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선비의 지방 솜씨
일자무식인 안동사람이 상포를 구하려고 가는 길에 강원도 어느 곳에 다다라 날이 저물어 하룻밤 유할 곳을 찾았습니다. 이미 강원도에 도착한 터라 마음도 느긋하고 하여 큰 기와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저녁을 잘 대접받고 그날 밤에 주인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주인이 "선비는 어디서 왔습니까?"고 묻자 "안동에서 왔습니다."라고 점잖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주인은 안동사람은 모두가 선비라는 말을 익히 들어오던 터라 이 과객도 선비인 줄 알고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주인집에서는 이날 밤에 제사가 드는데 지방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어느 집에 제사가 들면 마을 이장이 늘 지방을 써 주는데 이날따라 이장이 출타중인지라 지방을 쓸 만큼 글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과객인 안동선비에게 지방을 부탁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안동선비는 지방을 못 쓴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쓰려고 하니 글을 모르니 아주 딱한 형편이 되었습니다. 안동선비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하는 수 없이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하고 "죽은 망혼이 글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고 물으니 주인이 "글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동선비는 한지에다 꿘밭(고누 밭)을 그려주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주인은 그 지방을 붙이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제사를 지내고도 지방을 보관해 두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출타했다가 돌아온 마을 이장은 이집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달려와 물었습니다.
"내가 어제 멀리 갔다가 이제 막 도착했는데 지방은 어떻게 써서 제사를 지냈는고?"
"아 지방 걱정 할 것 없네. 마침 안동선비가 와서 지방을 아주 잘 써 주길래 제사를 잘 지냈네. 한번 구경해 볼라는가?" 하면서 어제 사용했던 지방을 꺼내어왔습니다. 이장이 보니 지방이 아니라 꿘밭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야 이 사람아 제사 잘못 지냈네. 이것은 지방이 아니라 꿘밭일세."
"이 사람 무슨 소리 하는가? 그래도 이것은 안동선비가 쓴 지방일세."라고 했습니다.
이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안동선비에게 "무슨 선비가 지방을 이렇게 썼느냐?"라고 나무라자, 안동선비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허 참! 숙맥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그러니까 글쎄! 내가 처음에 죽은 망혼이 글을 아는가 모르는가 물어보지 않았소. 지방이라는 것은 죽은 망혼이 좌정할 자리를 알려 주는 것인데, 글을 모르면 지방을 써도 아무 소용이 없지 않소. 그러니 그림을 그려서 좌정할 자리를 알려 주는 수밖에…"
그러자 이장은 "그래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꿘밭을 그리는 가요? 안동에는 지방을 이렇게 쓰는 가요?"
안동선비는 "안동에서는 대개 다 이렇게 쓰지. 그러나 안동사람들은 모두 선비들만 살기 때문에 글자로서 지방을 쓰지만 혹시 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지방을 이렇게 쓴다오. 지방을 써 보았자 글을 모르니 꿘밭을 그려서 자리를 찾도록 하지요."라고 했습니다.
이장과 주인이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아주 그럴듯한 말이었습니다. 주인은 손뼉을 치면서
"역시 안동선비가 최고 일세." 하고는 그 사람에게 노자돈까지 줘서 보냈다고 합니다.
※ 이 이야기는 안동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 박장영님은 현재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학예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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