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내력
부모와 자식이 비슷한 행동을 할 때 집안 내력이라고 한다. 유전자의 절반을 가져간 자식이 특정 부분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들이나 딸을 보면서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1. 이성교제
지난주 목요일 밤 11시경 걷기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다 아파트 단지 입구 쪽에서 아들을 만났다. 독서실에서 공부하겠다고 나간 놈이 독서실과는 조금 떨어진 도로가에 있는 것부터가 이상한데 가만히 보니 옆에 어떤 여학생이 앉아있다. 나를 발견한 아들이 먼저 아는 체를 한다.
“어? 아버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뭐하냐?”
“누구 기다려요.”
“일찍 들어온나.”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내가 갈 길을 가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나온다. 어떤 여학생인지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다 내 체면도 있고 해서 그냥 지나왔다. 조금 후 아들이 들어오자마자 변명을 시작한다.
“아버지 또 이상한 생각 했지요?”
“아~니.”
“그럼 왜 음흉한 웃음을 지으면서 지나가요?”
“우리 아들 데이트하는 것 보니 좋아서.”
“데이트 아니라니까요. 00학교 다니는 앤데 엄마가 차로 데리러 올 때까지 같이 있었던 것 뿐이라구요.”
“알았다. 누가 머라카나.”
아들이 들어오기 전 마누라에게 그 사실을 전해주었을 때 마누라는 대뜸 그 여학생이 ‘날나리’가 아닌지 걱정한다. 하여튼 엄마의 이기심하고는. 그 여학생이 ‘날나리’면 아들도 ‘날나리’일 것이고 걱정이 되어도 그 여학생 엄마가 더 걱정이 되지. 그리고 만난 이유만으로 ‘날나리’가 된다면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침마다 버스 정류소에서 나를 만나 같은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간 마누라도 ‘날나리’였던 것이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 인연으로 인해 결혼까지 하게 된 우리는 ‘날나리’ 부부가 되는 것이고. 미안하지만 당시 나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왕범생이’였다. 물론 마누라도 당시 학교에서 ‘범생이’로 분류되고 있었던 것 같고. 어찌되었건 아들을 통해 30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30년이 지나면 아들도 내 음흉한 웃음의 의미를 알게 되려나.
2. 수학
아들과 딸 둘 다 못하는 과목이 있다. 수학이다. 학교에서 중하위권을 맴도는 아들이 그 중에서도 못하는 과목이 수학이다. 딸은 학교에서 상위권이긴 한데 수학은 자신의 성적에 비해 잘 나오지 않는다. 간혹 우연히 딸의 시험지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틀린 문제들의 면면을 보면 수학에 소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둘 다 체육도 못한다.
나도 수학을 잘 하지 못했다. 어려운 문제를 붙들고 오래 생각하는 것 자체가 성격에 맞지 않아 잘 풀리지 않는 문제는 그냥 답을 보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형이었으니 수학을 잘 할 리가 없었다. 반면 물리나 화학같은 과학 과목들이나 사회 과목들은 아주 잘했다. 수학을 잘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물리를 잘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수학과 물리는 문제 푸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당연히 고등학교 때 성적도 과목이 많은 내신 성적이나 예비고사(요즘의 수능) 성적은 잘 나오고 국어, 영어, 수학만 보는 본고사 모의고사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수학을 잘 하지 못해 오늘날 내가 이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글씨를 잘 쓰지 못해 펜대를 굴리며 밥벌어먹기 힘들 것 같아 자연계열을 선택했는데 이번엔 수학이 문제였다. 당시에는 대학입시에 본고사가 있었다. 원서를 내던 날 담임선생님은 공대를 가라고 하셨다. 수학을 잘 하지 못하니 공대에서 공부할 엄두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대학 본고사를 봐서 공대에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요즘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당시 그 대학은 공대보다 약대나 사대가 커트라인이 낮았다.
“어데 갈래? xx대 공대 내라.”
“수학 본고사 땜에 공대는 자신 없고예, 약대나 사대 내주이소.”
“...... 니는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라는데 약사나 선생하는 것보다야 의사하는기 낫다 차라리 학교를 낮차가 00의대를 가라.”
“...... (돈 마이 들낀데)...... (과외하지 뭐) 예, 그라겠심더.”
집에 들어가니 어머님이 물으셨다.
“어데 냈노?”
“00의대 냈다.”
“......”
후문에 담임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께 한소리 들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가는 xx대 내지 와 00대 내줬능교?”
“가는 수학을 못해가 xx대는 안댑니더.”
그해 입학 전부터 과외를 했는데 미칠 뻔했다. 여고 2학년 그룹 과외라서 황홀해서 미칠 뻔했고, 영어와 수학 과외를 하는데 싫어하는 수학을 가르쳐야 해서 미칠 뻔했고, 과외를 받아보지 못한 놈이 어떻게 과외를 해야 하는지 몰라 미칠 뻔했고, 갑자기 주머니 두둑해져 좋아서 미칠 뻔했고, 그해 여름 국보위가 과외를 금지시켜 긴긴 세월 등록금 마련하느라 미칠 뻔했다.
3. 술
29년 전부터 아버지가 알콜성 치매가 진행된 관계로 술을 원수처럼 여기며 살았다. 20대 중반까지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동문회 신입생 환영회도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30대 중반까지도 아주 가끔 조금씩 마시는 정도였다. 전번 직장에 다니면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마시는 횟수가 조금씩 많아졌다. 그런데 남들은 마신 다음날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속이 쓰리기도 한다는데 내겐 그런 증상이 거의 없었다. 술자리에서 실수를 해 같이 마신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러셨다. 적어도 남들에게는 술자리에서 피해를 주는 일이 거의 없었고 다음날은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나가셨고 전날 쓴 돈을 10원 단위까지 다 계산할 수 있었다.
아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이 부분이다. 너무 닮아서 진행 코스까지 같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몇 가지 조심하는 것이 있다. 횟수를 조절하는 것. 먼저 마시자는 소리를 가급적 하지 않는 것. 낮술이나 혼자서는 거의 마시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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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근황, 앉아계신 자리는 지난해까지 내가 근무하던 바로 그 위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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