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반하게 만든 남자
간재 종택에서 음악 감상회가 있던 날 어떤 남자를 보게 되었다.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많아야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잘 생긴 남자였다. 그 날 저녁 음악 감상회에서 추천하는 음악이나 낭송시가 심상찮았고, 언행이 재기발랄하고 끼가 넘쳤다. 구김없이 잘 노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최를 한 박선생님이 도와준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깜짝 놀랐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각종 문화계에서 50대는 되어야 명함을 내미는 안동이란 땅은 40대 초반이면 애 취급을 받는 곳이다. 그 안동의 대표 축제인 ‘국제탈춤페스티벌’ 사무국장이라면 당연히 50대 중반의, 고급 공무원 출신이거나, 중견 예술인이 맡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젊은 친구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혹 시장의 친인척이거나 유력 정치인의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날은 내 사정으로 인사를 나눌 기회도 없이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얼마전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이라는 지역잡지 창간 20주년 행사에서 그 사람을 봤다. (‘안동’지는 중소도시에서 무가지(無價志)로 단 한 차례의 결간도 없이 20년을 이어온, 현재 격월간지로 발행되는 지역 잡지로 안동이 자랑할만한 것 중 한 가지) 간재종택에서의 음악회와는 달리 이 날은 50대 장년층 위주의 행사였는데도 그의 끼는 주눅들지 않고 발휘되었다. 행사 후 뒤풀이에서 잠시 자리를 같이 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고 명함만 교환하고 헤어졌다.
금요일 박선생님으로부터 저녁을 같이하자고 연락이 왔다. 최근 중국 출장을 갔다가 가져온 좋은 술이 있는데 몇몇이 모여 맛이나 보는 자리라고. 그 자리에 그 사람이 동석할 것이라고 했다. 옥동에서 모여 차 한 대로 식사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약속 장소에 비슷한 시간에 모였는데 문제의 남자는 늦을 뿐만 아니라 전화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참을 지나 헐레벌떡 쫓아온 그 남자의 변명이 걸작이다. 문화행사가 있어 음향시설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한참 일하다보니 누군가가 퇴근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이 지났더라고. 그 정도면 당연히 전화를 들고 수신확인을 할 시간도 없었을 터. 모두들 용서해주기로 했다. 지각한 벌로 식사 장소까지의 이동은 그 남자의 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외관상 보기에도 이 남자의 차는 내 차보다 더 험했다. 차 안의 상태는 내 차보다 훨씬 험했고. 나도 차가 험해 어려운 사람은 태우는 법이 없는데 내 차는 이 남자의 차에 비하면 청소가 잘 된 새 차라고 할만했다.
이동 중에도 그의 끼는 계속 발휘되었다. 낙동강 너머로 석양이 멋있다고 생각할 무렵, 석양에 맞춰 이동하기 위해 시간을 맞췄다는 변명에 곁들여서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어느새 석양을 노래하고 있었다. 대화 중에 술 이야기가 나왔는데 안동소주의 유래에 대해 좀 아는 척을 하려고 하다고 이 남자에게 된통 당했다. 내가 이야기하려던 몽골 지배를 넘어 고려 왕조와 안동대도호부의 역사까지 거슬러 10~20분 동안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도 많았다. 취흥이 오르자 단가의 맛을 보여주기도 하고, 풍물 이야기, 문화 지표조사에서 만난 기인들 이야기 등등. 2차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좁은 바에서 기타를 연주하겠다고 우기며 기타를 들고 왔는데 기타뿐만 아니라 세 권의 두툼한 악보도 함께 들고 나타났다. 그가 연주하고 싶어하는 곡들도 독특했다. 그의 노래를 통해 안상학 시인의 시가 노래로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젊은 사무국장에 대한 의혹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었다. 선입관이 없다면 누구나 한 번 만남에 반할 남자였다. 문화에 대한 애정, 예술적 감성, 역사와 향토에 대한 지식, 열정 어느 것 한 가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내가 여자였고 젊은 시절 이런 남자를 만났으면 다른 대안은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 내 딸이 이런 남자를 좋아한다면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은 생각(돈 고생, 마음고생이 뻔할 것 같아서) 등등의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헤어졌다.
안동에 온 후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곳곳에 사람이 있었다.
※ 김종규님은 현재 안동병원 진단의학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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