하면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은 고교 때의 친구 최병윤이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반에 나를 찾아와서 “네가 신동국이냐?”라면서 잠깐 나의 얼굴을 보고 간 친구였다. 2-3학년 때는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경시대회가 열리면 그 친구는 문예로, 나는 미술로 참가하는 예술을 하는 학생이었다고 할까? 그리고 눈에서 총기가 흐르며 매사에 적극적이어서 우리 학년에서 1등하는 수재였다.
지금은 서울에서 광고 기획 업을 하고 있는데 개인전 때마다 팸플릿을 제작 해주는 것은 물론 전시장에 그림자 같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황송하게도 예술가 친구 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삼는 벗이다.
알고 본 즉 이 친구의 부친께서는 우리가 고 2때 작고하셨으며 프랑스 유학까지 하셨고 불교미술을 하셨던 분이셨다. 그 친구의 나에 대한 배려는 학창시절의 우정 속에 아버님의 미술 혼에 대한 사랑이 간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내 어찌 작업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벗이 내 곁에 있는데……
미술에 종사하는 것을 신성시하고 의무적으로 생각하며 지나온 시간이 너무 좋다. 하지만 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가족과 주위에 고개 숙인다. 예술의 길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현실의 역경을 극복해야 하는 즉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나가야 하는 어려운 길이다.
40대 후반 50을 바라보는 지금부터는 보람의 순간이 올 것이란 막연한 기대 속에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오직 꾸준한 노력으로 일관한다면 어느 순간에 와서는 마냥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바람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1.푸른 바람과 함께 2006-6 박달나무, 18.5X18X51cm
2.푸른 바람과 함께 2006-5 박달나무, 18X14X46cm
3.우주와의 대화 2006-11 느티, 화석나무 53X52X123cm
약 력
- 개인전 7회
- 남이섬 조객전(안데르센홀)
- 한국조각 흐름전(울산, 문화예술회관)
- 중국 곡부시 초대 한중 미술 교류전(중국, 곡부 금용각)
- Art in Korea 기획 초대, 2003 GLOBAL전(서울, 우림아트갤러리)
- 안동대학 교수작품전(김천 문화회관, 안동 시민종합회관 전시실)
- 한국 현대조각 초대전(춘천 MBC 호반광장)
- 시마네현, 경상북도 교류미술전(일본, 구미, 문화예술회관)
- 한국미협 안동지부 회장 역임
- 현_한국미술협회 회원, 경상북도 미술대전 운영위원, 대구시전 심사위원,
경상북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전국 조각가 협회이사, 경북 조각회, 안동 조각회 회원,
안동 성희여고 교사·안동대학교 강사
경북 안동시 송현동 우성@ 101-203 TEL. (054)853-7972 HP. 017-507-1126
*이 기사는 경북미술 제9호에 올렸던 글입니다. 지역 미술인들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한국미술협
회 경상북도지회의 동의를 구하고 중복 게재합니다.
*기사 제목은 편집자가 임의로 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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