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sumer
몇 번 만나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조금 아는 것이 있으면 적당히 부풀려서 유식한 척 하는 것이 내 특기 중 한 가지다. 아직 아들은 내가 하는 말의 진위 여부를 가리지 못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상당히 진지한 자세로 내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지만 한 때 잡학박사라고 불러주던 마누라는 요즘은 잘 속지 않고 거의 사기꾼 대하듯 한다.
금요일, ‘나쁜 사마리아인’ 독서 후기에 낯선 방문객의 댓글이 달렸다. 내용인즉 어느 출판사 관계자인데 조만간 신간을 출간할 예정이고, 원한다면 증정본을 한 권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이런 내용을 함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소위 ‘낚시’에 걸리는 수도 있으니까. 토요일 그 출판사가 정말 존재하는 출판사인지 인터넷 검색까지 한 다음 ‘정말 보내줄 의사기 있는 모양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공짜를 좋아하는 내가 사양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안전을 기하기 위해 책을 받을 주소는 직장으로 하고, 이름도 다음 아이디로 해서 신청을 했다.
저녁에 마누라랑 딸이랑 같이 차를 타고가면서 자랑을 했다. 공짜 책 한 권 받을 것 같다고. 마누라는 바로 사기가 아니냐고 의심을 한다. 내가 그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의 ‘유식한 척’을 발동했다.
“요즘 prosumer라는 말도 있잖아. 책 홍보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미리 책을 보내줘서 홍보를 하려는 것이겠지.”
평소에는 바로 나를 무시하는 반격을 가하는 마누라가 어쩐 일인지 고개를 주억거린다. 난 목에 힘이 들어간다. 역시 어려운 용어를 구사해야 말발이 서는 법이다.
“근데 prosumer가 무슨 뜻인데?”
“에, 그러니까 전문 소비자란 뜻으로 professional과 consumer가 합쳐진 말이지.”
“......”
정말 오랜만에 마누라를 제압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뒷자리에 있던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Professional이 아니고 producer인데.”
“(엥? 가만, 그게 더 맞을 것 같기도 하네.)
아, 맞다. producer가 맞는 것 같다.
(가시나 맨날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 뒤지더니 별걸 다 아네)”
간만에 폼 한번 잡을 수 있었는데 망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해보니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
에서 사용할 때 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로 사용한 것이 맞다. 그런데 백과사전에는
professional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한다. 내일 이 말로 반격을 해? 말아? 차 안에서
professional도 된다고 우길 걸.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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