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ulture (속임수 문화)

person 김종규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9-02-19 09:57

딸아이와 prosumer 용어로 기싸움을 하게 만든 책이다. 출판사에서 약속대로 책을 보내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블로그 독서후기를 보고 책을 보내줬으니 최소한 읽고 독서후기를 적는 것이 책값을 하는 길이다. (딸아이와 기싸움은 http://www.andong.net/news-2007/view.asp?s=37&seq=4809  참고)

사실 기획 출판한 냄새가 많이 나는 미국의 책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읽는 과정에서 미국식 풍은 많이 느꼈지만 미국에서 이런 책을 출판해도 문제가 없는가 할 정도로 미국의 경제 행위에 있어서 경제주체들(기업, 개인)의 비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미국 내에서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따른 부작용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오바마의 당선은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리먼 브라더즈의 파산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경제 상황의 근원을 경제학적 입장이 아닌 사회현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기도 하다.  

8,90년대 이후 미국이 보수화의 길을 걸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기간 동안 복음주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계는 가족중심의 가치관을 강조하며 마약, 임신중절과 같은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고 실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기간 동안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좀 더 정직해지고 믿을만한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결론은 반대로 이 기간동안 금융사기는 더 많아졌으며 기업인은 더 부패해졌고 종업원들의 윤리는 더 나빠졌다. 남을 속여서라도 사닥다리의 위로 올라가겠다고 대답하는 대학생이 더 많아졌으며, 고등학교에 부정행위가 더 많아졌다.

저자는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하고 정부의 기능은 최소화되어야 하는 경제체계 속에서 투자금융회사들은 최단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올리려고 한다. 이런 투자금융회사들은 기업의 CEO를 압박한다. 과거처럼 기업의 장기 발전전력보다는 단기간에 최대의 수익을 보장하라는 압력이다. CEO는 투자자들의 이익, 그것도 분기별 실적을 바탕으로 한 단기 수익을 보장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으면 스톡옵션을 포함해 엄청난 연봉이 보장된다. 반면 단기 수익이 투자자들의 기대 이하라면 그는 실업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러한 압박과 고액 연봉에 대한 유혹은 CEO들과 재무담당 이사들로 하여금 재무 상태를 부풀리게 만든다.

한편 투자금융회사는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의 재무 상태가 좋다고 알려져야 자신들의 금융자산에 이익이므로 설사 이런 일들을 안다고 해도 떠들어서 좋을 것이 없다. 투자금융회사들의 투자분석가들은 어느 회사가 재무상태가 열악해 곧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속한 회사가 투자하고 있는 회사라면 고객들에게 그 회사가 위험하다고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투자를 권한다. 그래야 자신의 투자금융회사에 이익이 되고 자신은 그 대가로 엄청난 연봉을 받게 된다.

그 결과는 투자금융회사에 돈을 맡겨놓고 노후 생활을 보장받으려는 소액투자자들의 손해로 귀결된다. 저자는 이러한 예들을 많이 들며 미국의 경제 윤리를 비판한다. 한편 정부의 간섭을 줄이라는 압력 속에서 금융기관을 감독해야할 정부 기구는 그런 부정을 감독할 인력과 비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비단 CEO나 투자금융회사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회계법인들도 결탁한다. 엄청난 수수료를 주는 대기업의 재무감사를 곧이곧대로 했다가는 고객을 잃게 된다. 원칙에 따르려는 회계사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변호사들도 실제 고객을 위해 일한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한 것처럼 거짓 서류를 꾸며 고객들의 돈을 훔친다. 의사들도 제약회사가 제공하는 금품에 현혹되어 전문직 윤리에 어긋난 행위를 한다. 설문에 따르면 경영대학원 학생들은 속여서라도 동료를 짓밟고 출세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보통의 직장인들도 직장의 물건들을 집으로 가져가는 일종의 절도 행위를 한다. 대학생들은 엄청난 양의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받고 있으며 고등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남의 논문을 표절해 보고서를 쓰기도 하고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사람은 바보취급을 받는다. 세무당국은 이런 탈세를 제대로 감독할 여력이 없다. 

80,9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을 겪으면서 소수의 승자가 이익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체제로 바뀌고 빈부격차는 눈에 띄게 커졌다. 고용불안으로 인해 중산층은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지 점점 불안해하고 그 층은 얇아져가고 있다. 그래서 상층부로 올라갈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설사 걸린다 해도 형사책임 없이 넘어가거나 폭력이나 마약 같은 사회적 범죄처럼 장기간 복역할 가능성은 낮다. 대체적으로 화이트칼라에 대한 미국 법원의 형량은 관대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경제사범들의 평균 복역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회사가 협상해서 합의금으로 때우고 책임 있는 개인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린 시절 도덕 시간에 “스위스에서는 길에 시계가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일이 없다. 잃어버린 사람이 다시 그 자리에 왔을 때 찾지 못할까봐 경찰서에 가져다주지도 않는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1997년 스위스에 갔을 때 역 광장에 가방을 두고 역으로 들어간 일이 있다. 10분도 되지 않아 다시 그 자리에 가봤지만 그 자리에 가방은 없었다. 어린 시절 미국은 선진국의 대명사였고 선진국에선 당연히 모든 사람이 법과 질서를 잘 지킬 것으로 믿었다. 크면서 미국의 어두운 면을 보기도 했지만 기업가가 사기를 치고, 횡령을 하고, 일반 시민이 탈세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경제 주체들은 지금보다는 훨씬 양심적이었다고 한다. 경제적 조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압박하는 모양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러한 속임수 문화를 극복하는 방안의 한 가지로 새로운 사회계약을 제안한다. 그 첫 단락 앞부분에서 속임수가 생기는 환경을 설명했는데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로 생각되어서 이를 소개하는 것으로 독서후기를 마친다.

속임수는 불평등과 경제적인 불안이 지배하는 곳에서 기승을 부린다. 속임수는 정부가 부자들의 이익에 휘둘려 공명정대하게 정의를 실현할 의지가 부족한 곳에서 기승을 부린다. 속임수는 돈과 성공이 왕이고, 승자는 매일 권력을 남용하더라도 무조건 대접받는 곳에서 기승을 부린다. 속임수를 줄이려면 이러한 근본 원인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 저자 : 데이비드 캘러헌(David Callahan)
- 역자 : 강미경
- 출판 : 도서출판 서돌, 2008년 12월 초판 1쇄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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