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주사의 추억

person 김종규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12-03 17:45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행사가 있었으니 바로 불주사다. 오늘 불주사 맞는 날이라는 소문이 돌면 교실은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다. 주사에 대한 공포가 남들보다 심한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아프다거나 하는 핑계로 주사를 맞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고, 울상을 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주사 자체만으로도 겁을 먹게 되어있는데 눈앞에서 주사기를 알콜 램프의 불꽃에 댄 후에 주사를 놓으니 공포는 배가 된다. 

4학년 전후의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였던 나는 그날 두려움을 참고 용감한 소년의 모습을 보이기로 작정했다. 두려움을 속으로 삼키며 주사를 맞은 다음, 바로 주사 맞은 자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하나도 안 아푸다.”고 말하면서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용감함을 자랑할 때였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빡” 하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불주사를 지휘하던 고참 간호사 선생님이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으로 문지르면 안 되는데 바로 문질렀다는 것이다. 감염 때문인지 다른 원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좌우지간 내가 뭘 잘못한 것은 확실했다.

언제부터인가 불주사를 맞지 않게 되었다. 그 후 불주사는 잊혀졌다. 의과대학을 다니면서도 어떤 경우에 불주사라는 것을 맞는지, 원리가 뭔지 배운 기억이 없다. 어느 날 왜 어린 시절 예방접종은 불주사였을까 생각해보니 불주사는 다름 아닌 소독 방법이었다. 70년대까지 1회용 주사기는 선진국에서나 사용하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리 주사기를 소독해가면서 사용했다. 주사기는 물론이고 주사 바늘까지 소독해서 다시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집단 접종을 할 경우, 일일이 바늘을 소독할 여유가 없으니 한 아에게 주사를 놓은 다음 알콜 램프에 소독하고, 알콜에 식힌 다음 바로 다음 아이에게 접종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소독 중에 가장 확실한 화염 소독. 그런 소독 모습이 아이들의 공포를 배가시킨 것이다. 실제 바늘을 여러 번 사용해 바늘끝이 무뎌지면 통증도 커진다.

요즘 불주사를 생각하면 당시의 보건 정책이 꽤 합리적이었던 것 같다. 예방접종은 가장 확실하고 저렴한 전염병 방지 수단이다. 그런데 1회용이 아닌 주사 바늘을 사용하면 이런 예방접종으로 인해 다른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 에이즈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프리카 침팬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에이즈가 퍼져나가는데 일조한 것이 수면병 예방접종이라는 설도 있다. 초기 에이즈 발생 지역에서 노동자들에게 단 6개의 주사 바늘로 수면병 예방접종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주요 감염 경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60~70년대 예방접종은 실시해야 하고, 1회용 주사기를 쓸 형편은 되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 불주사는 많은 사람에게 사용해야 할 주사 바늘의 소독 방법으로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 때 불주사가 없었더라면 지금 40~50대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B형 간염 양성율을 보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80년대 들어 1회용 주사기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불주사는 우리 세대의 건강에 큰 기여를 했다.   

 >> 같이 불주사를 맞던 친구들. 왼쪽에서 세 번째가 나, 두 번째는 '이런날도'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pelops님.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진으로 기억한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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