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와 백정 이야기

person 박장영
schedule 송고 : 2008-10-16 09:26

경북 봉화군 물야면은 영주시 부석면, 봉화군 봉화읍/ 봉성면/춘양면과 연접해 있고 청옥산과 옥석산을 연계한 천혜의 자원 백두대간 등산로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오전약수터가 있으며 유서 깊은 축서사, 국보제 201호인 북지마애여래좌상 등 관광자원 및 만물이 풍부한 대자연속의 고장입니다. 오전리 생달계곡, 오전약수터는 여름 피서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옛날 물야면 어느 마을에 가난한 진사와 부유한 백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책만 읽을 뿐 가사와 생업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던 진사는 마침내 가난에 쪼들리다 못해 부유한 백정을 찾아갔습니다.

"여보게! 나와 동업하세."
이렇게 진사가 뜬금없는 말을 하자 백정은 펄쩍 뛰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진사 나리!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건 가당치 않은 아니한 말씀입니다. 그 대신 제가 10년 동안 진사님 가족을 봉양하겠으니 진사님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공부나 계속 하십시오."라고 제의를 했습니다.

이리하여 진사는 백정의 의견에 따라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러 과거에 급제한 진사는 감사(監司)가 되었습니다. 한편 그 부유했던 백정은 가산이 기울어 예전의 진사보다도 더 한 가난뱅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백정은 진사가 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영(監營)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매번 문전에서 번번이 거절당하다가 간신히 감사를 만났으나 감사의 태도는 너무나도 냉정하고 차가웠습니다.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쫓겨나온 백정은 분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백정은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백정의 집은 몽땅 불에 타버리고 가족들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청천벽력 같은 현실에 백정은 잿더미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더구나 감사가 사람을 시켜서 백정의 집에 불을 놓았다는 이야기도 떠돌았습니다.     

백정은 이것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원한을 갚기 위해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10년 동안 검술과 무도를 열심히 닦았습니다. 10년이 지나 수도를 마친 백정이 하산하려고 할 때 스승은 그에게 칼 한 자루를 내어주면서 
"이 칼을 쓸 때에는 여러 번 깊이 생각하고 써야 하느니라."고 여러 번 간곡히 당부를 했습니다.

금강산에서 나온 백정은 단숨에 원수, 그 진사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때 진사는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어있었습니다. 백정은 밤을 기다려 담을 뛰어넘어 이조판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박차고 뛰어드는 순간 스승의 말이 떠올라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이 때 방문이 열리면서 이조판서가 나타났습니다.

"여보게 정말 오래만일세. 자네 오늘 나 죽이려 왔지? 여하간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나 하세."하면서 백정을 데리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불에 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족들이 반가운 얼굴로 백정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이조판서는 껄걸 웃으면서 눈이 둥그레져 있는 백정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나를 무척 원망했지? 자네가 10년 전에 나를 찾아 왔을 때 내가 반갑게 맞아주었더라면 자네는 평생을 백정으로 지낼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일부로 푸대접을 한 것 일세.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 이름을 고치고 내일부터 훈련대장이 되어 나와 함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성을 다해 보세나."고 했습니다.

그제야 백정은 진사의 깊은 뜻에 감사하고 기쁨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옛날 가난하던 진사는 이조판서의 높은 자리에서 잘 살게 되었고, 그 옛날 백정으로 천대만 받던 백정도 훌륭한 무사가 되어 훈련대장이라는 직책에서 열심히 충성을 다하며 잘 살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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