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간, 생활세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읽은 책으로 그 전에 동양철학을 하는 지인의 권유로 읽게 되었다. 정치경제학적 입장에 서서 도시를 분석한 책을 읽으면서 서울이란 도시에서 시작된 촛불시위를 접하니 자연 촛불시위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모인 고등학생들에 의해 불이 붙은 이번 촛불시위를 두고 여러 계층에서 여러 각도에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번 촛불시위와 관련하여 인터넷의 영향이라든지, 새로운 세대의 발랄함과는 별도로 다른 사람들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도시화와 관련하여 생각을 조금 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시위라면 당연히 국내 축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한 농민회 주도의 시위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혹은 부모, 조부모 세대가 농민 출신이었으므로 심정적으로 동조를 하되 시위 자체에는 참가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리고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우가 너무 비싸서 자신은 어쩔 수없이 수입산 쇠고기를 사먹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이번 촛불시위는 도시의 고등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부모들과는 달리 학교 급식을 통해 선택의 여지없이 이 쇠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고등학생들이 거부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현 정부가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정책들을 쏟아내면서 이에 대한 반발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60년대부터 이농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이 학생들은 이농 3세대에 해당한다. 이 학생들에게는 시골에서 소를 키우는 큰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농 2세대여서 시골에 할아버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령으로 인해 축산업에 종사하기는 힘든 나이일 것이다. 이 학생들에게는 국내 축산업 보호가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도시에서 살았고 친척들도 대부분 도시 사람들인 학생들이다. 당연히 이 학생들의 관심은 식품으로서의 쇠고기고, 그 쇠고기의 안전성이 쟁점이었다.
이번 촛불 시위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의 영향이 절대적이었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도시인들의 관심사인 식품으로서의 쇠고기 안전이 쟁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부자 정부, 고소영 정부, 대운하, 의료보험 민영화,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정책 등 반서민적 행태들이 그 바탕에 깔려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촛불시위로 연결되는 행동을 직접적으로 유발한 것은 식품 안전 문제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사회가 완전히 도시화 되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시화만 가지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도시 주민이라고 해도 경제적 지위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600그램에 만원을 하든지 2만원을 하든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야 돈을 더 주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쇠고기를 사먹고, 찜찜한 쇠고기는 사먹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니 기를 쓰고 시위에 참가할 이유가 많지 않다. 고위층이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라고 할 때는 이런 심리가 바탕에 있다. 반대로 싼 가격의 식품을 찾아야 하는 계층은 그 싼 쇠고기가 광우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참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학자다. 사회학자가 도시를 분석하는 책을 썼으니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또 8년 전에 초판이 나와서 아직 재판이 되지 않은 책으로 8년 전의 한국 도시를 분석하고 있어 현재의 도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의 도시를 분석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학자는 도시를 이렇게 바라보는구나 하는 이해를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거리의 시간화, 더 이상 단순한 장소가 아닌 공간, 공간이 가지는 정치경제적 의미, 노동과 소비로서의 일상, 그리고 세계화에 의한 그 일상의 변화, 구조주의와 마르크시즘이 결합된 도시의 정치경제학, 도시의 계급, 지역의 불균등 발전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도시 지역운동과 도시 공동체를 마지막 장에 배치함으로써 도시의 미래에 대한 희망도 모색한다. 8년 전이라서 지금보다는 조금 낙관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이 땅의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도시 공동체에 대한 전망을 8년이 지난 지금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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