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줄불놀이

person 박장영
schedule 송고 : 2008-10-02 09:51

안동시 풍천면 하회동은 풍산류씨 동족들이 마을을 이루어 사는 집성촌으로 낙동강이 반 S자형으로 감돌아 흐르는 기슭에 위치하여 과거 시인 묵객이 자주 들러 이 화려한 경간에 찬탄하기도 했습니다.서민층의 별신굿으로 유명한 이곳은 강 넘어 절벽 부용대가 솟아 있고, 반대편에는 솔이 우거진 만송정이 있습니다. 현재는 농업이 생계의 원천이나 조선조시대에는 많은 명인거유가 배출되어 사대부 양반마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선유(船遊)는 이 마을의 상하층 동민들이 해마다 가을 달 밝은 밤에 즐기던 놀이로서 뱃놀이, 줄불, 낙화(落火), 달걀불 등 네 가지 놀이로 분류할 수가 있고, 애초에 선유라 불리던 상류사회의 놀이입니다.

옛날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황주에 유배되었을 때에 적벽강에 배를 띄워 유유자적하며 적벽부를 짓고, 또한 묵개들과 더불어 호연지기를 펴며 뱃놀이를 한 사실을 흠모 동경하여 모방한 선비들의 풍류라고 전합니다.

또 하회마을은 류성룡 선생의 고향으로서 그가 관직을 물러나 낙향한 뒤에 그의 형 겸암과 더불어 뱃놀이를 했다는 유래를 근거로 17세기 초부터 세세년년 놀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 앞 낙동강에서도 아주 옛날부터 뱃놀이와 불꽃놀이가 해마다 있었다고 하니 낙동강 강류의 절벽이 솟아 있는 도산과 하회에서는 일찍부터 소동파의 뱃놀이와 같은 시인 묵객의 시회(詩會)를 중심으로 한 풍류놀이와 그에 따르는 화려한 행사가 베풀어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차츰 발달하여 하회에서는 약 200년 전에는 분명히 이 놀이가 존재하였으며 차츰 흥취 있는 놀이로 발전한 듯합니다.

하회동은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기슭에 위치하여 만송정에서 바라보면 북쪽 강가에 겸암정, 옥연정이 우뚝이 서 있고, 두 정사(精舍) 사이에 기암절벽이 깎아지른 듯 절경을 이루는 부용대가 솟아 있어 선유는 이러한 자연환경을 절대적 조건으로 하여 놀아집니다.

음력 7월 기망(旣望,14일), 이날 밤 둥근 달이 동천에 떠오르면 6,7명의 선비들이 나룻배를 타고 강물위에 띄웁니다. 선비들은 하회에 사는 지체 높은 학자와 원근에서 초청된 시인 묵객들입니다. 배에는 네 기둥을 세워 차양을 치고, 주위가 밝게 초롱을 답니다. 서로 술잔을 권하며 흥이 돋으면 적벽부를 외면서 시창(詩唱)을 시작으로 놀이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하여 시회는 열리고, 가을바람과 밝은 달을 즐기는데 이때 하늘에는 "줄불" 로부터 불꽃이 강물 위에 계속해서 떨어집니다. 이 줄불은 가장 이채롭고 화려한 것으로서 만드는데 많은 경비와 노력이 소요됩니다.

뽕나무 숫가루에 소나무 겉껍질 가루를 섞어서 소금을 조금 넣고, 창호지로 만든 45cm 정도의 봉지에 채워 넣습니다. 이 봉지는 지름이 2,3cm로서, 길이 5,6cm정도 되는 곳마다 굵은 실로 허리를 조아 맵니다. 그리하여 초저녁에 미리 긴 새끼줄을 마련하여 4,5m 간격마다 한 봉지씩 답니다.

새끼줄은 부용대 언덕 위의 소나무에 걸고, 아래로는 만송정 굵은 소나무에 매어 다는데  만송정 쪽에서 쑥에 불을 붙여 봉지 끝에 불을 붙이면 부용 쪽에서 서시히 당겨 올립니다. 불은 천천히 타오르고 팍팍 소리를 내면서 불꽃이 강 위로 허공에서 떨어집니다. 이러한 줄불은 서너 군데 마련됩니다. 줄봉지의 연소시간은 두세 시간 걸린다고 합니다.

뽕나무숯 봉지는 안동 일대에서 흔히 만들어지던 것으로 보름날밤 밝은 달빛을 이용하여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잡귀신을 쫓기 위하여 대문 밖에 긴 장대를 세워 이 숯가루 봉지를 매달고, 불을 붙여 축귀(逐鬼)하던 "귀신줄불" 달기 때에 흔히 만들어 지던 것입니다.

달걀불은 원래 달걀 빈 껍질에 종이나 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꽂고, 기름을 부어 불을 켜는 것인데 근대에는 백 여 개의 바가지 쪽을 마련하여 기름을 먹인 솜뭉치를 놓고 불을 붙입니다. 그리하여 부용대 위쪽 형제암 부근에서 한 번에 2,3백 개씩 띄워 보내거나 통배를 탄 서민들이 줄곧 강물 위에 띄우면 많은 불꽃들이 서서히 옥연정 앞 소를 향하여 떠내려가서 맴돌게 되어 선유에 한층 흥취를 더하게 합니다. 이 무렵에 이따금 낙화가 행하여집니다.

미리 부용대 절벽 위에 서너 명이 올라가 있다가 강물 위 배 안에서 시 한 수를 지었다는 발표가 나면 강가에 모여 있던 관중들이 "낙화야"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부용대 위에서 솔가지 묶은 단에 불을 붙여 강 위를 향하여 힘껏 내던집니다. 이 낙화는 시뻘건 불덩이가 되어 떨어지다가 절벽 밑 바위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지니 낙화와 함께 퉁겨지는 불꽃이 또한 장관입니다.

이 네 가지의 놀이는 선유가 주를 이루고, 줄불, 달걀불, 낙화는 선유의 흥취를 돋우기 위한 야간 행사의 여흥으로서 마을의 농민들이 며칠 전부터 도구를 만들고, 이날 밤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 놀이는 1933년경까지 전승되다가 중단되고, 지금 안동민속축제 때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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