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래미키우기
한 달 전 딸내미가 유치원을 졸업했다.
이번 졸업식만큼은 아빠가 꼭 와야만 한다고 몇 주 전부터 경고성 멘트를 강하게 날렸다.
아마도 1년 전인가 단 한번 아빠와 함께하는 체육시간을 보낸 것 이외에는 한 번도 이놈을 위해 시간을 내지 못했다. 물론 큰 놈도 같은 유치원을 다녔지만 그놈에게는 그나마 단 한번도 시간 내어 유치원을 가보지도 못했다(아니 안 갔다 토요일인데도) .
아이들이 먼저인 요즈음 세상에 항상 나는 “미안해 아빠 오늘도 회사 가야해” 이말 외에는 해본 바가 없다. 마누라 말처럼 정말 간이 부어 배밖에 나왔다고 해야 할 밖에 (아 얼마나 이기적이고 소시민적이며 용기 없는 샐러리맨의 전형인가 나는)
그런데 이번에는 딸이 너무도 당당하게 그리고 줄기차게 이야기해 왔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졸업식을 마치고 나서 회사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토요일 10시에 졸업식이 부산하게 시작되었다.
놀라운 율동을 보유하고 계신 유치원 선생님들의 리더로 졸업식은 들뜨고 즐겁게 진행되었다. 나는 밀린 빚을 갚아야만 한다는 강박증으로 연신 딸내미 주위를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늘 그렇듯이 분주하며 즐겁게 웃어 되며 지절거렸다. 모든 식이 끝나자 담임선생님들은 자기반 아이들을 따로 불러놓고 하나씩 포옹하며 1분여씩 무슨 말인가 귀엣말을 하고 있었다.
그 의식이 끝나면 아이들은 졸업선물과 앨범을 받아들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자장면을 먹으로 유치원을 떠나갔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선생님과 헤어졌다.
다만 선생님들은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정든 아이들을 보내는 서글픔 때문이리라.
문제는 우리 딸내미에게서 일어났다.
딸내미는 포옹 순서가 가장 늦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인내하며 선생님과 마지막 포옹장면을 찍을 적절한 자리를 지루하게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선생님과 포옹이 이루어지자 딸내미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참고 있었던 선생님도 함께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똑똑 박사 우리 수연이”라는 말을 연신하고 있었다.
(아.. 우리 딸내미가 유치원 별명이 똑똑 박사였구나)
눈물이 범벅이된 3명의 모델에게 나는 염치없이 사진을 찍자고 졸랐다. 그건 사실 눈물이 흐르는 감동적인 사진을 찍을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고백하면 나의 안구에서 흐르는 정체모를 수분을 감추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 쪽 눈은 감아서 다행이었으나 다른 쪽 눈은 흐려진 뷰파인더를 보아야했기 때문에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걱정이 조금은 들었다.
돌아오는 길, 뒷좌석에서 부은 눈으로 앨범을 조용히 보고 있는 딸내미를 백미러로보면서 다 커버린 우리 아이의 대견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딸내미는 지금 밝고 맑게 초등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오늘 아침 토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있는 상황.
잠결에 분홍색 옷과 가방을 멘 요정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한다.” 늦잠을 포기하고 나는 현관 까지 따라 나가 배웅한다.
봄은 벌서 와 있다. 그리고 또 봄은 갈 것이다.
*김영호씨는 현재 (재)서울문화재단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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