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안동 선비의 생활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이다. 기독교 문화에서 성장한 영향도 있고, 아버지께서 막내인데다가 부모님 모두 살아계시니 봉제사와는 별 인연이 없다. 그래도 안동 선비 흉내를 조금 내려면 접빈객은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여름이 되고 휴가철이 되어 여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동안 안동에 관해 뻥을 친 보람이 있어 이번 휴가철에는 안동으로 찾아오는 지인들이 제법 된다. 벌써 안동을 찾은 손님이 세 팀, 앞으로 찾을 손님이 최소 한 팀, 많으면 두세 팀이 더 찾게 된다.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라 했는데 이런 시골을 찾는 손님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오겠다는 연락만 와도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몇 팀이 지나고 나니 자꾸 통장 잔고에 눈이 가게 된다. 역시 선비가 될 재목이 아니다. 포은 정몽주가 風流太守二千石(풍류태수이천석) 邂逅故人三百杯(삼백배)라고 읊었다더니 반가운 사람을 만나 제대로 된 술잔을 기울이려면 주머니 사정도 넉넉해야 함을 일찍이 알았나보다.
먼저 7월 26일에 셋째 처남댁이 조카와 함께 집을 방문했다. 다음날 주산지를 다녀왔다. 차 에어컨이 고장이 났는데 혼자 출퇴근할 때는 별로 불편한 줄 모르고 있었다. 처남의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처남댁이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13년차 씨에로를 뙤약볕에 타고 다녔으니 고생이 많았을 게다. 좋은 차를 타고 인상을 쓰며 사는 것보다는 고물 차를 타더라도 웃으며 사는 것이 좋다는 알 듯 말 듯한 위로의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월급날이 다가오는 때라 잔고가 달랑거려 같이 온 조카에게 용돈도 주지 못하고 보냈다. 조카 용돈은 아내가 곧 있을 장인어른 제사에 가면 주겠지만 에어컨으로 손상된 체면은 회복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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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7월 27일의 주산지 |
28일 월요일부터는 대구의 친구 가족이 안동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어있었다. 숙소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국학진흥원의 콘도를 예약해주었다. 월, 화는 내 일정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고 수요일 만났다. 아이들이 좋아할 래프팅과 물놀이 하는 것을 주 메뉴로 휴가 일정을 짜 주었는데 물놀이는 않고 유명 명승지만 다녔다고 한다. 사춘기인 아들이 물놀이를 거부했다나? 친구는 내 판단 착오로 휴가비 지출이 생각보다 많았던 모양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왕 지난 일. 수요일 저녁 부용대만 안내하고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 날 역시 친구 아이들 용돈도 주지 못하고 헤어졌다. 대신 친구를 숙소에 보내지 않고 시내에 남겨 술을 샀다. 술은 카드로 마실 수가 있으니까. 그 친구는 나랑 마시려고 들고 온 고급 양주를 숙소를 주선해준 지인에게 나대신 인사차 전달하고 돌아갔다. 내 체면은 점점 망가지고 있다.
8월 1,2,3일은 서울에서 오는 철없는 술꾼들 차례다. 이들 세 사람의 남자들은 대학 때부터 선후배로 만난 사이인데 그 중 선배와 내가 친구다. 이들 3인조 주당은 날을 잡아 오직 한잔하기 위해 전국을 주기적으로 누빈다. 그 중 두 사람은 안동에도 여러 차례 다녀갔다. 물론 술 마시는 데 방해가 되는 가족은 대동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요구 조건이 조금 까다로운 편이어서 금요일 밤은 안동에서, 토요일 밤은 바닷가에서 마시잔다. 금요일은 병원의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마련하고, 토요일은 영덕의 병원 연수원을 예약해뒀다. 물론 강구의 도사님께도 쳐들어갈 수도 있음을 통지해두었고.
금요일은 이들의 평소 실력으로 보면 아주 가볍게 자리를 끝냈다. 이들에겐 가벼운 자리였지만 내겐 제법 마신 양이었다. 숙소에서 같이 자다가 토요일 허겁지겁 출근을 하다보니 마실 나가는 차림으로 출근을 했다. 옷에는 전날 밤 흘린 고추장을 묻혀서. 직원들이 놀란다. 하필 이런 날 아들의 학교 학생부장 선생님이 건강검진차 왔다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고등학교 4년 후배인 그 선생님은 부자가 닮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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