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김씨 청계공파 문중 전시회(3)
의성김씨 청계공파 문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학봉 김성일이 될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당파 싸움의 폐단을 이야기할 때 자주 예를 들기도 해서 우리 세대에게는 그리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지는 않은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가 임진왜란 때 경상 우감사로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는 아니지만 전장에서 병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임금님 모시고 의주로 함께 도망가던 관료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안동에서는 다른 의미로 중요한 인물이다. 퇴계학파의 다섯 봉우리 중 두 번째 봉우리가 되는 성리학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학봉 김성일의 종택은 안동에서 봉정사를 가다보면 오른편 길가에 있다. 봉정사를 가는 중에 꼭 들러보기를 권한다.
학봉의 시문을 엮은 책, 원래 두루마리였던 것을 후손이 배접을 해서 책으로 만든 모양이다.
유서와 유서통.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하는 학봉에게 내린 유서
유서는 주로 군대의 업무에 관한 지시라고 한다.
유서는 밀부와 함께 내려주는 것이 특징인데 밀부는 왕과 해당 관찰사만 그 번호를 알고 있다고 한다. 이 유서의 밀부 번호는 26번이다.
학봉이 산음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학봉은 따뜻한 남편이기도 했다.
편지 겉봉과 해독. 학봉은 이 편지를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에서 병사한다.
학봉 종택에서 제작한 대기(大忌) 족자. 학봉 김성일의 불천위 제례 때 제사상 뒤에 걸어두는 용도로 쓰인다.
- 중류지주 : 황하 중류의 지주산이란 뜻으로 난세에도 의연하게 절개를 지키는 인물 또는 행위를 일컫는 말
- 벡세청풍 : 백세청풍이제지비(百世淸風夷齊之碑)에서 유래한 것으로 백이와 숙제가 은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뜯어먹다가 죽은 절개를 칭송한 뜻
학봉 김성일이 사용했던 연상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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