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리얼 궁상 일기<습지생태보고서>

person 쑤세미
schedule 송고 : 2007-06-27 16:06
우리들의 청춘도감
 
             

   지금이야 기숙사에, 원룸에, 주거공간이 굉장히 소프트해졌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타 지역 대학생들은 자취를 선호했다. 하숙보다 집주인 눈치도 덜 보이고 생활비 절약 차원에서 친구들과의 동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고만고만한 녀석들끼리의 동거는 서로를 애증관계로 몰고 가 10년 20년 후에도 뒤통수 갈겨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술 한잔 들어가면 ‘그땐 그랬지’하는 추억담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인원수에 맞춰 수도요금을 계산하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눈을 피해 공식적으로는 3명이 살지만 유령인간 1명이 보태져 4명이 살기도 하는, 장마철 눅눅한 천장땜에 주인집에 항의하러 갔다가 형광등만 갈아주고 돌아온 서글픈 청년들의 스위트홈, 그 이름 ‘자취방’

 

가난이 불편하지만 부끄럽지 않다는 틀에 박힌 말은 빼자. 때로 가난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가난한 사람이 부끄러운 사람이겠끔 만들었나. 당당한 부자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 사는 죄다.


쇠도 씹어 먹는다는 청춘들이라지만, 맛난 게 있으면 누가 쇠를 먹고 앉았겠나. 지방대 자취생들의 일상은 그래서 고단하지만, 그래서 쇠도 씹어먹을만치 무모하고 재기발랄하다.

 

지방대 만화과 부동의 1등 장학생이지만 3대째 가난하여 지지리 궁상인 최군, ‘내일 뭐 입지’가 고민스럽지 않은 단카라 티셔츠의 단벌신사 바가지머리 재호, 유순한 성격이지만 알고 보면 분노를 억누르고 사는 소심남 정군, 컴 속에 살고 있는 일벌레 몽찬 등 개성 강한 네 친구와 자취방에 빌붙어 살면서도 한정 없이 뻔뻔스러워, 없는 자는 당당히 무시하고 있는 자는 공공연히 존경하는 사슴 녹용이. 이들이 반지하 자취방에서 궁상을 떨며 살아가는 리얼한 이야기 <습지생태보고서>


‘팔이 잘린 사람’은 ‘손가락 잘린 사람’을 위로하지 못한다는 이 애늙은이 작가의 유니크한 작품을 읽노라면, 정말 그의 말대로 다음 작품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날의 인생도감을 펼쳐본 날, 돈과 외모가 중요한 잣대인 이 사회에서 못생기고 가난한 젊은이들의 진득한 삶의 모습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어렵던 그 시절, 자취방 친구에게 얻은 것들 중 무좀 빼고 도대체 남은 게 뭐냐고 외치시는 분들. 찬란한 청춘을 요행이 아닌 ‘진국’으로 건너온 습지생태보고서의 젊은이들을 보자. 깔끔한 그림과 기발한 소재, 그러나 간혹 그닥 세련되지 않은 내용전개, 그래서 더욱 참해보이는 작품. 그들의 자취방 ‘습지’에 따뜻한 볕이 들기를.


참고사항

* 출판사에서 자랑하는 견고한 컬러케이스 덕에 라면 받침대로 쓸 생각 마시길.

* 자매만화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도 있어요.

*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본인의 다음작품이라고 말하는 만화가 최규석, 하하보다 더 잘생겼다!


글/ 쑤세미

TV드라마 주인공 ‘대구’와 돌 + 아이를 합쳐놓은 인물이 이상형. 비 오는 날 방구들에 엎드려 무한도전 재방을 틀어놓고 만화책 보는 게 취미. 최근 만화책이 예전같이 재미있지 않음에 무척 상심해 있는 중. 예의 없는 사람을 보면 에네르기파를 날려주고 싶지만 특유의 소심함으로 그냥 참음. 올해가 가기 전, 비 오는 날 포장마차에서 홀로 소주마시기에 도전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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