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소학』연구·역주자와 대화
진성이씨 誨養堂(회양당: 이한걸家)은 지난 10.4(월) 퇴계학연구원(서울)에서‘『女子小學(여자소학)』 연구·역주자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주원 서울대 명예교수(초대 훈민정음학회장),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연민학회장)는 『여자소학』은 교사용(한자본)과 학생용(한글본)이 구분되어 있어 실제 교육에 쓰인 최초의 여성교육 자료라고 말했다.
저자인 율재(이한걸)는 세전가보인 훈민정음(해례본)을 다년간 공부해서 1927년에 여자소학을 발간하였다.
허교수는 “율재(이한걸) 선생이 편저한 『여자소학』과 『율재문집』(5권)을 연구하고 역주한 결과 지금까지 국문학계의 定說(정설)로 되어 있는 바와 같이 훈민정음(해례본)은 진성이씨 가문의 율재(이한걸)가 원래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 맞고, 3남 이용준이 처갓집의 것을 훔쳐왔다는 등 異說(이설)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① 이용준이 1933년 장가들기 6년전인 1927년 『여자소학』이 발간되었고, 『여자소학』은 저자가 한글을 6~7년간 연구하여 저술하였음을 알 수 있고,
② 해례본이 발견된 1940년 이후 이용준이 월북한 1946년까지 무려 6년이라는 기간 중은 물론이고,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이후에도 그와 관련한 아무런 다툼이 없었다는 점.
③ 『율재문집』은 율재 死後(사후) 아우인 이명걸과 김헌수(사돈 김응수 추천)가 공동으로 집필할 정도로 두 집안 관계는 돈독했으며,
④ 훈민정음(해례본)에는 하사품 표시가 없지만 같은 상자에 보관되어 간송 측에 넘겨진 동국정운(국보 제71호)에는 『宣賜之記(선사지기)』라는 임금님 하사품 표시가 卷首(권수)에 있는 점(서울대 안병희 교수 논문) 등을 들었다.
◆ 당초 이설이 등장한 배경으로 세전가보를 넘기는 것이 가문의 수치라는 율재(이한걸)의 뜻(1954년 정철 논문)에 따라 인수한 김태준 등 간송 측 인사들이 안동의 某古家에서 발견하였다는 조선일보 보도(1940년)와 김계곤(초대 한글학회장)이 보성지에 채록(지인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을 근거로 기고한 것이 배경이다.
◆ 이후 훈민정음(해례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1997년)되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2000년경 월북했던 이용준의 사망 소식이 들려옴에 따라 부친 김응수 옹이 사위(이용준)를 야단치는 것을 보았다는 희미한 기억을 이슈로 만들어 고인(이용준)을 모독하고 훈민정음(국보 제70호)을 장물로 취급하는 愚(우)를 범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 회양당 후손 이재갑 박사(퇴계학연구원 사무국장)의 주장이다.
◆ 이광호(전 연세대 교수)는 이설을 제기하는 측에서도 선조가 출가한 기록이 있다는 등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훈민정음과 연계 가능성에 의문이 들고, 최근 영남대 모 교수가 퇴계 선생 독서록 목록에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는 것을 봤다는 얘기도 있어 조만간 발표되면 그 대강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퇴계학연구원 이사장, 원장 및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이광호 전 연세대 교수, 권상목 한학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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