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파천 관리 왕버들에 전하는 이야기
이 나무는 청송읍 덕리(靑松邑 德里)와 파천면 관리(巴川面 官里) 경계에 있습니다. 청송읍에서 국도 31호선을 타고 진보방면으로 2km 정도 가면 오른쪽에 벽절 마을 입구가 있고, 왼쪽 도로변에 노송(老松)과 함께 다정스럽게 서 있는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나무의 수령은 400년, 높이 15m, 둘레가 5m이고 나무 아래쪽으로는 백전 마을 공동 우물이 있습니다. 왕버들은 버드나무목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으로 길이 4∼12㎝이며, 어린잎은 적갈색을 띠고 뒷면은 흰색입니다. 잎자루의 윗부분에 2개의 샘[腺]이 있고 턱잎이 큽니다. 수꽃에 4∼5개의 수술이 있는 버드나무속 중 특수한 종입니다.
옛날에 채씨(蔡氏) 성을 가진 과년한 처녀가 백전 마을에서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넉넉하지는 못했으나 마음만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전국이 전란에 휘말렸습니다. 그러자 뜻있는 선비들이 국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의병을 모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처녀가 모시고 있는 60이 넘은 아버지 채(蔡)노인에게 출병 영장이 나왔습니다. 처녀는 기가 막혔습니다.
나라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국민이 도와야 함은 당연한데, 문밖출입도 겨우 하는 노인인 아버지를 출정하라니 어떻게 해야 옳을지, 그렇다고 딱한 사정을 의논할 사람도 없고, 수심에 잠겨 있던 중에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젊은 일꾼이 처녀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웃에서 평소 처녀의 미모와 정숙한 마음가짐을 남의 집 머슴살이의 신분답지 않게 채 처녀를 오매불망 사모해 왔던 터인자라 노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찾아오게 된 뜻을 노인과 처녀가 있는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젊은 일꾼은 "저가 댁의 사정이 너무나 딱해서 의논을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칠십의 가까운 병드신 어르신네께서 전쟁터에 나갈 수도 없고, 출정 날짜는 임박했습니다. 정말 딱합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마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급한 사정이니 저가 대신 출정하려고 결심하였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옆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처녀는 너무나 감동해서 돌아오면 이 총각과 백년가약을 맺기로 아버지 허락을 받아 약속했습니다.
처녀는 총각이 평소 처녀에 대해 어떤 지나친 생각을 품었던 간에 이렇게 어려울 때 죽음의 전쟁터에 대신하는 것이 그 얼마나 진실하고 고귀한 사랑인가! 10년이 가던 20년이 가던 오직 한마음 한뜻으로 총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출정 전날 밤 두 사람은 우물가에서 만났는데 그때 총각은 손에든 어린 나무 한 그루를 처녀에게 보이면서 이 나무를 우물가에 심어놓고 가겠으니 날 보듯 고이 길러 달라고 했습니다.
처녀는 총각이 떠난 뒤 매일 그 나무에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폈고, 총각을 기다리는 마음도 날마다 한결 같았습니다. 그러나 달이 가고 해가 가고 3년이란 애타는 긴 세월이 지나고 전쟁도 이미 끝났지만 기다리는 총각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이 처녀로 늙어 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 사람은 이미 전사하였으니 네 장래를 위하여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타일렀으나 처녀는 아버지를 위해 대신 죽어간 사람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인륜지도리가 아니라는 굳은 신념으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처녀의 아버지는 임의로 또 다른 사람과 정혼을 했습니다. 뒤에 이 사실을 안 처녀는 총각이 심어놓은 나무를 어루만지면서 만날 회포에 젖어 그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임은 가고 없어도 그때 심어 놓고 간 왕버들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정한 결혼 전날, 최후의 그 순간까지 총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자 처녀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야밤중에 아버지 몰래 집을 빠져나갔습니다. 처녀는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고, 불효막심한 이 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명주 수건으로 약혼자가 심어놓고 떠난 왕버들 가지에다 목을 매고 자결하였습니다.
그녀가 죽은 뒤 왕버들나무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돋았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처녀의 일편단심 그 임만을 기다리던 그리움에 사무친 넋이라 하였습니다. 이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의 당나무로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냅니다. 처녀 총각의 사랑이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풍년농사와 마을 주민의 안녕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안동넷 & presstea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