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대구, 부산 찍고 다시 안동

person 김종규 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10-30 09:00

매년 봄가을이면 전공과목의 학술대회가 열린다. 내가 소속된 학회는 한 번은 서울, 한 번은 회장이 근무하는 도시에서 열리게 되어있는데. 올해 회장은 부산대학교 교수이므로 가을 학술대회는 부산의 벡스코에서 열렸다.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년에 12평점에 해당하는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 평점은 두 번의 학술대회를 참석하면 대개 해결된다. 가을 학술대회는 일정 때문인지 월요일과 화요일 열렸다. 보통은 1박 2일 모두 참석하지만 주초부터 이틀을 비우기도 뭣하고 월요일 저녁엔 야간학교 수업과 딸아이 학원 마치면 태워 와야 하는 숙제가 있어 월요일 하루만 참석하기로 했다. 그래도 공식적으로 외박이 가능한 학숙대회를 무박으로 다녀오긴 섭섭해 일요일 저녁에 일단 대구로 가서 친구를 만나고 어머님 댁에서 하룻밤을 잔 후 부산으로 갔다. 학문도 하고 술도 해야 학술대회 이름값을 할 것 아닌가.

1. 친구

아직 총각인 친구가 있다. 뭐 대단한 독신주의자는 아니고 사회경제적 여건상 결혼 시기를 놓쳤고, 나이가 먹고 나니 결혼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클 것 같고 해서 이젠 혼자 살기로 마음먹고 있는 친구다. 이 친구의 주요 취미 활동은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일이다. 친구들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친구 마누라 생일까지 챙겨서 전화를 한다. 내게는 꼭 점심시간에 눈을 좀 붙이려고 하면 전화를 해서 휴식을 방해하기도 한다. 전화를 자주 하니 당연히 나의 일정을 꿰고 있다. 그래서 대구를 가게 되면 거의 이 친구랑 놀다가 어머님 댁에는 새벽에 들어가곤 한다. 가끔은 ‘내가 왜 이놈과만 놀아야 되지? 대구 오면 연락하라는 사람도 많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막상 명절이나 주말에 내려가 쉽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요일 밤에 만나 공동 어시장에서 전어 회에 소주를 한잔 했다. 10시 반 정도가 되니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 우리만 남았다. 경기가 나쁘다더니 식당 손님을 보니 확연히 드러난다. 어머님 댁에는 늘 새벽에 들어가다가 10시 반이라는 초저녁에 들어가 자러 왔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어색하다.

“야, 우리 집에 가서 커피나 한잔 하고 놀다 가라.”

“인자 너거 집에 안 간다.”

“와?”

“총각 놈 집에 가봐야 야동 볼 일 밖에 더 있나? 어디 딴 데 가서 놀다 가자”

결국 노래방으로 갔다. 개인적으로 노래방을 가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친구랑은 간혹 간다. 이 노래방도 손님이 없어 이 날 손님은 우리 한 팀밖에 없었다. 나중엔 노래도 지겨워 이야기 좀 하다가 나오니 두 시. 집에 가기 적당한 시간이다. 두 시 반 정도면 어머님 깰 시간이 다 된 시간이다. 집에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 좀 나누고 네 시에 취침.

2. 부산

부산은 내가 태어나 2년 정도 산 곳이다. 출생지는 동래구 온천동 어느 곳으로 금정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내가 태어난 그 해 이후로 부산에선 큰 인물이 태어나지 않는단다. 누군가 금정산 정기를 왕창 뽑아갔다나 어쨌대나?

초봄에 어느 병원 검사실 심사를 위해 찾은 지 반년 만에 부산을 다시 찾았다. 부산역 광장은 언제 봐도 마음에 든다. 서울역이나 동대구역 앞은 좁고 답답해서 광장이란 말을 붙이기도 뭣한데 부산역 광장은 뭔가 시원한 느낌을 준다. 바다로 열려있다는 선입관 때문인가? 늘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내리다가 날씨가 맑은 낮에 도착하니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광장이 제법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의 지하철 운영은 서울은 물론 대구보다 뒤쳐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를 구입하려고 보니 구간별 요금 차이가 난다. 버스와 연계요금이 아닌 모양이다. 대구만 해도 지하철을 내려 바로 버스를 타면 무료로 연계되는 체계가 있고 지하철 요금은 전 구간이 동일한데 아직 그런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연계는 되는데 대구보다 지하철 구간이 길어서 그럴 수도 있긴 하겠다. 승차권을 구입하니 아직 종이로 되어 있다. 대구는 플라스틱 토큰을 이용해 계속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는데.

부산 지하철에 결정적으로 나쁜 인상을 가지게 된 것은 안동 촌놈이 1,100원을 더 쓰고 나서다. 부산역 광장에서 1호선 8번 출입구로 들어가니 승하차 구간 가장 끝 지점이다. 서면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내리니 역시 끝 지점이다. 나가는 길과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길이 같은 계단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고 나니 바로 출구다.

반대편 계단이 있기는 한데 대칭으로 되어 있어서 같은 1호선 승강장에서 올라오는 계단처럼 보였다. 잠시 망설였다. 아래에 다른 길이 있었나 싶어 다시 하차 지점까지 내려가 봤는데 역시 올라온 계단밖에 길이 없었다. 2호선으로 환승하는 길은 반대편 계단뿐인데 다시 봐도 역시 대칭이라 1호선 승하차장만 있을 것 같다. 물론 반대편 계단에는 어떤 안내선도 보이지 않는다. 그 때 번개처럼 떠오르는 생각. ‘아, 1,300원짜리 승차권이니 요즘에는 일단 이 승차권을 넣고 나가면 다시 나오는 모양이다. 일단 나가보자.’ 투입구에 승차권을 넣고 나오니 ‘꼴까닥’, 승차권은 사라지고 없다. 다시 2호선 출입구를 찾아 1,100원을 주고 승차권을 구입해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반대편 계단으로 가야 했던 것 같다. 나같은 촌놈이 판단을 잘못한 것도 문제지만 반대편 계단으로 이어지는 안내선이 없는 부산의 지하철도 문제다. 서울의 복잡한 노선에서도 조금 헤매긴 해도 돈을 2중으로 내어본 일이 없는데.

벡스코는 해운대 근처에 있다. 봄에 부산 갔을 때 부산 대학에 있는 어느 교수가 촌놈들 왔다고 해운대를 한 바퀴 돌면서 구경을 시켜준 일이 있다. 상당히 서구적 분위기의 신도시라고. 내가 보기엔 겁나게 높은 아파트들이 많은 대도시의 아파트촌이란 생각 이상은 들지 않았지만. 좌우지간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으면 이 동네 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은 했다. 촌놈이 처음으로 벡스코 앞에 내렸다. 벡스코 앞의 광장이 마음에 들었다.

 >> 부산 시절 동래 금강원에서의 부모님(내가 태어나기 전)


3. 부스
 
학술대회에는 사전 등록과 현장 등록이 있는데 미리 참석을 예약하고 등록비를 내는 것이 많이 싸기 때문에 대부분 사전 등록을 한다. 내가 소속된 주소속 학회(분야별 학회도 있기 때문에 전공과목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학회를 주소속 학회라고 한다)의 특징은 학술대회 등록을 할 때 가방을 준다. 가방 모으는 것이 취미인 아내는 학회에서 주는 이 가방을 매우 좋아한다. 이 가방엔 학회에 서 발표될 각종 연제들의 초록을 모은 책과 각 업체들이 설치한 부스에서 주는 선물들을 담는다. 그래서 학술대회에 갈 때는 가방을 가져가지 않는다. 이번엔 들고 다녀야 할 짐이 있어 쇼핑백에 담아서 들고 갔다.
 
학술대회장 참가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관련 업체들이 설치한 부스들이다. 5만원 정도의 참가비로는 행사를 치르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당연히 주최측은 관련 업체들에게 부스를 분양한다. 관련 업체들도 자신들의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회사 개설을 알리기 위해, 회사가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부스를 설치한다. 주최측은 경비를 받고 분양한 부스니 참가자들이 모든 부스를 방문했으면 좋겠지만 참가자들은 관심이 가는 제품이 있거나, 안면이 있는 영업사원이 있거나, 좋은 선물을 주는 부스만 방문하고 싶어 한다. 당연히 각 부스에서는 참가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다양한 선물들을 준비한다.

예쁜 볼펜 정도는 기본이고, 인형, USB, 전자계산기, 커피, 다과, 골프공 등등. 요즘은 이런 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부스를 돌면서 스티커를 받은 참가자들에게는 특별 선물을 주는 제도도 생겼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8기가 USB를 준다. 나도 당연히 모든 부스를 돌았다. 선물이 탐난 것이 첫째 이유이고, 돈을 내고 참여한 업체들에게 예의이기도 하고, 부스를 지키는 직원들은 방문자 숫자로 평가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의 USB 둘, 전자계산기 박스에 쌓인 볼펜, 인형, 메모지 꽂이, 다수의 볼펜을 노획했고, 약간의 편법(절대 비밀)을 동원해 8기가 USB도 나중에 전달받았다. 노획물 중 가방을 비롯해 좋은 물건은 대개 아내와 아이들에게 상납하고 남은 것은 출근해서 몇몇 직원들에게 주기도 한다.
 
4. 제대혈

다음(Daum)의 내 아이디가 cordblood인데 이것은 제대혈이란 의미다. 제대혈이란 탯줄의 피라는 뜻인데 이게 의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탯줄의 피에는 조혈 줄기세포가 많아서 이것을 보관하면 소아에게는 골수이식을 대신할 수 있다. 아니, 골수이식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전번 직장에 있을 때 공공 제대혈 은행 설립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아이디부터 이것으로 만들었다.

꿈만 있었지 그럴 능력도, 지위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나라에 자신의 자녀의 제대혈을 유료로 보관하는 사적 제대혈 은행이 많이 생겼고, 나 자신 직장을 옮기면서 꿈은 접고 아이디만 남았다. 현재 우리나라에 공공 제대혈 은행은 한 곳이 설립되어 있다. 의학적, 경제적 측면에서 공공 제대혈 은행이 훨씬 효율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적 제대혈 은행이 발달했고 공공 제대혈 은행은 초기 단계이다.
 
몇 개의 심포지움 강좌 중 제대혈을 선택해 들어갔다. 시골 병원에서 단순 업무만 하고 있는 동안 제대혈과 관련된 기술과 시스템은 많이 발전해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강좌를 들을 이유가 내게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른 방에서 이루어진 건강검진에서의 검사의 질 향상에 관한 강좌를 듣는 것이 실제적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발걸음이 제대혈 강좌 방으로 향한 것은 멀어진 꿈에 대한 미련일지도 모르겠다.
 
5. 당황
 
야간학교 수업 시간에 맞춰 안동으로 돌아왔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가기로 하고 터미널 앞의 식당을 찾았다. 주머니 사정을 확인하니 4천원이 남았다. 전날 밤 친구랑 간 노래방에서 100점이 몇 차례 나와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했다(아는 사람은 안다). 전날 돈을 찾고 또 찾기도 마누라 눈치가 보여 아침에 어머님께 만원을 얻어 차비를 딱 맞춰서 부산에 다녀온 결과다. 혹시 버스를 타고 가야할 경우를 대비해 천원은 남겨둬야 하니 분식집에서 3천원짜리 우동을 먹기로 했는데 우동 가격이 올랐는지 3천 5백원이다. 하는 수없이 2천 5백원짜리 떡라면을 먹기로 하고 들어가 주문을 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며 좌석을 둘러보니 같은 직장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지만 임상병리사 면허를 가지고 있어 잘 알고 있는 젊은 여직원이 역시 직장 직원으로 보이는 아가씨와 저녁을 먹고 있다. 안동에서 이런 상황은 매우 당황스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곳에서 만난 젊은 친구에게 큰 돈도 아닌 식사비를 내어주는 것이 연장자나 상급자의 도리인데 주머니엔 여유가 없다. 다행히 등을 돌리고 있어 그 친구는 나를 보지 못했다. 머리를 굴린다. ‘저 친구는 대구에서 출퇴근한다면서 왜 아직 가지 않고 있는 거야? 지금 나갈까? 그럼 저 친구 돌아보고 인사하면 일이 더 꼬이는데. 그래, 저 친구들이 먼저 먹고 있으니까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먹다 보면 먼저 나가겠지.’ 천천히 먹었는데도 내가 먼저 먹었다. 정말 끔찍한 일은 동시에 계산대에서 만나는 일이다. 2천 5백원을 준배해서 얼른 계산을 치르고 돌아서는데 들켰다.
 
“어, 과장님? 안녕하세요?”
“아, 구선생, 왜 아직 집에 안 가요?”

“저녁 먹고 갈려구요.”
 
이럴 땐 나도 제법 잔머리가 굴러간다.
 
“구선생 USB 있어요?”
“아뇨. 왜요?”

“학회에서 선물 받은 것 있는데, 없으면 하나 주려구요. 이게 USB 맞나?”

“어머, 맞네요. 고마워요.”

“그럼 먼저가요.”
 
그 여직원은 내가 USB 주는 동안 식사비 내야 할 것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겠지?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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