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기념관

person 김종규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10-23 09:24

ㄱ 선생님과 점심을 같이 하고 집으로 오니 아이들은 2주만의 '놀토'를 맞이하여 도서관에 가겠다고 나선다. 집 가까이 있는 도립도서관 용상분관을 두고 굳이 시내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가겠단다. 시내에 있는 '꼬지' 군것질이 눈에 아른거려서 시립도서관 가는 것 부모는 묻지 않아도 안다. 황사로 인해 주말농장에서 일하기도 힘들어 보여 아이들을 태워주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나섰다. 아이들을 내려준 후 오늘은 녹전면 쪽으로 방향을 잡기로 했다. 단순한 드라이브가 아니다. 안동 외곽지의 지리와 지명을 익혀 나중에 어느 곳에 터를 잡으면 좋을지를 알아보는 답사도 겸한 드라이브다. 

녹전면을 돌아 다시 도산쪽으로 나와 봉화 가는 길과 도산서원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잠시 쉬면서 다음 행선지를 생각하다가 오늘은 근처에 있는 '이육사 기념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삼거리에서 봉화 방면으로 가다가 도산면 소재지 입구에서 우회전해서 잠시 가면 나온다(맨 아래 지도 참조).

 >>기념관 전경

 >> 육사의 호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수인번호 '264'번을 입고 있는 육사의 수형생활 모형
만들어진지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념관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지만 토요일 오후임에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먼저 기념관 주변의 시비와 생가 복원 건물을 둘러보았다. 이육사 생가의 당호를 육우당(六友堂)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육사의 6형제가 이 집에서 태어나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사랑채의 오른쪽은 팔작지붕인 반면 왼쪽은 맞배지붕이 특이하나 이는 수리 과정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 있다. 인터넷에서 어느 분이 이를 욕해 놓은 것을 보았는데 아마 이 곳에 모형 건물 만들면서 생긴 변형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묘소까지는 2km가 넘는 거리여서 포기하기로 하였다.

 >> 이육사 생가 모형 - 정말 좌우의 지붕 모양이 다르네



 >> 시비 - 철정

절정이라는 시를 좋아하는 분이 있다기에 그 시를 옮겨본다. 아마도 겨울산을 좋아하는 산사나이들이 좋아하는 시인가 보다.
 
절정(絶頂)
 
매운 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절정이라는 시를 낳은 왕모산 앞의 '갈선대' 혹은 그 인근으로 추정되는(?) 벼랑 심한 황사로 인해 사진이 희미한데 가까이서 보면 절경이다.


입장료 2천원이 아까운 아내는 기념관으로 나만 들어가라고 한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니 두 사람이 근무하고 있는데 방문객은 나 혼자였다. 한참 둘러보고 있을 때 중년의 직원이 아내를 발견하고는 공짜로 들여보내 준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보고 가세요." 2천원 아끼려다 창피를 당한 부부는 안을 대충 살피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근처의 생가 터를 찾았다. 생가는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불미골에 있었는데 안동댐이 생기면서 안동 시내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는 청포도 시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문학관 안내문에 '육사는 수필에서 집을 회상하며 "은촉대도 있고 훌륭한 현액도 있기는 하나 너무도 고가라 빈대가 많기로 유명"하다고 표현했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육사가 어린 시절을 보낸 때에도 오래된 고가였던 모양이다. 지금 봐서는 수몰되는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 처음 댐이 만들어질 때 옮긴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안동댐이 만들어진 후 생가 앞으로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수몰 구역 밖에 위치하게 된 것일수도 있겠다.

 >> 이육사의 생가 터 (청포도 시비)


靑葡萄
내고장 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淸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내친 걸음에 시내의 '육사로'도 찾았다. 육사로는 안동대교에서 법흥교까지의 낙동강변 길로 안동에서 가장 넓은 6차선 도로다. 두 곳에 '육사로'란 비가 세워져 있는데 영호대교 앞은 한자로, 옥동 삼거리 앞은 한글로 되어있다. 우선 가까운 영호대교 앞의 비만 찍었다. (두 비 모두인지 한 곳인지 모르지만 그 비의 글씨를 쓴 분은 안동에서 유명한 서예가인데 나랑 이름 두 자의 발음이 같다. 최근 한 잔 하면서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의 친목을 도모한 일이 있다.)

 >> 육사로의 비

안동댐이 생기면서 1976년 4월 이육사의 생가를 옮겨 복원해놓은 태화동의 이전된 생가도 찾아보았다. 그 집 주소는 태화동 포도4길 6호이다. 길 이름을 이육사의 시 '청포도'시에서 따온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옮겨 지은 동네의 원래 이름이 '포도골'이라고 한다. 

 >> 이육사의 생가를 옮겨지은 집. 안동 시내에 있다. 동네 사람은 그냥 '이육사 생가'라고 부른다.

이육사 문학기념관은 도산서원에서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도산서원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퇴계 종택이고 퇴계 종택에서 잠시 가면 퇴계 묘소 입구가 나온다. 그 곳에서 잠시 가면 육사 기념관이다. 기념과 바로 옆에 생가터가 있고 기념관 뒤 산에 육사 묘소가 있다. 그 곳에서 조금 더 가면 왕모산성 입구가 나오는데 왕모산성은 고려 공민왕이 그 모후를 모시고 몽진(夢塵)한 옛 성터이다. 왕모산성 앞의 '칼선대'로 추정되는 벼랑은 명산에서나 볼 만한 산세를 뽐내고 있으니 이 곳을 바라보며 잠시 쉬는 것도 권할 만하다.
 
미리 알지 못해 가 보지는 못했지만 인근(토계리에서 원천리로 넘어가는 당재고개에서 오른쪽 산록을 타고 가면 있다고 함)에 있는 '쌍봉 윷판대'는 광야(曠野)의 시상이 떠오른 곳이라고 한다. 
 
曠野(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문학관의 홈페이지는 www.264.or.kr 이다. 인근에 '퇴계 오솔길'도 있는데 이 길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올릴까 한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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