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장가보낸 효자
봉화군 재산면 현동리에 사는 이효자(李孝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머니 김씨는 효자가 7세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만 모시고 살다가 효자가 22세 되던 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효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대낮에도 호랑이가 다니던 청량산 묘지 곁에다 움막을 짓고 아버지의 혼령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효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반년도 못된 3월 중순 어느 날 밤중에 한 처녀가 찾아와서 하룻밤 쉬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효자는 깊은 산속 밤중에 찾아온 처녀를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방도 1칸 밖에 없어서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이 승낙을 했습니다.
효자는 부엌에서 자고 처녀는 방에서 잤는데 사흘이 지나도 처녀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효자는 "어디로 가는 낭자인지 모르나 이 깊은 산중에 남자 혼자 있는데 와서 벌써 사흘이 지났고 식량이 아까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남녀가 유별하고 피차 거처가 불편하여 하는 말인데 낭자가 여기까지 온 연유를 말씀해 주시오?"고 하자 처녀는 "부모도 없고 집도 없는 사람입니다."고 했습니다.
"그럼 사정이 저와 흡사하니 우리 남매의 의를 정해서 한 집에서 불편 없이 지냅시다."고 하자 처녀는 "천한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효자와 처녀는 남매가 될 것을 서로 언약하고 처녀는 누이가 되고 효자는 동생이 되어서 한 방에서 불편 없이 친남매처럼 지내가면서 아버지의 영혼을 모시는 정성을 더 극진히 했습니다. 효자가 나무를 하면 처녀는 물을 깃고, 효자가 쌀을 받아오면 처녀는 밥을 짓고 효자가 출타하면 처녀가 집을 지켰습니다.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러 3년 상이 거의 다 끝나가던 3월 보름에 남매는 서로 집안 살림살이 걱정을 하다가 효자의 장가에 관한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보게 동생! 사람이 살림을 하자면 첫째 동생이 장가부터 들어야 하지 않겠나?"
"장가를 들어야 되지만 어떤 사람이 나 같은 거지에게 딸을 주겠소?"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럴 것 같으면 부자만 장가를 들고 가난뱅이는 장가를 못 들겠네. 염려 말게. 내가 어디 가서 중매를 서 보겠네." 처녀는 지나가는 말처럼 효자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놓고 이튿날 어디를 좀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떠나갔습니다.
현동에서 약16㎞ 되는 삼동이란 마을에 서울서 내려온 조참봉댁에 딸이 있는데 사방으로 혼처를 구했습니다. 조참봉은 가문도 좋고 집도 부자이므로 여간한 신랑감은 눈에 들지 않아 고르고 고르다가 딸의 나이 19세가 되도록 혼인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밤에 조참봉이 밤에 꿈을 꾸니 백발노인이 와서 "나는 청량산의 신령이다. 자네 딸은 재산 현동의 이효자와 혼인을 하여라."고 했는데 꿈이 이상해서 부인에게 이야기 했더니 부인도 똑 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참봉은 다음날 현동으로 가서 알아보니 단 두 식구만 사는 홀아비 자식으로 거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에게 이야기 하자 부인은 "당신 망령들었소. 그까짓 꿈을 믿고 21㎞를 걸어서 헛수고를 한단 말이오?"라고 했습니다.
조 참봉은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며칠이 지나갔는데 꿈에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너는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느냐? 딴 소리 말고 혼인을 치러라. 만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큰 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 참봉이 하도 이상하여 부인에게 이야기 하니 부인 역시 그런 꿈을 꾸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조 참봉도 그제야 예삿일이 아님을 느끼어 내외가 앉아서 공론을 했습니다.
"여보 벌써 두 번째 둘이 똑 같은 꿈을 꾸었으니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소."
"그래 보통 꿈이 아니더라도 그런 거지에게 딸을 주겠단 말이오?"
"거지가 아니라 백정이라도 연분이라면 하는 수 없지 않소."
"연분은 무슨 썩어빠질 연분, 쓸데없는 꿈을 믿고…"
조 참봉은 펄펄 뛰는 부인의 반대를 어떻게 막을 수가 없어서 은연중 걱정만 하고 지내는데 이튿날 밤 꿈에 다시 그 노인이 나타나 큰소리로 "내가 몇 번이나 일렀는데 도무지 말을 안 들으니, 만일 내일이라도 혼인을 치르겠다고 효자에게 통서를 하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당장 재앙을 내려서 너희들을 저 효자보다도 더 빈궁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진작 벌을 내릴 것이었는데 참고 있었더니 너희들이 꿈은 허망하다고 하면서 나를 능멸하니 내일 저녁에는 호랑이를 보내서 너희 집 소와 돼지부터 죽일 테이니 그래도 꿈이 허망한 것인가 보아라."호령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과연 이튿날 밤에 큰 호랑이가 뛰어 들어와서 우리 속에 있는 돼지를 물어 죽이고 외양간으로 들어가서 소를 몰고 달아나므로 조 참봉 내외는 깜짝 놀라서 혼인을 치르지 않으면 큰 일이 날 모양이니 빨리 통서를 하기로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당장 허혼 편지를 써서 청량산의 효자에게 보냈습니다.
한편 효자는 누이를 떠나보내고 며칠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여기를 떠난 것으로 생각하고 나무를 해 돌아오니 누이가 와 있었습니다. 효자는 하도 반가워서 "누님!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십니까?"하자 누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이번에 가서 동생의 신부 감을 구해 오느라고 조금 늦었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은 누이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같이 웃으며
"누님도 딱하시오. 내가 장가를 들지 못하는 줄 알고 그렇게 나를 놀리지만 나는 장가가고 싶지 않으니 그렇게 아시오."
그러자 누이도 빙그레 웃으면서
"그럼 지내봐라. 내 말이 거짓인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과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편지를 주며 삼동 조 참봉댁의 혼인 편지라고 했습니다. 효자는 조 참봉댁 혼인 편지가 자기에게 올 리가 없다고 하면서 편지를 누이에게 보이자 누이는 편지를 펼치면서 "이래도 내 말을 믿지 않나? 어서 답장이나 써 보내게."라고 하였습니다.
효자는 한편으로는 반가웠으나 자기 처지를 생각하니 아직은 장가를 들어서 처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누님 나를 위해 중매까지 해 주시는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나 지금 내 몸 하나 감당하기 어려운데 처자를 무슨 수로 먹여 살리며 당장 혼수는 어떻게 장만합니까?"하고 걱정을 늘어놓으니 누이는 그런 것은 염려 말고 답장이나 빨리 써 보낼 것을 독촉하였습니다.
효자는 누이의 말만 믿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곧 바로 신부집에서 혼수 준비할 돈과 혼인날을 정해 보내왔습니다. 이리하여 아버지 삼년상을 마치고 결혼까지 하게 되자 누이가 효자에게 홀연히 하직을 고했습니다.
"동생 나는 그만 떠나겠네."
"가시다니 별안간 어딜 간단 말이오. 우리 비록 남남으로 만나 남매의 인연을 맺었지만 친남매와 다름없으니 이제 곧 누님의 혼인을 해야지요." 하면서 펄펄 뛰면서 연유를 묻자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산신령님의 명을 받아 온 사자일세. 이제는 아버지의 삼년상도 다 지나고 혼례도 올렸으며 나도 돌아갈 기한이 되었으니 가야하겠네"라고 했습니다.
효자는 사람이 아니란 말에 깜짝 놀랐으나 아무리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간의 정이 들어 섭섭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여 "그럼 나는 누이를 잃어버리고 혼자 어떻게 산단 말이오. 사람이 아니라도 좋으니 같이 사는 것이 원이니 누님은 나의 소원을 져버리지 말아 주시오." 하면서 같이 살기를 원했습니다.
"안 될 말. 동생과 나는 갈 길이 다르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말게나. 자 나는 가야겠네. 동생은 문밖을 따라 나오지 말게. 동생의 이번 혼인은 신령님이 중매하시고 조 참봉댁 돼지나 소를 죽인 것은 내가 신령님의 영을 받아서 위엄을 보이느라고 한 것이니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말게."하면서 홀연히 떠났습니다. 누이는 개울을 건너며 그만 들어가게 하면서 호랑이가 되어 산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효자는 그 이튿날 초례를 치르고 나서 산막을 떠나 처가 동리인 삼동으로 가서 조 참봉의 힘을 얻어 잘 살았다고 합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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