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person 김종규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9-06-25 09:20

집의 아이들이 이 책을 사서 읽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이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이 썼다는 사실도 몰랐다. 애들이 또 요상한 책을 읽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디셉션 포인트를 읽으면서 이 책이 댄 브라운의 소설인 것을 알고 내친김에 읽기로 했다.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아들은 자신이 벌써 읽은 책을 내가 뒤늦게 읽는 것이 뿌듯한 모양이다. 재미있는지, 어디까지 읽었는지 몇 차례 관심을 보인다.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를 다녀오면서 버스에서 1권의 2/3 정도를 읽었다. 장거리 버스에서는 잠을 자는 것이 즐거움 중 한 가지인데 버스에서 잠자는 즐거움을 포기하면서까지 읽은 것을 보면 이 책도 읽기를 중단하기 힘들도록 하는 힘이 있다. 한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줄거리에 빠져 정신없이 읽었는데 다 읽은 후에는 이렇다할 감흥이 없는 것이 어김없는 할리우드 영화다. 읽고 있으면 혹시 댄 브라운이 영화를 염두에 두고 책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책을 할리우드가 왜 영화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벌써 영화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면 그렇지. 할리우드가 돈 냄새를 맡고 영화로 만들지 않을 리가 있나?

세 편의 소설을 읽고 나니 댄 브라운의 전개 방식이 대충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는 과학과 옛이야기를 접목시켜 가톨릭과 ‘일루미나티’라는 오래된 지하조직과의 대립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야기는 종교와 과학의 갈등인데 작가가 종교와 과학의 갈등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느낌 대신 단지 소설의 소재로서만 다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댄 브라운이 과학과 역사에 해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에는 과학의 접목에 조금 무리를 한 것 같다. 곳곳에 과학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이론적으로 성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도 재미를 위해 이 정도는 눈감아주자. 소설이잖아. 로마의 건축과 예술에 대한 묘사는 꽤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로마를 간접적으로 여행하게 해주는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이제 두껍고 재미없는 책이 기다리고 있다.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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