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대선과 3040세대
마침 서울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져 24년간 살던 안동 땅을 떠난 지 2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대충 따져보니 안동 땅을 격주 단위로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엔 관심 가는 일이 있어 매주 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술 마실 기회가 와도 애써 피하는데, 안동에만 가면 속이 들끓어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만나는 많은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살아야 할 날이 새털처럼 많은 우리세대인데, 그들의 한탄을 함께 듣다보면 나또한 심한 자괴감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술잔에 빠져 헤매다 서울 행 버스를 타지만 슬프고 답답한 마음을 쉬이 풀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속한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그동안 조사해 온 ‘12ㆍ12, 5ㆍ17, 5ㆍ18사건’과 ‘보안사 민간인사찰사건’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지금의 20대에겐 구체적인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겠지만 40대인 우리들이 20대였던 대학시절, 그 사건을 알게 된 순간부터 고통과 분노를 가누지 못해 통곡했었던 시대의 처절한 아픔이었습니다.
모두가 퇴근한 후 야근하다가 문득,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결국 부모세대가 살아왔고 또 우리세대가 이어 살고 생존해 아랫세대에게 물려줄 이 땅, 이 한반도, 그 아래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역사적인 사명을 띤 구성원이라는 것. 그리고 이 사회의 한 존재로써 지난시기 잘났든 못났든 윗세대가 틀 지어놓은 사회구조 속에서 삶의 개선 방향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혼자 되뇌었습니다.
선(先) 세대가 살아온 60~80년 시기, 무력을 통해 집권한 군부는 산업화와 반공을 앞세우며 개발독재를 휘둘렀습니다. 그리하여 독재와 민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투쟁했던 시대, 소수의 결단이 우선시 되던 시대였습니다. 개발과 소외가 공존했던 그 시절 산업화를 주도한 독재세력에 맞서 민주화세력은 죽음의 언덕을 넘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민주회복을 위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우리도 그 역사의 싸움터를 관통하며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불안정하지만 10년의 민주화정부 시대가 왔습니다.
‘바로세운 10년’을 자랑하지만 그 성적이 신통치 않습니다. 갈수록 살벌해지는 지구촌 경쟁시대 속에서 양극화로 인한 빈부격차의 골짜기는 너무 깊어지고 있고, 생존권을 위협받는 농민과 빈민의 절규가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대했던 함께 사는 세상 21세기는 이렇게 굴절되는 듯 합니다.
그 가운데 ‘잃어버린 10년’ 세월에 분통을 터뜨리며 산업화의 후예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재탈환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자칭 건전보수 세력까지 합세해 성장만이 살길이라고 부르짖으며 추종세력 챙기기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치와 분권의 시대를 맞았지만 뜻있는 사람들은 배제되고 주민들은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일각에서 방향을 논의하고 있지만 머리만 굴리는 관념성의 우려가 있고 또 다른곳에서는 다리품만 팔라는 맹목성 흐름이 만연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적 흐름에 가장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진 세대는 누구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3040세대라고 봅니다.
3040세대는 세상살이에 가장 민감한 일하는 생활인이고, 사회적 존재로서 그 진지함을 불태우는 중간세대입니다. 젊은 날의 패기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으면서도, 작은 희망의 불씨를 맘 속 깊이 간직한 세대입니다.
저는 이 3040세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더 구체적이고 더 현실적인 정책과 노선이 제시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들을 일으켜 세워 허리에 힘을 주는 분위기가 창출되었으면 합니다. 허리세대가 튼튼해지는 중간지대가 개척되고, 생활과 생산현장에 숨어있는 인재를 발굴해 지역의 중견간부로 육성 훈련시키고, 생활과 생산현장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나가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빌고 있습니다. 이런 새 문화가 만들어져 자주적으로 살 길을 찾아 나설 두텁고 긴 대오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다가 올 대통령선거에 이런 정책과 공약을 내고 보수도 진보도 허무맹랑해지지 않는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정당과 후보자가 나타나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가 많아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공멸을 피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져 쇠락해진 지역에, 시들어가는 3040세대에게 다시 한 번 새 힘과 희망을 북돋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유경상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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