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김씨 청계공파 문중 전시회(2)

person 김종규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12-18 09:55
문중의 성립

내앞 마을의 의성 김문은 청계(靑溪) 김진(金璡,1500~1580)을 중흥조로 하는 문중이다. 고려말 청계 김진의 6대조인 김거두(金居斗)가 풍산 우릉골에 자리를 잡은 후 율세동을 거쳐 청계 김진의 조부 김만근(金萬謹) 때 내앞  마을에 정착했다. 청계 김진은 부친 김예범(金禮範)과 모친 영해 신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계 자신은 벼슬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가세를 일으키고 아들 다섯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면서 가문을 중흥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 아들 중 김극일, 김성일(학봉 김성일은 뒤에 별도로 소개), 김복일이 대과에 급제하고 김수일과 김명일이 소과에 급제하여 내앞 대종택을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후 청계 문중에서 대과 소과에 급제한 사람만 수십명에 이르고 이 문중에서 갈라져 나가 종택을 유지하는 문중만 해도 예닐곱이 넘는 큰 문중이 되었지만 과거에 합격한 수보다는 대쪽 같은 품성을 유지해서 천김쟁쟁(川金錚錚)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성리학에 있어서도 청계의 아들인 학봉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학맥을 잇는 큰 봉우리로 알려져 있다. 내앞 김씨의 대쪽 같은 성품은 조선 후기에는 상소를 주도하기에 이르렀고 구한말에는 협동학교라는 신교육 터전을 남먼저 마을 안에 개설하기도 했고, 나라를 잃자 문중 차원에서 만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 문중이 배출한 공식 독립유공 훈포장자만 38명이 된다.  

 >> 전시회 안내문 표지에 있는 청계 김진의 영정 



 >> 전시회에 소개된 내앞 마을 그림


내앞 마을 앞에 있는 백운정의 현판
미수 허목의 글씨. 구십 노인이 쓰다(九十老人書)라는 서명이 보인다.
흰구름이 날아가는 모양을 나타낸 모양이다. 


백운정에 걸려 있는 퇴계 이황의 친필 현판.
조양문의 뜻은  봉명조양(鳳鳴朝陽)의 준말로 봉황이라는 상서로운 새 진산(鎭山) 의 동쪽에서 운다.
즉 어진 인재가 언젠가 때를 만나 일어날 것이란 뜻이다.
이요문의 뜻은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후손이 한문 선생님이 만든 산악회가 이요회인데 요수의 수(水)는 아마도 술(酒)과도 통하는 듯.

청계 김진이 78세이던 1577년 6월 23일에 친필로 작성한 유언장으로 아들들과 손자에게 일부 재산을 나눠주면서 제사를 검소하게 지낼 것, 종가를 성심으로 수호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일가를 이루려면 재산도 좀 있어야 되는데 난 재산이 없어 안동 입향조가 되기 힘들겠다.


청계 김진과 아들 5형제의 글들을 모아 편집한 문집
1797년 9대손 김용보가 편집하여 지금의 사빈서원에서 간행


문중의 대표적 인물들의 글씨를 묶은 필첨. 내용은 주로 편지글이다.


운천 김용이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면서 적은 일기
- 임진왜란사와 당시 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 -

교지

재산 김성탁이 소과에 합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노비와 논 등을 나누어 준 재산 증여 기록
  - 재산 김성탁은 후에 갈암 이현일의 신원 상소로 고생을 하게 된다. -


재산 김성탁이 주도한 갈암 이현일을 신원하기 위한 상소
- 나의 9대조 할아버지에 대한 족보 기록에 갈암 이현일 밑에서 공부한 것이 가장 큰 자랑으로 되어있다.
  갈암 이현일은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경당 장흥효를 잇는 퇴계학파의 거두로 알려져 있다. -
상소문에 동참한 명단에 9대조 할아버지 함자도 있으려나?


문중에서 만든 각종 문집들


문집을 발간할 때 만든 목판. 현재 국학진흥원에서는 이런 목판을 10만장을 목표로 수집중이다.


문중에서 서당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사진은 발기인 명단. 


집안의 화목과 조상 제사를 정성으로 모실 것, 선산을 엄격히 보호할 것을 규약한 완의


 문중의 친목계 명단과 자산에 관한 기록


문중 인물 사후에 시호를 요청하는데 동참한 유림들의 명단
 - 여기 이름 올려달라는데 거절했다간 좀 곤란한 입장에 빠졌을 게다. -


이런 통문이 돌면 무조건 집합.

오늘의 하이라이트 대기병
청계 김진에서부터 유명한 후손 94인 등 모두 100명의 유묵을 모아 1973년 제작한 병풍
매년 음력 4월 23일 청계 김진의 불천위 제례에 사용되었던 이유로 대기병이라고 불린다.
 - 우리 집에 와서 글자랑 할래? 뭐 이런 느낌을 준다. -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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