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수리공

person 김종규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9-04-02 10:52

몇 주 전에 아이들이 쓰는 화장실 양변기가 막혔다. 평소 똥이 굵은 아들로 인해 양변기가 막히는 일이 가끔 있지만 전통적인 기구(작대기에 고무판이 달린 것)로 힘을 쓰면 뚫리곤 했는데 이번엔 막힌 기전이 기존의 양상과 다른 점이 있었다. 일단 변기에 귀 청소에 쓰는 면봉이 여러 개 떨어져 있었다. 추측하건대 아들, 딸 둘 중 한 놈이 그 면봉 통을 떨어뜨리면서 변기 위에 여러 개가 떨어졌는데 변기에 손을 넣기 싫으니까 물을 내렸을 것 같다.
그런데 면봉의 막대가 플라스틱이어서 강한 물살이 아니면 물 위에 둥둥 뜨게 되어있다. 그래도 힘 약한 플라스틱이니까 대변에 쓸려 내려갈 것이란 기대를 하며 기존의 물리적 방법을 이용해 통수를 시도했다. 며칠간의 엄청난 노력 끝에 전처럼 강한 물살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뚫린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들의 대변 한 방에 다시 원위치. 예전에 써 본 방식인 철로 된 긴 줄로 뚫는 방법을 시도하기 위해 철물점에 사러 가니 그것보다는 가격도 싸도 편리한 펌프를 권했다. 펌프를 이용해 뚫어도 물살이 세게 내려가지 않는다. 다시 철로 된 줄을 사서 시도했지만 뚤리지 않는다.

몇 주를 변기와 씨름한 끝에 마누라의 입에서 드디어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나왔다. “일단 뜯어내자. 안 되면 사람 부르고.” 손재주가 뛰어난 세 명의 오빠들과 성장한 마누라는 남자란 모름지기 집과 관련된 모든 일을 능숙하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나는 형광등을 가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 아니면 사람을 불러서 하는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남자들은 집안 수리는 뭐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누라의 믿음에 지금도 불만이 많다. 그런 일 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각 가정에서 직접 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모두 힘으로 하는 일도 아니어서 여자들도 할 수 있는데 왜 꼭 남자가 해야 하나? 이것도 성차별 아닌가? 더군다나 가사를 맡기로 했으면 간단한 것은 직접 하든지, 사람을 부르든지 알아서 해야지 왜 꼭 남자를 귀찮게 하느냐 말이다. 속으로 이런 생각은 하지만 감히 입 밖으로 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대구에 살 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내가 버티면 한번씩 집에 오는 처남들이 마누라가 흡족하도록 다 해주곤 했으니까. 안동에 온 후로는 몇 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처남들을 기대할 수도 없어 마누라의 기대에 바로 노출되어 살고 있다.
이 집에 이사를 온 후로 집의 거의 모든 콘센트를 직접 교체했다. 과거에 100볼트 시절에는 콘센트도 손을 댔지만 구멍이 세 개인 220볼트 콘센트는 거의 건드리지 않았는데 마누라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엔 형광등 본체가 고장 나서 형광등 본체도 직접 달았다. 물을 뒤집어쓰며 작업해야 하는 비데를 달자는 소리를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삼월 첫째 토요일, 둘째 일요일도 행사가 있어 밖으로 나갔고, 넷째 주 주말도 직장 행사로 1박 2일 집을 비워야 하니 셋째 주 일요일밖에는 시간이 없다. 셋째 주 일요일도 꽃 구경을 가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꾹 참고 집에 있었다. 고치든 고치지 않든 변기가 몇 주째 막힌 상태에서 연달아 3주를 나갔다간 목숨을 걱정해야 한다. 사소한 꽃구경에 목숨까지 걸 일이야 있나. 일요일 아침을 먹고 눈치를 보다 결심을 굳혔다. ‘까짓것 뜯자. 안 되면 사람 부르지 뭐.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수조를 해체하는 단계까지는 쉬웠다. 다음 변기 본체를 뜯어내야 하는데 바닥과 연결된 나사가 두 개 있다. 이 나사가 배수관과 연결된 것인지, 바닥과 연결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과 연결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조심스럽게 푸는 방법밖엔 없다.
그런데 캡을 벗기고 나사를 푸는 과정부터가 쉽지 않다. 너트에 백시멘트(흰색 시멘트, 앞의 시공자가 흔들림 방지를 위해 바른 모양인데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불필요한 일을 한 것 같다.)를 두껍게  발라놓은 데다 녹이 슬어 풀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시멘트를 벗기고 조금 돌리니 아래 볼트와 함께 같이 돌아가면서 계속 헛돈다. 그래도 볼트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혹 배관이나, 방수된 바닥을 뚫을까 겁이 나서, 손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나사를 풀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결국 포기하고 나사를 줄톱으로 자를까 생각하다 인터넷을 찾았다.



문제의 나사는 프렌치(혹은 후렌지라고도 한다)라는 부품에 고정된 것으로 그냥 변기를 통째로 들어내면 된다고 되어있었다. 변기는 좌우로 몇 번 흔드니 바닥과 쉽게 분리되었다. 힘을 써서 들어내니 과연 볼트 끝에 프렌치가 달려서 나온다. 프렌치와 나사를 분리하고 변기를 살펴보니 문제의 면봉이 변기 아래에 그물처럼 얽혀있었다. 마누라는 바로 아이들 화장실에서 면봉을 치워버렸다. 변기를 청소하고 일단 휴식도 취하고, 운동도 하고, 이발도 하고, 새 프렌치도, 실리콘, 실리콘 총도 사야해서 밖으로 나갔다. 철물점에서 프렌치를 사니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 원래 있던 것은 가운데로 구멍이 나 있었는데 새것은 위와 아래 구멍이 S자로 꺽여 있다. 뭐 그래도 요즘은 이런 것을 쓰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사다두고 저녁 식사 후에 설치 작업을 시도했다.

그런데 배관 구멍과 프렌치 규격이 맞지 않다.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해체할 때 프렌치 중 배관에 들어간 부분이 깨져서 배관에 끼여 있었다. 빼내려고 하니 청테이프로 규격을 맞춰 꽉 끼여져 있었다. 그냥 빼는 것은 불가능하고 깨서 빼야 하는데 벌써 밤이라 깨는 소리를 낼 수도 없는 시간이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누라가 아이디어를 낸다. 톱으로 살살 잘라서 한 조각만 뜯어내면 나머지는 간격이 생겨 쉽게 나올 것 같다고. ‘음, 이럴 때는 마누라 머리가 나보다 낫군.’ 생각하며 그대로 하니 쉽게 뜯겨져 나왔다. 새로 넣을 프렌치에도 청테이프를 감아야 할 것 같아 아들에게 들어오는 길에 청테이프를 사오라고 시켰다.

이제 새 프렌치를 설치할 순서. 그런데 새 프렌치를 설치하려고 보니 문제가 있다. 입구가 앞으로 나오도록 하면 화장실 문이 잘 닫히지 않을 것 같고 뒤로 하면 수조 넣을 공간이 부족하다. 결정적으로 새 프렌치는 기존의 프렌치보다 높이가 몇 cm 높아서 변기 아래 엄청난 높이로 실리콘을 발라야 할 것 같다. 뭔가 이상해 인터넷을 검색하니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인터넷에는 모든 정보가 다 있다. 원래 있던 프렌치는 정심, 새로 산 프렌치는 편심이었다. 편심은 변기의 위치를 화장실의 구조에 따라 조금씩 달리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바닥과의 높이가 제법 차이가 나게 된다. 더 찾아보니 양변기를 설치하는 공법도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프렌치 체결 공법으로 프렌치와 변기를 나사로 체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한 가지는 백시멘트 공법으로 변기를 놓을 위치에 백시멘트를 두껍게 발라 그 위에 변기를 놓으면 프렌치와 변기를 나사로 체결할 필요가 없다. 내 판단에는 편심 프렌치를 사용하려면 백세멘트 공법을 사용해야 할 것 같고 우리 아파트 화장실에 시공된 공법은 프렌치 체결 공법이었다. 백시멘트 공법은 변기를 재사용할 수 없고 해체할 때에는 부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럼 정심 프렌치를 사야 하네. 월요일 정심 프렌치를 사서 다시 설치하기로 하고 배관 구멍만 막아두고 하루를 넘겼다.

 >> 가운데로 배관이 연결되는 정심

 >> 방향을 바꿀 수 있고, 높이가 높은 편심


월요일 퇴근시간이 되자말자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마리스타 학교 수업이 아홉시에 있기 때문에 그 전에 마무리를 하고 가야 한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남은 시간은 두 시간 조금 더 남았다. 정심 프렌치에 청테이프를 감고 배관에 박은 다음 나사 위치를 잡고 변기를 올렸다. 자신이 없었지만 인터넷에서 배운 대로 나사를 체결하기 전 물을 몇 대야 부어보았다. 밖으로 새는 것 같지는 않다. 감격, 또 감격. 그리고 나사를 체결한 후 수조를 조립했다. 통수 기념으로 소변을 보니 잘 내려간다.

실리콘으로 마무리를 하는 일은 당연히 손재주가 나보다 낳은 마누라고 할 것으로 생각하고 하라고 하니 총을 쏘는데 힘을 써야 하기 때문에 자신은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벌써 수업시간이 다가와 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술 마시자고 꼬득이는 전화가 왔지만 거절하고 바로 와서 실리콘 작업을 했다. 한 바퀴 돌리고 마감을 하려고 하니 마누라가 실리콘은 손을 대면 댈수록 모양이 나빠지니 그냥 두자고 한다. 그래도 너무 울퉁불퉁해 마누라와 둘이서 조금씩 손을 대니 결국 떡칠을 하고 말았다. 마누라는 굳고 나면 칼로 오리면 된다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내게 시키는지 모르겠다.

마무리를 한 후 어느분의 연락을 받고 소주 한잔 하면서 호기롭게 말했다. “이제 전, 사람 빼고는 다 고칠 수 있습니다.” 이제 나의 육중한 엉덩이에도 변기가 흔들리지는 않는지, 아들의 굵은 똥도 잘 내려가는지 확인하는 최종 마무리 실험이 남아있긴 하지만 나의 수리 이력에 양변기가 포함되었다. 재미를 본 마누라가 다음엔 또 뭘 시킬지 모르겠다. 열심히 배워두면 훗날 아들이나 딸네 집에 갈 명분이 생길 수도 있느니 배워두는 것도 괜찮지 싶다. ‘까짓것 뭐든 말만 해!’ 

옛 선인들은 대나무 키우는 양죽기도 쓰고, 산을 유람하고 유산기도 쓰고, 정자를 고친 후 중수기도 쓰고 하면서 폼나는 글들을 잘도 쓰던데 쪼잔한 인생은 쓴다는 것이 겨우 변기 수리기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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