喫茶去(차나 한잔 하고 가세요)
안동에 가마를 묻은 지 1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도자기 공부를 마치고 고향 안동에서 처음 불을 지핀 첫 날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금방 귀국을 하여 18년을 떠나있던 안동에 다시금 새 둥지를 트는 일은 기대 반 두려움 반 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도자기 하는 곳이 한 두 곳 있었지만 새로이 작업장을 오픈한 터라 여러분들이 방문해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하루는 일본에서 도자기를 지도해 주셨던 淸水日呂志 선생이 한국 제자가 작업장을 열었다고 격려를 해주겠노라며 일본의 고객을 관광버스 한 가득 모시고 온적이 있었습니다.
일본 관광객이 우루루 내리자 고향마을 작은 동네에 작은 술렁임이 생깁니다.
"누구야 저 사람들", "여기는 왜 왔지?"
아직은 스물여섯의 세상물정 모르던 터라 연신 일본관광객들의 반응이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거 주세요", "저거 포장해주세요" 정신 없이 작품을 포장한 다음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저는 깊은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시장 한 켠에 자리 잡은 도자기는 하나도 온데간데없이 전시장 테이블 위에는 한가득 만원짜리 지폐만 수북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나의 알량한 재주로 빚은 도자기가 하나도 없어졌다는 사실이 제일 처음 슬펐습니다.
나름대로 전시장 구석구석 자리를 빛내던 도자기였는데 휑하니 텅 빈 전시장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딸 시집 보낸 시어미의 심정을 그때 어줍잖게 처음 느껴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분명 일본 선생님과 고객들은 처음 작업장을 연 나를 격려하기 위해 작은 작품이라도 구매하였겠지만 다시는 고객과 교감 없이 작품을 판매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주 가끔 도자기 구입하는 분들 중에는 처음 오신 분인데도 도자기를 욕심 내서 사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럴때는 도자기를 한 점도 팔지 않고 차 한잔 먼저 대접합니다.
그리고 일장연설을 합니다.
'사모님! 지금 도자기를 이렇게 맣이 구입하시면 혹시 나중에 댁에 돌아가시면 후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 도자기가 진짜 너무 좋아서 귀가 후에도 생각이 나고, 밤에 잠이 안오고 그 작품이 너무 보고싶어 또 보고 싶어 다시 이곳에 오신다면 그때는 판매를 하겠습니다'
수긍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도자기를 판매 하는 것 보다 도자기를 보고 느끼며 아끼고 조언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꺼번에 왕창 구입해서 장식장에 넣어둔 채 이름조차 잊혀버리는 작가이기 보다 볼때마다 생각이 나고 다시 만나고 싶고 오랜 세월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사람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던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 분도 아마 10년도 훨씬전에 도자기를 구매하셨던 분이셨는데...
진짜 도자기를 잘 쓰고 있었노라며 그동안 세번이나 이사를 한 저를 찾지 못했노라며...
반가움이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때 만든 도자기는 지금보다야 기교도 떨어지고 보잘것 없겠지만 그 그릇을 보며 저를 떠올린 순간이 너무 고마울 따름입니다.
차 한잔 나누면서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10년을 계획해봅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노라... 오래오래 기억되는 작가가 되리라...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 먼저 되리라...
세상에는 참!
똑같은 물을 젖소가 먹으면 우유를 만들지만 뱀이 먹으면 독을 만드는 것 처럼
이왕이면 제 도자기가 그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인생의 긴 여정 동안 한박자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할 수 있는 휴식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오신다면 그때도 먼저 차나 한잔 하고 가세요....
*이 글을 쓴 김창호님은 안동에서 도연요를 운영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앞장서고 있는 직업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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