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을 찾아서

person 김종규객원기자
schedule 송고 : 2008-08-02 09:40

요즘 몇 차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이라는 성리학자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퇴계 학맥이 하나의 산줄기라면 대산은 퇴계, 학봉, 갈암 등과 같이 그 줄기를 따라 솟아오른 높은 봉우리 중 하나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퇴계 이 후 가장 높은 봉우리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주자에 대해 정통한 성리학자로 당시 성리학으로 그를 넘을 학자는 없었던 모양이다.

대산은 한산 이씨로 목은 이색의 15대손인데 갈암 이현일의 아들 밀암 이재(대산의 외주부)에게 3년 동안 수학하였다. 25세인 영조 10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을 사양하고 귀향하여 공부와 제자 양성에 전념하여 문인록에 오른 제자만도 273명 이나 되었다고 한다. "구조소"라는 상소문을 정조에게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퇴계서절요, 경재잠집설, 이기휘편, 제양록, 약중편, 병명발휘, 결송장보 등을 저술 하였고 문집 27책, 속집 5권, 실기 10권, 문인록 3권 등이 있다고 한다.

그런 대산의 종가가 안동 일직면에 있고, 그를 추모하는 서원이 안동 남후면에 있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먼저 대산을 추모하는 서원인 고산서원(高山書院,)을 찾았다. 남후면 광음리 암산유원지 뒤에 있다. 암산유원지를 가 본 일이 있으면서도 바로 그 뒤에 있는 고산서원을 몰랐으니 내 무지도 어지간하다. 고산서원은 옛 대구-안동간 국도변에서 잠시 들어가면 된다. 서원은 문이 닫혀 있었지만 그 규모가 잘 갖추어져 있어 조선 후기 대산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준다. 고산서원은 대산 사후 그가 후진을 가르치던 고산정사 터에 1789년(정조 13)에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서원의 건물로는 경행사, 신문, 호인당, 전사청, 백승각, 동재, 고산정사, 향도문, 주사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 고산서원 건너편의 옛국도(나제통문과 혼동하지 않도록 강도 보이게)








 >> 고산서원





대산 종가는 알고보면 아주 찾기 쉬운 위치에 있지만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행정구역상 망호리에 속하지만 망호리가 소호와 안망실(安望實)을 통합되어 생긴 명칭으로 이 마을을 일반적으로는 소호(蔬湖)라고 부른다. 안동에서 찾아갈 때는 먼저 만나게 되는 망호리라는 입간판을 보며 가면 다른 마을(아마도 안망실)로 들어가게 되므로 그 안내판은 그냥 지나쳐 고운사 들어가는 길로 들어가야 한다. 국도에서 벗어나 고운사 방향으로 가면서 처음 만나게 되는 동네가 소호다. 한산 이씨, 달성 서씨, 영양 남씨의 동성(同姓)마을이 있다. 대산 종가가 있는 이 마을을 양지마라고 하는데 유홍준의 책에는 이 마을을 음지마라고 적혀 있다니 기회가 있으면 수정을 해야 할 일이다. 
 
소호교회 옆길로 잠시 가면 대산종가 정문을 만나는데 누구나 그 규모에 놀라게 될 것이다. 크기 때문이 아니라 작아서. 고산서원의 큰 규모에 비해 종가는 너무 작다. 많은 문인들을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의 가세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인지 후대에 가세가 약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내가 본 어느 종가보다도 작은 규모다. 그 건물을 현재는 수리중이었다. 대산이 태어났을 때는 큰 집이 있었으나 일제 때 집을 3년 정도 비워두었기 때문에 너무 퇴락하여 더 이상 유지가 곤란하여 대산의 8대손인 이용원(李龍遠, 1915∼1959)이 규모를 조금 줄여 새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 수리중인 대산종택


 >> 사당으로 추정되는 쇠락한 건물

대산 종가에서 왼쪽으로 대산의 큰집인 문중 종가가 있고, 오른쪽 위를 보면 대산의 동생인 소산 이광정의 종가도 보인다. 대산종가에서 마주 보이는 도랑 건너 동네는 노론 마을이었다고 한다. 대산은 남인, 같은 마을에서 도랑을 건너면 노론. 작은 도랑이 남인과 노론을 나누는 형국이 되었는데 안동에 있다고 다 남인이거나 영남학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랑 건너 마을에는 소호헌(蔬湖軒)이라는 유명한 문화재가 있다고 하는데 사전 지식이 없어 가보지는 못했다.

 >>  대산종가 옆의 큰집

 >> 대산의 동생 소산의 종택이 멀리 보인다.

 >> 남인과 노론의 경계

 >> 도랑 건너의 노론 마을

대산 종가 앞집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도랑 건너편의 마을과는 남인과 노론으로 갈려 사이가 좋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물으니 혼인도 하고 그렇게 지냈다고 한다. 정치적 적대관계가 고향마을에서까지 이어지진 않았던 모양이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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