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녀소와 구모소에 전하는 이야기

person 박장영
schedule 송고 : 2008-11-06 10:24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의 운곡마을 나북댕이 앞에 흐르는 운곡천에는 비녀소라고 하는 바위 밑에 웅덩이가 있고,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태백시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마을) 고갯길 도로변 오른쪽 낙동강 상류에 구모소라고 하는 웅덩이가 있습니다.

신라 선덕여왕에게는 효도라고 하는 왕자가 있었는데 이 왕자의 성품은 서민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궁중 생활에 실증을 느끼고 팔도 유람을 하며 소박한 백성들과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선덕여왕 8년 정월 보름날에 효도왕자는 아무도 모르게 시종 1사람을 데리고 궁궐의 담을 뛰어 넘어 유람길에 나섰습니다.

서라벌을 벗어나 명호면 청량산에 이르니 산의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움으로 효도왕자는 이곳에서 효도암을 짓고 3달 동안 신심을 단련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길을 떠난 효도왕자는 5월 초나흘에 재산면에 이르러 내일이 단오이므로 주막에 머물렀습니다. 이튿날 아침 이상한 소리에 왕자가 창문을 열어보니 버드나무 사이로 미모의 처녀들이 그네를 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 남색 치마에 분홍저고리를 입은 처녀의 자태에 왕자는 그만 넋을 잃었습니다.

시종을 통해 알아본 결과 그 처녀는 고을 백정의 딸로 월선이라고 하는 처녀였는데 왕자가 그 집을 안내하도록 명하자 시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 극구 말류하기를 "귀하신 옥체로서 어찌 천한 백정의 계집을 마음에 두시나이까?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라고 했으나 왕자는 "백정의 딸은 이 나라의 백성이 아니고 무엇 이란 말이냐?"라고 호통을 치며 길을 안내할 것을 호령하였습니다.

그날 밤 효도왕자는 시종을 앞세우고 월선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왕자가 집안에 들어서자말자 주인은 뜰 앞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습니다. 왕자는 눈물을 거두라고 말하고, 우는 연유를 물은 즉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는 천하기이를 데 없는 백정의 집을 귀하신 왕자님께서 찾아 행차하시니 너무 감격하여 운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의 말에 왕자는 뜰로 내려가 주인의 손을 잡으며 "허허 손님이 찾아온 것이 무슨 잘못이오. 이렇게 뜰에 있어서야 손님 대접이 아니잖소."하며 위로를 했습니다.

이리하여 왕자와 주인은 안으로 들고 곧이어 주안상이 마련되었습니다. 주인은 월선을 불러서 효도왕자에게 술을 권하게 했습니다. 월선이 홍조된 얼굴로 살그머니 올리는 술잔의 그윽한 향기는 효도왕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침내 효도왕자와 월선은 그날 밤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습니다. 왕자와 월선이 두 사람의 행복스런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서라벌에서 한 사자가 와서 "환궁하셔야 하겠나이다. 지금 전하께옵서 병환이 위독하시고 또 왕자의 귀한 몸으로 천한 백성의 아녀자를 얻음은 도리에 어긋남이니 속히 환궁하시라는 어명이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리하여 효도왕자와 월선은 재산에서 도산에 이르는 고개(눈물고개)에서 이별을 하면서 "도착하는 대로 곧 소식을 전할테니 기다려 주구려."라고 했습니다. 효도왕자는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서러워하는 월선의 손목을 꼭 쥐고 정답게 "이건 장차 내 배필이 될 사람에게 줄 금비녀인데 정표로 낭자에게 주고 가겠으니 잘 간직하오."라고 속삭였습니다.

왕자와 헤어진 월선은 밤이면 밤마다 금비녀를 임 보듯 어루만지면서 서라벌에서 소식오기만 기다리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듬해 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서라벌로부터 소식이 왔습니다. "낭자 못 견디도록 보고 싶었소. 낭자도 소식 오기를 무척 고대했을 줄 아오. 진작 소식을 전하지 못해서 미안하오. 낭자와 내가 인연을 맺었던 5월 단오날에 강원도 태백 동점 낙동강 상류에 있는 구모소에서 기다릴 터이니 사람의 눈을 피해 오도록 하오."라는 내용의 편지가 왔습니다.

월선은 그날로 구모소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월선은 평탄지를 지나 공이재를 넘어 춘양 양리에 다 달아서 한 개울 웅덩이 옆에 잠깐 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갑자기 개울물이 소용돌이를 치는 바람에 놀란 월선은 소중히 지니고 있던 금비녀를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월선은 눈앞이 캄캄하고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임께서도 실수로 빠뜨린 것이니 용서를 해 주리라는 생각에 월선은 발길을 재촉하여 마침내 구모소에 이르렀습니다. 멀리 구모소 가에는 청의의 동자가 거닐고 있었습니다. 월선은 효도왕자를 반갑게 만나 비녀를 잃어버린 사실을 말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그 말을 듣고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놀라움과 슬픔으로 가득한 월선은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치마를 뒤집어쓰고 구모소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얼마 후에 정신을 차린 월선은 자신이 모래밭에 누워있고, 또 그 옆에 비녀소에서 빠뜨린 그 금비녀가 아름다운 빛을 내며 놓여 있었습니다. 월선은 기이한 일에 넋이 빠져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이건 정녕 꿈이 아니었습니다. 월선이의 애틋한 마음을 하늘이 알고서 비녀소에 빠뜨린 금비녀를 구모소에 오게 하고 소의 물을 마르게 했던 것입니다.

월선은 금비녀를 품고 서라벌로 향했습니다. 험한 고개길을 넘고 강도 건너고 들판을 지나 몇 달 며칠이 걸려서 서라벌에 도착했으나 소녀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월선은 효도왕자를 만나 이 금비녀를 보였습니다. 효도왕자는 금비녀를 잃어 혼인할 수 없게 되자 월선을 버리고 왔지만 밤낮으로 월선을 그리워하고 있던 중에 금비녀를 찾아 이렇게 왔으니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리하여 효도왕자는 월선 낭자는 오대산에 들어가 속세를 떠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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